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세금으로 연명하면서 서비스 질은 엉망, 경영효율 시급

   
▲ 김종석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홍익대 경영대학원장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절대빈곤이 있고, 대부분 국민의 생활수준은 선진국보다 낮다. 아직 우리는 더 성장해야 하고 더 높은 소득을 올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선진국 문턱에서 저성장을 반복한 지난 5년은 우리 미래에 큰 기회손실을 남겼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선진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선진화는 경제성장 보다 넓은 개념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우선 제도에 대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축적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은 남들도 줄을 서기 때문이고, 언젠가 내 차례가 온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새치기와 갓길 운행이 만연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는다. 신뢰가 무너지면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는다. 제도에 대한 신뢰를 유지시키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편법과 떼쓰기가 통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려 하지 않는다. 선진국에도 억울한 사람들이 있고 주말 시위가 있고 집단행동이 있다. 그러나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깽판’을 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사회가 선진국일 수는 없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기초 질서부터 확립해야 한다. 그래야 질서를 지키는 평범한 국민들이 제도를 신뢰하고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다.

열심히 일해서 소득만 올라간다고 생활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두 배가 넘는 선진국들을 방문해 그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면 많은 경우 그 사람들의 소비 수준이 한국 사람들 보다 크게 높지 않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선진국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선진국 국민들의 생활수준과 삶의 질은 분명히 우리보다 높다.

   
▲ 철도노조 파업이 18일째 이어지는 26일 오후 서울 용산역 전광판에 코레일의 사과 메시지가 게시되고 있다.

선진국 국민들의 높은 생활수준은 개개인의 소비 수준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리는 질 높은 공공재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기초질서, 깨끗한 환경과 공원, 대중교통 시설과 통신망, 행정 사법제도, 공교육 제도 등과 같이 온 국민이 함께 혜택을 누리는 기반시설과 제도 등이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도 물론 공공재의 일종이다.

특히 응급구난 서비스, 사회복지 제도, 의료제도, 경찰서비스 등은 모든 국민이 직접 혜택을 누리지는 않더라도 그런 서비스와 안전망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생활의 질은 향상된다. 이런 점에서 공공재는 모든 국민 삶의 질 향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만 사유재산과 달리 소득이나 신분의 구별 없이 모든 국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평등재이면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복지 증진 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상품이다.

선진국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누리는 소비수준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런 양질의 공공서비스와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있기 때문에 이들이 누리는 총체적인 풍요와 삶의 질은 우리의 몇 배가 되는 것이다.

휴가철에 고속도로가 막혀 놀러갈 엄두도 못 내고, 시도 때도 없이 시위대 때문에 교통 체증을 겪어야 하고, 사고를 당해도 변변히 응급치료도 못 받아 길에서 죽어야 하고, 수돗물을 못 믿어 정수기를 설치해야 하고, 공교육이 낙후 되서 엄청난 사교육비를 써야 하고, 민원 하나를 처리하고자 해도 복잡한 절차에 사사건건 공무원 눈치나 봐야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 경찰이나 법원에 호소해도 제대로 해결도 되지 않고, 생활 주변에 불법, 탈법, 편법, 무질서가 만연되어 있다면 우리나라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나 4만 달러가 된다고 해도 우리 삶의 질은 크게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진정한 의미의 선진 복지 국가를 이루려면 국민소득 증가와 함께 질 높은 공공서비스와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복지고 국민 삶의 질 향상이다.

문제는 공공재도 재화이기 때문에 돈을 내고 구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공공재는 국민이 세금을 내고 정부로부터 공동 구입해야 하는 재화일 뿐이다. 선진국 국민들이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는 것은 바로 그런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 값을 내고 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진정 일류 선진국으로 만들어 국민 생활의 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자 하면,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최소의 비용으로 공급하는 공공부문이 있어야 한다. 효율적인 공공부문이 없이는 선진 복지 국가가 될 수 없다. 정부개혁의 초점은 여기에 맞추어 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철도노조의 파업은 한국경제가 진정 선진화 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매년 수 천억원의 세금으로 연명하면서 제삼세계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영철도가 존재하는 한 한국경제의 선진화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김종석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홍익대 경영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