'구제'와 '경제논리'도 구분 못하나
빚에 허덕이는 서민들을 돕기 위한 국민행복기금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기사와 칼럼, 심지어 사설까지 각 신문들이 쏟아내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은 지난 2월말 현재 1억원 이하의 빚을 6개월 이상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신청할 수 있으며 최대 50%(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70%)까지 빚을 갚을 수 있는 제도이다. 얼마를 감면 받을 수 있을지는 신청자에 대한 형편을 심사하여 결정될 것이다. 이 행복기금의 수혜자들에게 얼마나 단비 같은 소식인가.

무슨 이유든 빚진 사람들은 누구나 빚을 탕감 받았으면 하는 게 인지상정이라, 국민행복기금의 대상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런 저런 불만과 불평을 쏟아낼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런 불평불만과 국민행복기금의 취지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데도 빚진 사람들의 딱한 사연을 소개하며 그들의 불평불만을 시시콜콜하게 다 보도하고 마치 ‘국민행복기금’이란 것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논조다. 참으로 두서가 없는 어거지 ‘글들’이다.

여러 사연들로 1억원 이상 빚이 있는 분들은 아쉽겠지만 1억원 이하의 빚이 있는일부 서민들만이라도 빚을 탕감 받아 새로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그만큼 이 팍팍한 세상에 플러스가 되는 것이다. 마이너스가 없다. 있다면 1억원 이상 빚진 사람들의 속 상함, 아쉬움 그런 심정일 게다.

1억원 이하를 기준으로 정한 것은 그 정도의 돈을 6개월 이상 갚지 못할 정도면 매우 어렵다고 본 것이다. 1억원 초과자의 빚까지 대상으로 할 경우, 예산의 한정이 있을 터이고, 1억원 이상의 빚을 졌다고 할 것 같으면 아주 어려웠던 형편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빚진 사연 따라 탕감하면 그건 더욱 더 형평성의 시비가 일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채무 금액으로 정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고 본다.

정부가 국민행복기금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해이’라는 잣대를 대려고 하는 것은 좁은 소견이라고 본다.

경제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논리를 펴고 있는데, 경제 논리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이 ‘사회 정의’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며 도덕적 해이를 가르치려 하는 태도는 가진 자들의 논리에 대변하는 것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빚 갚을 형편이 정말 안 되면 그것은 도덕적 해이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과 ‘구제’, '나눔'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동정심이란 눈곱만큼도 없는 기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유식한 척 쓰고 있다.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는 사람이야말로 레미제라블에서 배 고파서 교회 은그릇을 훔친 장발장을 ‘정의’의 이름으로 정죄하고 집요하게 뒤쫓는 자베르 경감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오늘날 언론들이 되려 촛대를 내주는 경건한 신부는 되지 못할지언정 서민에게 야박한 냉혈한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