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에게 부실 자회사 지원 책임을 물어 배임과 횡령혐의로 기소해 구속까지

97년말 우리나라는 미증유의 국난인 외환위기를 당했다. 나라가 온통 거덜날 지경이었다. 나라 곳간은 텅비어갔다. 단군이래 처음으로 국가부도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국가도, 기업도, 가계도 모두가 부도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려됐다. 김대중정부는 기업 정부 공공부문 노동 등 4대부문 개혁에 착수했다. 기업개혁은 금융감독위원회 이헌재 위원장이 실무대책을 지휘했다. 이헌재 위원장은 구조조정 원칙을 통해 오너가 있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오너의 사재출연과 알짜기업 매각 등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 부채비율 200%이내 축소 등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이 금감위원장은 30대그룹 기조실장과의 회동을 통해 재벌개혁 <5+3 원칙>도 강조했다.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주력기업 중심 사업재편, 지배주주와 경영자 책임강화 등 5대 기본과제와 금융지배 차단, 순환출자 억제, 부당내부 거래근절 등 3대 보완과제가 그것이다.

김대중정부는 당시 기업부실 확산으로 은행 등 금융권 부실이 눈사태처럼 커지자 공적자금을 긴급 투입했다. 제일은행과 서울은행 등은 기아차와 한보철강 진로 등의 연쇄 부도로 뱅크런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시중은행들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국민혈세인 공적자금을 쏟아 부어 금융권을 안정시켰다. 그래도 은행부실이 누적되자 부실은행을 폐쇄하고, 합병시키는 등 은행구조조정에 전력투구했다. 은행도 망한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환란을 계기로 재벌도, 은행도 대마불사의 관행이 깨졌다. 엄청난 격변기였다.

공적자금은 시중은행 대부분에 투입됐다. 공중분해된 대우그룹과 쌍용그룹, 현대건설, 고합, 하이닉스 등에도 국민 혈세가 수혈됐다. 은행 등 금융부문과 기업 등에 총 168조원이 투입됐다.

이중 대우조선해양에만 6,600억원, 현대건설에 261억원이 들어갔다. 이들 기업들은 공적자금 투입으로 재무구조가 호전되고,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경영이 정상화됐다. 현대건설은 알짜기업으로 변신해 현대차에 매각됐다. 대우중공업과 대우차도 두산과 미국GM에 각각 매각됐다.

하지만 다른 부실기업들은 국민혈세가 투입됐음에도 불구, 경영정상화에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공적자금이 낭비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공적자금은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발행한 채권 등으로 조성된다.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원리금 상환에 대한 지급보증을 하는 점이 특징이다. 만약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민혈세인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대기업이 부도로 쓰러지거나, 청산을 하게 되면 채권은행들은 부실여신 누적으로 공적자금을 받게 된다.

공적자금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자금수혈을 받아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글로벌 금융 및 기업으로 도약하는데 소중한 마중물이 됐다.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대외신인도를 개선하는 효과도 컸다. 하지만 국민의 소중한 혈세가 투입된 기업의 도덕적 해이, 즉 모럴해저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공적자금 투입기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의 특혜논란도 적지 않았다.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살아난 기업과 달리 자체구조조정으로 살아난 기업들도 많았다. 국민세금을 지원받지 않고, 자력으로 구조조정하고, 돈을 벌어 부실을 해소한 기업들을 말한다. 한화와 효성이 대표적이다.

한화는 자화사였던 웰롭, 한유통 등이 환란이후 영업부진과 부채누적으로 부도직전에 몰리자, 계열사들이 지급보증등을 해줘 재무구조를 호전시켰다. 이들 자회사를 그냥 방치한채 부도시켰다면 그룹 계열사들에게도 부실이 전이되고, 이는 금융기관들에게도 부실여신 확산등의 불똥이 튈 수 있었다. 한화는 금융위의 지침에 따라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그룹계열사들이 이들 부실 자회사를 지원해서 그룹과 자회사 모두가 정상화되고, 부실 확산을 막았다. 주채권은행도 부실여신 누적으로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져 대외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그런데 검찰이 돌연 김승연 회장에게 부실 자회사 지원 책임을 물어 배임과 횡령혐의로 기소해 구속까지 시켰다. 정부 지침을 충실히 따라서 구조조정한 것에 대해 검찰과 사법당국이 뒤늦게 발목을 잡고 총수를 인신구속까지 시킨 것이다. 대기업정책과 사법정책이 따로 노는 전형적인 사례다. 검찰과 사법부의 김회장에 대한 가혹한 처벌은 기업경영, 특히 그룹경영을 크게 위축시키는 나쁜 선례가 되고 있다.

효성도 마찬가지다. 효성은 종합상사였던 효성물산이 70~80년대 수출 드라이브정책으로 비롯된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환란 직후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조석래 회장은 국민들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지원받지 말고 그룹 힘으로 부실을 해소하자며 과감한 자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우량기업인 동양나이론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 등 주력사들을 효성물산과 합병해 (주)효성으로 통합했다. 이를 바탕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극대화시켜 부실을 지난 10여년간 점진적으로 털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공적자금 한푼 받지 않고 자력으로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을 해소한 효성에 대해 검찰과 국세청이 1조원대 법인세 탈루혐의로 세무사찰하고, 강도 높은 수사까지 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해치는 것이다. 효성물산을 환란 당시 부도처리했다면 그룹도 위험해지고, 채권은행 및 협력업체들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룹도 살고, 부실도 털어내고, 협력업체와 금융회사도 재무구조가 좋아진 모범적인 구조조정 케이스였다.

이제와서 효성에 대해 대규모 법인세 탈루의혹을 제기하며 강도 높은 압수수색과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공권력의 과잉대응이 아닌지 곱씹어봐야 한다. 환란당시의 어쩔 수 없는 재무구조 개선대책인 데도 이를 거대한 탈세기업으로 몰아가는 것도 대기업 손보기 일환으로 보인다.

세무당국도 그동안 효성의 불가피했던 자체 구조조정과 점진적 부실해소에 대해 용인해왔다. 박근혜 정부들어 국세청이 표변해서 효성을 집중적으로 압박하고, 검찰 고발까지 하는 것은 이중잣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돈기업이라는 이유로 과잉 손보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전정권과 연관된 기업 및 정치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손보기 작업을 하는 것과 연관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검찰도 국세청 고발을 기다렸다는 듯이 효성에 대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조석래회장 자택까지 압수수색하며 야단법석을 떠는 것도 공정한 법의 잣대를 갖고 하는 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조회장의 경우 전경련 회장과 한일재계협회 회장, 한미재계회의 의장 등을 역임하며 재계의 발전과 경제외교에 헌신해왔다. 산업입국과 국가경쟁력 강화등을 위해 헌신해왔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탈세범으로 낙인찍혔다. 그는 그동안 일본과의 경제협력 및 외자유치, 기술이전, 미국과의 한미FTA협정 체결 등의 과정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선진국 정재계 인사들과의 탄탄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소중한 경제외교 자원이다.
80을 앞둔 고령의 조회장은 국세청과 검찰의 전방위 압박에 의기소침해 있다. 평생을 경제발전에 힘써온 명예가 하루아침에 추락한 것에 대해 고통을 겪고 있다. 재계총리를 지낸 재계 원로를 이렇게까지 망신주는 것은 재계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

한화나 효성처럼 정부 도움이 없이 구조조정한 것에 대해서는 폭넓은 이해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유럽법경제학자들도 그룹경영체제를 유지하는 경우 총수 등 경영자의 경영자율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래야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환란당시 부실기업의 경우 합병을 통해 부실자산을 처리한 것은 공적자금을 절약하는 방법이었다. 정부도 이를 용인했다. 이를 다시 끄집어 내어 김승연회장과 조석래회장을 구속하거나 수사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과거 비상시에 취했던 구조조정 방식에 대해 지금에 와서 마구 난도질하며 중형처벌하는 것은 정책일관성을 크게 해치는 것이다.
효성의 경우 단순 세무조사라기보다는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지금의 잣대로 자력 구조조정을 한 기업에 대해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아가 사법처리까지 하는 것은 가혹하다.

환란은 백천간두의 국가적 위기상황이었다. 부실회사를 파산시켜 공적자금에 의존하면 국민혈세를 낭비했다는 도덕적 해외로 비판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효성이 효성물산을 부도처리했다면 무책임과 계열사 꼬리자르기로 비난받았을 것이다. 주채권은행도 부실여신 누적으로 자기자본비율이 급락할 위기에 처했을 것이다. 하지만 효성은 주주로서의 유한책임에 연연하지 않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부실회사를 살려냈다. 이게 진정한 기업인의 자세다. 용기와 소신있는 자율 구조조정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 한화와 효성을 보면 이 속담에 딱 들어맞는다.

정부나 검찰, 사법부는 과거의 구조조조정에 대해 현재의 잣대로 들이대 칼을 휘두르고, 심지어 정치사찰, 손보기 수사라는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미디어펜=이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