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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
대자보 울림이 대단하다. 한 대학생이 그저 안녕을 말했는데 가타부타 반응이 거국적이다. 연예인으로, 고교로 잇더니 해외로도 뻗어간단다. 아날로그 손글씨요 오프라인 벽보이건만 빛의 속도가 따로 없다. 요 며칠 페이스북, 트위터 등속은 뉴스 현장에서 열중 쉬어 자세로 물러났을 정도다. 가장 원시적인 종이 필기 벽보가 첨단 SNS를 밀어낸 비현실적 정황을 겪고 있다. SNS가 아니면 죄다 뉴스 못 채울 것처럼 구는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정말 빅뉴스다. 미디어 석기 시대 대자보가 뉴미디어를 불러 모아 가르치는 형국이다. 미디어 전공, 언론 산업, 여론 현장 차원에서도 만나기 힘든 희귀 사건이다.
‘안녕’ 대자보는 제 구실 못하는 우리 한국 언론산업 자화상이어서 더욱 엄중하다. 대자보 하나가 대한민국 언론 대부분을 덮어버리는 대안언론으로 부각되었다는 현상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최초에 대자보가 핫 이슈가 된 데에는 언론 전반을 불신하고 이탈하기 시작한 독자들과 이를 재빨리 감지한 부실 언론사들의 비겁한 맞장구가 한 몫 했다.
뉴스취재 – 뉴스제공 소임도 못하고 뉴스입수 – 판단제공에 매달려왔던 부실 언론사들이 대자보 얘기를 손쉬운 먹잇감으로 오인하고 달려든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나마 뉴스생산 축에 드는 뉴스입수 차원마저 무시해버린 판단입수 – 판단제공이라는 일사천리로 치닫고 말았다. 대자보 논조와 판단을 가져와 자기 매체를 통해 증폭하거나 굴절시켜버림으로써 매체가 사상 주입 경로가 되게끔 획책한 꼴이다. 저작권 묵살하고 뽀로로나 헬로 키티 인형 만들어 파는 불법 반칙 비즈니스 모델과 다르지 않다.
짝퉁 인형과 마찬가지로 판단제공과 판단강권에 열중하는 얼치기 뉴스도 정품 진품 오리지널리티를 침해해버린다. 대자보 퍼 와서 주관적 의미 부여라는 가공 절차를 거친 후 확성기 갖다 대는 식으로는 뉴스 자체 고유가치를 최종 이용자에게 오롯이 전해줄 수 없다. 특정 매체가 특정 주관으로 뉴스에 손대고 가공하고 포장한다면 고객은 스스로 힘으로 세상을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독자 몫인 판단을 돕기는커녕 방해하는 것은 미필적 고의가 아니다. 아둔하고 악덕한 부실 언론사들의 고의적 자해 행위다. 뉴스 업을 망치고 산업을 퇴행시키는 만행이다. “정론지는 고객 판단(judgement)을 돕는 기사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뉴욕타임스 가문 설츠버그 회장 어록을 새길 때다. 판단 장사에 탐닉해 날로 극단화하고 있는 부실 언론사들은 시말서 준비해야 한다.
대자보가 뭔가 큰 촛불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기사 편집은 판단 도움이 아닌 판단 강요, 논조 강매에 다름아니다. 대자보 아마추어리즘 발언을 살짝 가져다가 자기 매체 판단과 당위론적 주장 불 지피기에 동원하는 지나친 메타 콘텐츠 수법도 횡행하고 있다. 이런 악습은 이념 과잉, 정치 편향, 뉴스 근본 무시로 얼룩진 한국 언론산업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제라도 부실 언론사들은 판단장사 아니면 도색잡지 방면으로 오가는 저급한 사이비 짓 관두고 뉴스현장 취재 – 뉴스제공에 골몰하기 바란다. 네이버 뉴스스탠드에 넘쳐나는 부실 언론사들 막장 편집, 말초 자극 짝퉁 뉴스들 때문에 너무나 안녕치 못하다는 독자들 볼멘소리를 얻어맞기 전에.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