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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주필 |
요즘 유행어를 잠시 빌리자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미생(未生)국가다. 일제로부터 벗어난 지 70년이 넘지만 껍데기만 남은 나라여서 우리가 소원하는 완전한 국가 즉 완생(完生)국가로 분류하기가 어렵다는 걸 요즘 들어 더욱 절감한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력과 경제규모를 자랑한다지만, 초고속 성장만큼 더욱 빠르게 하강곡선을 긋고 있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핵무기를 거머쥔 '미친 체제' 북한도 여전히 위협요인이란 걸 거의 우린 체감한다. 국민들의 마음도 황폐화됐다는 것도 부인 못한다. 그 뒤숭숭한 마음의 한 자락을 저번 칼럼에서 나는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國家再造之運)"로 표현했다.
그 글에 독자들 반응이 좋았는데, 캐치프레이즈 자체에 대한 공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라는 4백여 년 전 율곡 이이나, 서애 유성룡의 목소리가 지금 더욱 간절하게 들린다. 한번 번성하면 쇠락하는 게 세상법칙이니 어쩔 수 없는 걸까?
'2년씩이나' 남아 있는 박근혜 정부 임기
아니다. 건국 70년이 채 안 되는 '청년 대한민국'이 이럴 순 없다. 작금의 상황 타개란 진영논리를 떠나서 정치-사회적 큰 합의가 이뤄져야 할 사항이 분명하다. 누구는 물을 것이다. 그런 대개혁을 추진할만 동력이 과연 우리에게 남아있을까? 크면서도 촘촘한 개혁의 디자이너도 부족한 게 아닐까?
막 내리는 19대 국회의 일정, 기대치가 높지 않은 정치사회적 리더십 등을 모두 감안하면, 대반전의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권력은 살아있다. 박근혜 정부는 아직 2년 가까운 임기를 남기고 있으며, 비정상화의 정상화의 큰 그림을 놓쳐선 안 된다.
또 담론으로서의 문제제기와 여론형성이란 항상 필요하지 않을까? 그 차원에서 지난 번 글에서 나는 미생을 완생으로 바꾸는 국가개조의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4월 총선에서 우린 무얼 해야 할까를 점검했다. 총선 승리 뒤 취약한 자유민주주의를 어떻게 재정비할까도 따져봤다.
요약하자면 4월 총선에서는 운동권 퇴출혁명을 이뤄내야 하며, 그 여의도발(發) 개혁을 발판 삼아 독일-이스라엘 모델을 따라 지금이라도 '방어적 민주주의의 철갑옷'을 제대로 입자는 포괄적 제안이었다. 다행히 그 직후 테러방지법이 통과됐지만, 그건 첫 단추 꿰기에 불과하다.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사이버테러방지법 통과 같은 후속 법안처리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전체의 그림 즉 국가 시스템 재건에 눈을 돌려야 한다. 당장 새누리당은 오늘 9일 "사이버테러방지법은 국가안보 수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법안 처리를 위한 야당의 협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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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사이버테러방지법 통과 같은 후속 법안처리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전체의 그림 즉 국가 시스템 재건에 눈을 돌려야 한다. 사진은 지난해 8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전시 대덕연구단지 내 카이스트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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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시스템 재건 없이 내일도 없다
그의 말이 맞다. 국가의 중추신경인 전산망을 지켜내는 일에 여야가 따로 있겠는가? 단 할 말은 하자. 새누리당은 야당을 향해 "당신들만 무사태평"이라고 힐난했지만, 그건 오십보백보가 아닐까? 집권여당의 무능, 그리고 2000년대 초반 한국사회 전체를 보는 능력의 부재가 오늘의 ‘미생국가 한국’의 불안한 모습을 공동연출하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그 뿐이랴?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직후 국내 일간지에는 1면 광고에 "경제법안은 왜 외면하십니까?"라는 굵은 제목이 떴다. 소상공인연합회등 100개 내외 단체들이 경제활성화법안을 19대 국회에서 꼭 통과시켜 달라는 하소연이었는데, 그 역시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제기다.
그와 별도로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8일 성명을 내고 국회가 2월 임시국회 종료를 앞두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권련법 등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경제는 저성장·저출산·고령화가 속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인데, 경제관련법안 통과는 큰 모멘텀의 확보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잊으면 안된다. 반복하지만 사이버테러방지법 통과, 경제활성화 법안 통과라는 숙제도 쉽지 않지만, '그 이후'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전체의 그림, 즉 국가 시스템 재건에 눈을 돌려야 한다. 국가 시스템 재건이란 말은 경제경영전문가 공병호의 책 <3년 후, 대한민국은 없다>에도 등장한다.
'총제적 난국에 빠진 대한민국 민낯 보고서'란 부제가 붙은 그 책의 문제의식은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와 결국은 같다. 예견되는 파국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그걸 물을 때가 지금이다. 결국 이 모든 건 '2년씩이나' 임기가 남은 박근혜 정부의 몫이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은 "자다가도 몇 번씩 깰 통탄스러운 일"이라며 책상을 내리쳤지만, 백 번 공감한다. 그런 분노와 개탄을 긍정과 개혁의 정치-사회적 에너지로 바꿔놓는 광폭의 정치력을 발휘할 때가 지금이다. 그리고 큰 줄기도 너무나 자명하다.
테러방지법-경제활성화법을 넘어 헌법의 체제방어 조항을 보강할 것, 테러방지법은 물론 형법, 헌법보호법, 사회단체법(결사법), 정당법, 집회시위에 관한 법, 통신비밀제한법 등을 만들어 체제방어에 올인할 것, 그것만이 답이다.
놀랍게도 대한민국을 보위할 이런 '철갑옷'이 미비했던 건 1948년 건국부터 노정됐던 결정적 한계였다. 대한민국의 건국 자체가 이승만이란 걸출한 지도자가 연출했던 기적이었지만, 체제를 방어할 철갑옷이 없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 해도 또 한 번의 기적이라고 봐야 한다. 다음 번 글에서는 우리가 왜 그런 부실한 체제였는지를 1948년 헌법 제정과 개정과정 검토 통해 별도로 점검해보려 한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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