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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의춘 발행인 |
“사람을 살리는 수사가 돼야 한다.”
김진태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환부만 도려내고, 표적수사나 과잉수사논란이 제기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언급됐다.
김 총장의 의지가 수사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기만 하면 불신받는 검찰이 신뢰받는 검찰로 거듭나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김 총장의 취임사는 기업인 수사와 관련해서 새삼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그동안 검찰이 경제민주화라는 광풍 속에서 최태원 SK회장, 김승연 한화회장 등 주요그룹 총수와 대기업경영자들에 대해 범죄행위에 입각한 엄정한 수사를 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때 그때의 분위기 수사, 여론수사를 하지 않았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과거엔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논란이 됐다면, 경제민주화시대에는 유전중죄가 관행화하고 있다.
사법부도 미리 형량을 정해놓고, 판결문을 쓰는 '기교재판' 논란이 일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횡령 사건을 담당했던 재판부는 그룹 매출이 150조원이나 되고, 개인 재산도 수조원이 되는 최 회장에 대해 거지라는 등의 모욕적 표현을 남발했다. 이어 수백장의 현란한 판결문을 통해 최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를 동시 구속하는 중형판결을 했다. 아무리 사회 분위기가 반기업적이라고 해도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할 사법부마저 재계 3위 총수에 대해 강도 높은 중형을 선고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업인에 대한 검찰수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먼지털이와 보복수사, 과잉수사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혐의가 있는 사안에 대해 별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을 경우 오너일가와 그룹 계열사들을 모두 뒤지고 압박해서 기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승연 회장의 배임 및 횡령수사가 대표적이다.
먼지털이 관행은 청산돼야 한다. 김 총장의 취임사처럼 치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사법부도 검찰의 먼지털이 수사에 의한 기소에 대해서는 엄격한 재판을 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계속 묵인하면 한해 매출이 수십조에서 수백조원에 달하는 대기업들도 수사망에 걸려들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될 수 있다.
배임죄 기소에 대해서도 엄격한 적용이 시급하다. 배임죄가 검사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면 기업인들은 매일 형무소 담벼락위를 걸어야 한다. 상법상 최고경영자로서 성실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문구를 보면 이것처럼 애매한 게 없다. 최고경영자가 매출증대, 수익제고, 그리고 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원 등을 통해 성실한 의무를 다했다고 해도, 검찰은 정반대의 시각으로 기업인을 배임죄로 기소할 수 있다. 위기에 직면한 계열사에 대한 지원이 그룹차원에선 정당하고, 성실한 의무를 다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주주에 대한 손해를 끼쳤다며 기업인을 배임죄로 얼마든지 기소할 수 있다. 이현령 비현령의 대표적인 악법이 배임죄다.
검찰도 배임죄에 대해 기업인이 이사회 의결을 거쳤거나, 정당한 경영활동을 한 경우라면 폭넓은 자율경영을 인정해줘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정상적인 경영행위에 대해선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는다. 일부 우리나라 검사들은 공명심에 사로잡혀 기업인들을 배임죄로 기소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기업가정신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검찰은 경제민주화 광기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여론수사, 분위기 수사논란을 일으켜선 안된다. 명백한 탈세, 시장경제 질서를 해치는 범죄에 대해서 엄벌에 처하는 것과는 구별해야 한다.
외환위기 등 국가적 재난시의 경영행위에 대해 현재의 잣대로 엄벌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효성과 한화 총수의 경우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뼈를 깎는 자율적인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넘겼다. 모든 것이 글로벌화하고, 경영투명성이 높아진 지금의 상황과 재계 모두가 부도위기에 몰렸던 외환위기의 상황을 똑같이 간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총수들을 무조건 구속수사하는 관행도 고쳐져야 한다. 재판을 받으면서도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탄력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투자도 이루어진다. 일반 잡범이나 정치범과 기업인을 동일잣대로 수사하는 것은 곤란하다.
김진태 총장은 사람 살리는 수사를 강조했다. 기업과 기업인을 죽이는 수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비리 등 환부는 도려내되, 기업을 살리고, 기업가 정신이 위축되지 않는 수사를 해서는 안된다.
고름만 도려내는 스마트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 및 기업인 수사가 3~4년씩 장기간 이어지는 것도 없어져야 한다. 수사가 장기화하면 기업들이 심각한 경영차질을 빚는다. 투자와 일자리창출 등이 표류하곤 한다. 김진태 총장의 초심이 소중히 지켜지기 바란다.[미디어펜=이의춘 발행인 junglee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