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맨들이 최고경영자(CEO)를 맡아야

결론적으로 포스코의 차기회장에 외부인사가 낙하산타고 내려와선 절대 안된다. 포스코의 경쟁력강화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글로벌 철강흐름을 가장 잘아는 철강맨들이 최고경영자(CEO)를 맡아야 한다. 영일만에서 철강보국의 땀과 열정을 흘렸거나, 제2 제철소인 광양제철소를 이끌어본 포스코맨들이 흔들리는 포스코를 안정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철강의 철자도 모르는 인사들이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탐욕을 부린다면 오산이다. 한국 철강산업의 중장기 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하지만, 청와대에 연줄을 댄 낙하산인사가 이뤄진다면 그야말로 망사(亡事)가 될 뿐이다.

현정부들어 끈임없이 퇴진설에 시달려온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끝내 물러났다. 이석채 KT회장이 물러난지 3일만에 이사회에 사퇴의사를 전달했다. 사퇴의 변은 함축적이다. “외압이나 외풍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 인사들은 온갖 채널을 통해 이명박정권 시절 임명된 이석채 회장과 정준양 회장에 대해 조기퇴진을 종용해왔다. 두 회장 모두 박대통령 해외순방 기업인 수행과 대통령이 주재하는 재계회장단과의 모임에서 잇따라 배제돼왔다.

이회장은 투명하게 경영해온 것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2기 임기를 채우겠다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검찰에서 그룹과 임직원, 이회장의 자택에 대한 수차례의 강도 높은 압수수색을 벌이자 완주를 포기했다. 한국에서 배임죄는 최고경영자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옥으로 보낼 수 있는 검찰의 전가의 보도로 악명이 높다. 이회장은 이 점을 잘 알고 있기에 타올을 던진 것이다.

정회장은 이석채회장이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당한 끝에 황망하게 쫓겨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비운 것으로 보인다.

정회장의 중도퇴진은 포스코 지배구조가 정권의 교체에 따라 얼마나 취약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본인도 이명박 정부의 실세그룹인 영포라인(영일 포항출신)을 등에 업고 회장에 취임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도 그 업보를 받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명식 회장, 김대중 정부의 유상부 회장, 노무현 정부의 이구택회장, 이명박 정부의 정준양회장 등...정권이 바뀌면 회장이 어김없이 바뀌었다.

역대정부는 포스코를 정권의 전리품(戰利品)으로 챙겨왔다. 정권과 연계된 최고경영자를 통해 포스코 본사와 협력업체에 대한 낙하산인사와 정치자금 조달, 협력업체 선정및 유통망에 대한 철강재 공급 등을 통한 떡고물 및 이권챙기기 등으로 엄청난 재미를 봤다. 투명경영이 정착된 지금에도 포스코를 전리품 내지 인사 및 이권챙기기 거점으로 활용하는 행태는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포스코를 이렇게 난도질해서야 장기경쟁력이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기위해 만들어진 회장추천위원회는 자율성과 독자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의 유력가와 명망가들이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정권 교체기마다 청와대와 권력자들의 눈치보기에 바빴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역대 회추위 때마다 교수들이 주로 사외이사들을 많이 맡아 회장을 추대했지만, 이들의 정권 눈치보기는 선수들 빰쳤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차기회장은 포스코와 글로벌 철강시장을 잘아는 인사가 맡아야 한다. 그래서 내부출신이 적합할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군침을 흘리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들은 헛된 욕망을 자제해야 한다. 일각에선 김종인 전 박근혜켐프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김원길 전 보건복지부장관(현 국민희망포럼 고문), 오영호 코트라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포스코에서 일한 전력이 있는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진념 전 경제부총리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박근혜 대선켐프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낙하산타고 포스코에 내려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철강의 문외한들이 완장차고 포스코를 점령하면 한차례 인사태풍 등으로 홍역을 앓을 수밖에 없다. 포스코가 정권에 기여한 사람들을 챙기기위한 낙하산 통로로 전락할 수 있다.

이는 수년전 타계한 박태준 전 명예회장이 통곡할 일이다. 박태준 전 명예회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인사 외압은 철저하게 막아왔다. 이는 포스코가 정치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세계최고의 철강사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비록 그가 대선행보를 보이면서 김영삼 정부시절 김만제 회장이 외부에서 들어온 사례가 있다. 하지만 김대중정부 시절 DJP연합정권을 통해 정계에 복귀한 후로 외압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가 서거하면서 포스코는 이제 외풍을 막아줄 버팀목이 사라졌다. 이는 포스코의 지배구조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내부출신에선 이동희 대우인터내셔널 부회장, 윤석만 전 포스코사장, 김동진 전 포스코 베이징법인 사장, 김준식 사장,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관가에선 이동희 부회장이 유력한 후보라고 보고 있다. 이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시 재계인사로 수행한 점이 강점이다. 윤 전사장도 유력한 가시권에 있다. 그는 이명박정부 시절 이상득 전의원과 박영준 전 산업자원부 차관 등 정권의 실세를 등에 업은 정준양 회장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던 것에 대해 한을 품고 절치부심하고 있다.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 서청원 의원 등 박근혜캠프의 실세 원로들과 접촉 빈도를 늘리고 있다.

김준식 사장의 경우 경영능력은 있지만, 광주일고 출신이라는 점이 변수가 되고 있고, 현 정부와도 불편한 사이라는 루머가 나돌고 있다. 박근혜정부도 이명박정부 못지않게 영남편중인사를 하는 것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동진 전 사장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고사중이다.

포스코는 차기회장 선임과정을 계기로 정말 투명하고 지속가능한 지배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권의 교체 따라 출렁거리면 미래가 없다. 세계 철강업계는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고, 포스코의 경영실적도 부진한 상황이다. 3분기 영업이익은 6300억원에 그쳐 전분기 대비 무려 29.9%나 급감했다.

수요업체인 조선 해운 건설 등의 불황이 장기화하는데다, 중국철강업계마저 무모한 증설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중국의 증설로 인해 연간 1~2억톤의 공급과잉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인해 영업이익률도 10%이하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영업이익률 20%대는 이젠 꿈같은 이야기가 됐다.

더구나 현대제철이 3기의 고로체제를 갖추고 국내에서도 포스코에 맞서 경쟁체제를 형성중이다. 현대제철은 아직은 포스코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현대제철은 정몽구 현대차 그룹회장의 막강한 지원과 그룹사들의 협력에 힘입어 10년내 엄청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현대차의 오너경영체제로 인해 현대제철이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중장기 철강경쟁력 강화에 매진하는 것도 강점이다. 포스코는 지배구조가 5년마다 흔들리고, 현대제철은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지배구조와 투자를 이어가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불보듯 뻔하다. 포스코임직원들은 이 점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고 지배구조 안정화방안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

국내외 경영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지배구조가 흔들리고, 정치외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포스코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고, 신소재 및 자원 에너지 등 미래 성장사업에 혜안을 가진 리더가 나와야 한다. 이런 점에서 외부인사가 오는 것은 포스코에는 비극이다. 문외한이 와서 허둥대다가 정권 바뀌면 또다시 쫓겨나가는 신세가 되면 포스코의 중장기 경쟁력은 점차 약화할 것이다.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CEO추천위원회는 막중한 사명감을 갖고 차기회장 선임을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 현재는 이영선 전 한림대 총장이 사이이사겸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이영선 의장의 회추위는 낙하산 논란을 배제하는 게 첫 번째 임무다. 이를 위해선 정권과 정치권의 청탁이나 외압을 물리치는 용기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회추위가 정권의 풍향계나 살피는 한심한 행태를 보여선 안된다. 둘째는 내부 철강맨들 가운데 포스코의 미래를 가장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인사가 낙점돼야 한다. 셋째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권력자들과 연줄을 맺어 회장을 노리는 정치적 인사도 과감하게 탈락시켜야 한다. 그래야 포스코 맨들이 정치권 및 정권과 연줄을 맺으려는 유혹을 자제할 것이다. 포스코 지배구조가 흔들리고 있는 데는 내부인사들이 정권마다 줄대기를 통해 입신양명하려는 경향을 보여온 것도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업자득이다. 포스코맨들은 이같은 행태에 대해 철저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참회해야 한다. 오로지 실력과 능력, 리더십으로 경쟁해서 포스코를 이끌어가 생각을 해야 한다. [미디어펜=이서영기자 mediap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