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처리 저지를 위한 야당의 국회 본회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결국 '선거 마케팅'이자 '정치쇼'에 불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3일부터 국회를 마비상태로 몰아넣었던 필리버스터를 "2일 이종걸 원내대표의 무제한토론을 마지막으로 종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가 IS의 테러와 공포로부터 몸살을 앓고 "대한민국도 테러 대상국"이라는 위협을 IS로부터 받았다. 북한은 4차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을 쏘며 무력 도발을 감행했다.
유엔 안보리는 대북제재 수위를 유례없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런 안보의 중대 위기 상황에서 정작 당사국인 대한민국에서는 테러방지법을 놓고 더민주를 비롯한 야당이 국회를 마비시키며 필리버스터 세계 신기록을 갈아 치웠다고 의기양양해 있다. 필리버스터 발언 중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국정원을 매도하고, SNS 글이나 신문기사를 읽으며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이런 작태를 부리면서 테러방지법 운운했으니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이다. 대한민국은 IS가 아니더라도 북한에 의한 테러가 빈발했다. 1983년 아웅산 테러, 1986년 김포공항 테러, 1987년 KAL기 폭파 테러, 2010년 연평도 폭격 테러로 수많은 이들이 무고한 생명을 잃었다. 북한은 탈북자 이한영을 암살했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노려 암살조를 파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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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은 29일 오후 잇따라 의원총회와 규탄대회를 열고 필리버스터 중단 선거법 및 여야 합의·무쟁점법안 처리 협조 경제활성화·노동개혁·민생 입법 협조 등을 야당에 촉구했다./사진=미디어펜 |
북한의 사이버 테러는 이제 일상화 됐다. 언제 어떻게 나올지 예측불가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로 타격을 입으면 북한의 대남테러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김정은은 체재 결속을 위해 대남테러를 선전도구로 악용할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 이들이 벌인 일은 국회를 마비시키고 테러방지법안과는 상관도 없는 한가한 '신세타령'이나 다름없는 얘기들로 국민을 우롱했다.
더민주를 비롯한 야당의 안보불감증이 도를 넘었다.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지만 현재 야당의 행태는 민생도 안보도 없고 오직 선거만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보에 관한 테러방지법을 걸고넘어진 것은 선거라는 전략적 핑계로 설명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선거가 채 5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 테러방지법을 빌미로, 선거구 획정을 볼모로 무려 9일간이나 필리버스터를 벌인 것은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더민주와 야당이 얻은 것은 '안보불감증'이란 고질적 병폐가 더 깊어졌다는 자괴감만 심어줬다.
필리버스터에서 행한 발언이나 자평들도 기가 막히다. 터무니없는 얘기로 '시간 오래 끌기' 경쟁이라는 유치한 것에 더해 중대한 국가안보와 현안들을 희화화하고 웃음거리로 만들기까지 했다.
10시간 15분을 채운 뒤 눈물을 흘렸던 더민주 은수미 의원은 2일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 후 한 라디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식으로 함부로 중단을 하면 누가 우리한테 표를 주겠느냐, (국민들이) '항상 그럴텐데, 하다 말 텐데' (인식할 것)"이라며 불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은 의원은 세계 최장 기록을 깬 필리버스터에 대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처음으로 마치 ET 영화 같았다. 외계인과 지구인이 처음으로 손을 딱 접촉하는 그 장면이다"라고 말했다.
필리버스터 최장 시간 발언의 기록은 무려 11시간 39분 동안 발언한 정청래 의원이다. 정청래 의원은 시종 독설로 일관했다. 국가원수에 대한 비난과 막말도 거칠었다. 필리버스터를 마무리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만들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테러방지법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정 의원은 신기록 행진을 트위터 등에 올리며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
1일 테러방지법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33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박영선 의원은 "필리버스터 중단은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결정"이라며 "모든 분노의 화살은 저에게 쏴 달라. 제가 다 맞겠다"고 눈물을 보였다. 이어 "4월 13일 야당을 찍어주셔야 한다. 야당에게 과반의석을 주셔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에 힘을 주시고 야당을 키워주셔야 한다"고 재차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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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무제한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정 의원은 이날 오전 4시 41분부터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 11시간 39분 뒤인 오후 4시 20분에 마쳐 최장 기록을 세웠다./사진=연합뉴스 |
필리버스터를 끝낸 박영선 의원은 1일 밤 트위터에도 '박영선 필리버스터 중단 비난, 그 화살 나에게 쏴라'라는 기사를 링크하며 "분노하신만큼 4.13 총선에서 야당 더민주에게 표를 주십시오"라는 글을 남겨 필리버스터를 악용해 표를 구걸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2일 새벽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 앞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필리버스터에 모인 국민의 열정과 관심이 투표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심상정 대표는 "필리버스터를 선거운동이라 비판하지만 모든 정치는 선거운동"이라며 "선거는 국회의원, 정당의 정치적 실천을 판결하는 자리다. 테러방지법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자리에 선 이유"라며 필리버스터가 선거를 겨냥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2일 "어제 더민주의 박 모 의원이 눈물을 쏟으면서 '이번 총선에서 표를 몰아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정말 아연실색했다"면서 이번 필리버스터에 대해 "총선을 위한 '선거버스터'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민생법안을 처리하고 선거법을 처리하자고 호소했지만 야당은 오로지 선거뿐이었고, 선거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면서 "총선을 위한 필리버스터가 아니라 민생을 위한 필리버스터였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필리버스터에 나선 야당은 테러방지법 '입법 지연'외에는 스스로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했던 내용조차 하나도 수정하지 못했다. 사실상 '입법 반대' 목적이라기보다는 총선용 홍보장으로 필리버스터를 활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결국 선거법 처리의 지연에 따른 역풍에 스스로 무덤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 확인된 것은 야당이 운동권의 구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체질 개선은 국민의 여망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적 '희망'을 부른 것이 아니라 '절망'을 각인시켰다. 민생과 안보를 팽개치고 자신들의 '정치쇼'에 빠진 시대착오적인 이들에게 과연 국민은 어떤 답을 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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