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 돌파, R&D 혁신에 달렸다(上)
소비자의 눈과 손은 언제나 친숙한 제품에 향한다.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제품은 승승장하는 반면 어떤 제품들은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종적을 감추기도 한다.

먹을거리의 경우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끊임없는 혁신과 연구개발(R&D)이 필수적이다. 특히 성공한 제품들의 성공 이면에는 R&D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한국의 R&D 투자 규모는 1980년대만 해도 국내총생산(GDP)대비 1%에 못 미쳤지만, 1990년대부터 공공과 민간부문에서 투자에 박차를 가한 결과, 2014년에는 GDP 대비 4.29%로 늘어나 세계 최고 수준의 비율에 도달했다. 그러나 질적 성과는 미흡하다. / 연합뉴스

지난해 ‘짜왕’과 ‘맛짬뽕’ 등으로 굵은 면 열풍을 몰고 온 농심은 면발 혁신에 집중했다. 최근 짬뽕라면 전쟁을 선도하고 있는 ‘진짬뽕’을 개발한 오뚜기 연구진은 중화요리용 팬인 웍(Wok)의 원리로 불맛을 냈다. 

국내 만두시장 사상 최초로 단일 브랜드 월 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CJ제일제당 ‘비비고 왕교자’의 성공도 과감한 R&D 투자의 결실이다. CJ제일제당은 경기도 수원에 통합 R&D 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달콤한 감자스낵 열풍의 주역인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과 과일맛 소주를 유행시킨 롯데주류의 ‘순하리 처음처럼’ 등도 한발 앞선 기획과 개발로 시장을 뒤흔들었다.

순하리를 비롯해 클라우드, 롯데리아 강정버거, 롯데제과 말랑카우 등은 롯데 식품 계열사들의 연구 기능을 모은 롯데중앙연구소가 개발한 제품들이다.

롯데그룹은 내년 6월 서울 마곡산업단지에 새 통합식품연구소를 연다. 2200억원이 투입되는 이 연구소는 현재보다 5배 이상 크며, 연구 인력도 300여명에서 600여명으로 늘어난다.

이처럼 적극적인 R&D를 통해 성공하는 제품들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 식품업계는 여전히 타사의 성공한 제품을 베끼는 전략에 의존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리고 이는 비단 식품업계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나의 제품이 기업의 운명을 가르고 산업의 지형을 바꾸기도 한다.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높은 생산성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성공을 거둬왔지만 이제 ‘따라하기 식’ R&D 전략으로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우리 산업의 R&D 투자 규모는 양적으로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늘어났지만 여러 가지 혁신시스템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생산성은 아직도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정부가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증가시켜 왔지만 R&D 투자를 늘리는 것만큼 특허 창출이나 사업화 면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반도체 공장을 견학중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투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최고 수준이나, R&D 투자총액은 중국의 5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OECD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4년 기준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4.29%로, OECD 34개 회원국과 주요 7개 신흥국 등 41개국 가운데 1위다. GDP 대비 R&D 투자 비율 2위에는 4.11%인 이스라엘이, 3위에는 3.58%인 일본이 올랐다.

핀란드(3.2%), 스웨덴(3.2%), 덴마크(3.1%), 오스트리아(3.0%), 대만(3%) 등도 경제규모 대비 R&D 투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중국의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2.05%로 유럽연합(EU)의 1.94%와 격차를 벌렸다. 중국의 R&D 투자는 1995년 GDP의 0.57%에서 서서히 늘어나 2011년에는 영국을, 2012년에는 EU를 각각 넘어섰다.

OECD 국가들의 평균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2014년 2.37%로 전년과 같았다.

각국의 2014년 R&D 투자를 총액(실질·구매력평가 기준) 기준으로 보면, 미국이 4569억 달러(2013년 기준)로 가장 많았고, 중국이 3687억 달러로 처음으로 EU(363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어 일본 1669억 달러, 독일 168억 달러 등의 순이었다.

한국의 GDP대비 R&D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R&D 투자 총액은 723억 달러로 OECD 6위였다. 한국의 R&D투자 총액은 미국의 6분의 1, 중국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각 기업이 발표한 회계보고서를 토대로 전 세계 기업의 R&D 투자현황을 조사한 결과, 2014년 R&D 투자 상위 1000대 기업 중 한국기업은 22개사였다.

삼성전자는 폭스바겐(131억 유로)에 이어 121억 유로를 R&D에 투자해 2014년 R&D 투자 상위 10대 기업 중 2위에 올랐다. 마이크로소프트(99억유로), 인텔(95억유로), 노바티스(82억유로), 구글(81억유로) 등이 뒤를 이었다.

세계 R&D 100대 기업에는 삼성전자 외에 LG전자(46위·26억유로), 현대자동차(79위·14억유로), SK하이닉스(98위·12억유로) 등 4곳이 올랐다.

이처럼 경제규모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투자 대비 질적 성과는 크게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시대에 돌입해 R&D에 기반을 둔 기술혁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여 질적 성과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기술 혁신을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시간이 걸리고 어렵더라도 기초·원천연구에 집중하거나 R&D 투자의 성과를 높여서 사업화 가능한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