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상공단 중단·사드배치…패러다임 전환 새로운 통일 길 유도
   
▲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
예상대로 합의에 가장 긴 시일이 걸린 대북 제재안이 안보리를 통과했다. 안보리가 '지난 20년 간 내놓은 제재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라는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서맨사 파워의 진술은 허언이 아닐 것이다. 개성공단까지 닫고,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고강수를 던진 대통령의 의지는 관철됐다.
 
필자는 이미 지난 1월 18일에 쓴 글에서 두 가지를 짚은 바 있다. 이번 4차 핵실험에 대한 대북 제재 결의안 통과에는 한 달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것과 캐치-올(catch-all)이 의무사항이 될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라는 전망이었다. 그리고 미·중 관계가 결정변수라고 분석했다.
 
2013년 2월 3차 핵 실험에는 24일 걸렸던 제재안(2094호) 통과에 이번엔 두 배가 넘는 57일이 걸렸다. 그만큼 안보리 합의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당연한 방증이다. 남한 내 '사드'배치 논란이 제대로 대중 지렛대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개성공단 중단도, '사드' 도입 결정도 최고 통수권자의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대통령은 실효적인 대북 제재안 확보에 '올인'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의 '이익'과 충돌하지도 않았다(만약, 그랬다면 이만한 대북제재안 결의는 어려웠을 게다). 한 때 한국 대외정책 기조의 '로망'이었던 '동북아 균형자론'은 이제 현실공간에서는 사라졌다. 보다 현실적이 되었다는 의미다.
 
이쯤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 그렇다면 대통령은 왜 이다지도 대북 제재에 집중하는가?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둘째, 미국은 왜 한국의 대북제재 이니시어티브에 호응해 줬는가?
 
   
▲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제재는 '비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핵화를 전제로한 북한의 변화를 통해 통일의 물꼬를 열겠다는 강한 의지와 신념의 표시다. 사진은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계룡대에서 열린 2016년 장교 합동임관식에서 신임 장교들에게 손을 흔들며 축하의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첫째 질문은 대통령의 상황인식에 달려 있다. 북한이 변화의 신호를 보내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유화책은 효과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법 하다. 그렇다고 이것이 곧 대북 대결정책으로의 전환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 북한정권의 교체도 감안 내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과 같다. 과거 당근을 통한 유인적 대북 접근은 북한 기존 체제의 유지라는 보수성을 전제로 했다. 과거 진보정권이 북한정권의 유지라는 수구적 입장을 가졌던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현직 대통령은 이 부분에서 과감하고 진보적인 절연을 선언한 것이다. 당근이 실패했으니 채찍을 통해 변화를 유인하겠다는 각오다. 사실 어지간한 의지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은 제법 진실을 담고 있다. 그것을 감수하는 거다. 여기엔 나름의 계산이 있을 것이다. 절대 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거나 물면 바로 물어 죽인다는 결정력과 능력이 전제돼 있다거나.
 
다행히도 대통령의 과녁이 북한 정권 자체를 향하는 뉘앙스는 절묘하게 피하고 있다. 오로지 북한의 비핵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배수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수순에 이르면 통일이 될 수 있다는 '대담한 추측(conjecture)'이 깔려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아마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고 나서기만 한다면 그 어떤 지원이라도 기꺼이 할 것이다. 언제 도래하든 한반도가 통일이 될 때 박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를 통해 통일의 토대를 놓은 대통령으로 평가될 것임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치, 박정희 대통령이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를 깔아 경제부흥의 기초를 깔았다는 평가를 받듯 말이다. 북핵 문제를 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그간의 대북정책이 문화와 경제의 잦은 교류와 협력을 축적해 나가다 보면 일정한 수준의 정치적 합의에도 이른다는 신기능주의적 철학에 입각해 있었다면 반대로 '패러다임의 전환'같은 대북 인식의 틀이 바뀐 것이다. 그 중심에 북한 핵이 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만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이 되는 것이다. 이제 그 길을 가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다.
 
두 번째 질문, 미국은 중동만큼이나 복잡한 동북아 현안과 한국의 선택에 어떻게 동참하게 된 것일까. 불과 2년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결기도 보여주지 못한 미국이 말이다.
 
상대가 러시아가 아니라 겨우(?) 북한이기 때문인가? 북한의 등 뒤에는 중국이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선 우크라이나 사태가 교훈이 됐음직하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대러 경제제재는 그리 실효적이지도, 강력한 핵 억지 의지를 펼치지도 못하고 우유부단함을 남긴 채 물러났다.
 
미국으로선 전세계 크게 3곳의 전장(戰場)이 있다. 동유럽-중동-동북아. 유럽엔 나토(NATO)가 있고, 중동엔 이스라엘이 있다. 동북아에는 일본과 한국이 있으나 이 둘 사이에는 결코 '하나'가 되기엔 너무나 먼 역사적 상처가 있다. 지난 연말의 한·일 위한부 합의는 정치적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북한 핵의 수위가 이제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뒤늦은 자괴감을 미국 조야가 인식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대통령의 '과감한 올인'에 미국으로서야 '잃을게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북 압박을 위해 꺼낸 '사드'카드가 대중 영향력의 결정적 '트리거'(방아쇠)로 작동하는 동북아 역학구도가 만족스럽지 않겠는가.
 
정작 문제는 북한이다. 이미 북한의 대남, 대미 협박 수준은 상식적인 '금도'를 넘었다. 언제 미사일을 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지경이다. 다만 진짜 북한이 그런 무모한 일을 벌이겠냐는 '부정의 신뢰감'이 높기 때문에 체감되는 위험지수가 낮을 뿐이다.
 
모든 국제정치 학자와 남한과 미국의 정책입안자가 동의하는 한가지 사실은 북한이 미국을 향해 핵 미사일을 쏘는 순간, 북한이란 체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 개성공단 중단도, '사드' 도입 결정도 최고 통수권자의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은 실효적인 대북 제재안 확보에 '올인'했다. /사진=연합뉴스

역사적으로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을까? 미국으로선 1940년대 일본과의 경험이 남아있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이 있기 전까지 당시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감히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겠느냐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제정신이라면 미국을 공격해 얻을 것은 재난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기 때문"(국무부 차관보였던 딘 애치슨의 증언)이었다.
 
당시 미국은 대일 석유 금수조치와 자산 몰수라는 경제제재로, 인도차이나와 중국에서 철수하라고 일본을 압박하고 있었다. 일본은 이를 강대국 지위를 포기하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였다. 아시아권에서는 유일했던 제국주의 대일본제국은 물러서기 보다 차라리 전쟁을 택했다.
 
일본은 미국의 정치력이 약하기 때문에 전쟁이 장기화되거나 비용이 높아지면 쉽게 포기할 것이라고 믿었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경제제재와 전쟁이 별반 다르지 않으며 시간만 끌어봤자 일본의 국력만 쇠퇴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그 때의 일본과 현재의 북한을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다. 1940년대의 일본은 전세계 제국주의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최강의 군사력을 갖춘 상태였다. 아시아 유일의 제국으로 영국과 두 번이나 동맹을 맺을 만큼 아시아 대륙으로 야심을 뻗치던 맹주였다.
 
오늘날 북한이 그 당시 일본만큼의 국력이나 군사력을 갖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때 대일본제국의 본영을 지배했던 끝 모를 자부심과 지금 북한 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근거없는 억지 자존감은 역설적이게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북한 핵은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물리적 수단인 것이다.
 
1940년대 제국주의 일본처럼 2016년 북한정권도 경제제재로 나라가 거덜나는 걸 지켜보느니 군사행동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릴까? 그나마 다행(?)인건 남한과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북한과 맞닿아 있는 중국과 러시아도 그 상황만큼은 결코 원치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어쩌면 박대통령은 이런 동북아시아의 안보구조적 특징을 믿고 대북제재에 올인한 것일까?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현명하다면 5월 당대회가 끝나고 하반기로 넘어서면 물밑 대화를 암중모색할지 모른다. 아니 외부의 시선으로는 북한의 어느 현명한 '초인'이 등장하여 어리석은 지도자를 제거하고 '말이 통하는' 새로운 정권을 세운들 마다할 리 없다.
 
그런 류의 공작이라면 CIA가 최고인데 그것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 한반도일테니 미국으로선 입맛만 다실 일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파란 눈의 이방인이 북한 내에서 어떤 공작인들 할 수 있겠는가! 인적 정보네트워크에 관한 한 한국이 최고 경쟁력을 갖춘 부문일텐데 DJ 정부 아래 무너진 휴민트 망이 얼마나 복원이 됐는지는 미지수다.
 
이러나 저러나 대통령의 초강수 대북제재 외교의 결말은 결국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진부한 표현만이 오늘 남길 수 있는 결론의 전부 같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
[김효진]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