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 "정의롭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정청래 "좌시 않겠다" 이후 '침묵'
조국·진중권·문성근 '태세전환', 손혜원 "당이 잘못" 여론 반전 꾀해
문재인 만난 김종인, "좀 더 고민할 시간 갖겠다" 갈등의 불씨 여전
[미디어펜=한기호 기자]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자신을 향한 비례대표 '셀프공천' 논란에 격노해 당무를 거부, 대표직 사퇴까지 시사하자 공세에 앞장섰던 당내 친노(親노무현)계가 급격한 태세전환에 나섰다.

특히 논란 사흘째인 22일 친노계 수장인 문재인 전 대표마저 침묵을 깨고 급거 상경, 칩거 중인 김 대표의 자택에 방문해 김 대표에게 당대표 역할을 계속해달라며 사퇴를 만류하는 등 완전한 '김종인 달래기' 모드로 전환했다.

앞서 20일 김 대표가 대표 권한으로 남성 몫의 비례 2번에 자신을 전략공천한 것을 비롯한 비례대표 명단이 공개되자, 당일 열린 중앙위에선 셀프공천과 후보자 자격 등을 놓고 위원들의 반발이 줄을이었고 김 대표가 도중에 퇴장하면서 파행으로 이어졌다.

특히 친노 주류의 김광진 의원은 20일 자신의 SNS에서 김 대표를 겨냥해 "김 대표의 셀프전략공천은 정의롭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면서 "어떻게 자신이 셀프 2번을 전략비례로 공천할 수가 있을까!"라고 규탄했으며, 중앙위에서도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이같은 비판을 제기했다.

또다른 친노 핵심으로 꼽히는 정청래 의원도 같은날 자신의 SNS를 통해 "비례대표 추천, 기본상식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 사람들이 염치가 있어야지…좌시하지 않겠다"고 김 대표를 겨냥한 공세를 폈다.

이같은 논란 속에 중앙위는 하루 연기됐고, 김 대표는 당무거부를 선언하고 서울 구기동 자택에 칩거했다. 그 와중에 나머지 비대위원들은 21일 여의도 모처에 모여 '비례 14번'과 후보자 명단 중재안을 내는 등 셀프공천 비난 여론을 수용, 이를 잠재우려는 시도를 했다.

이에 김 대표는 '수용 불가' 방침과 함께 대표직 사퇴의 뜻까지 내비쳤다. "사람을 데려다 놓고 인격적으로 그따위로 대접하는 정당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한 갈등으로 당무를 거부해 오던 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22일 오후 오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에 참석했다. 거취에 대해서는 고민의 시간을 더 갖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자료사진=연합뉴스

중재안 수용이 진통을 겪으면서 21일 오후 3시 재개예정이었던 중앙위 회의는 5시로, 다시 8시로 연기된 끝에 개최됐지만 김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진 심야 중앙위에선 '비례 14번' 안을 도로 번복해 당 대표 당선권 추천 몫을 4명으로 하고, 이들에 대한 순번 결정을 김 대표에게 위임하는 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43명의 비례대표 순번을 A(1~10번)·B(11~20번)·C(21번 이후) 그룹으로 나눠 운동권 출신 인사를 C그룹으로 분류하기로 한 김 대표의 원안을 뒤집고 칸막이 투표를 철폐, 예비후보 25명 투표를 진행해 기존 C그룹 포함 인사들이 당선권인 10위 내로 입성하는 등 '운동권 정당 탈피'라는 취지를 크게 후퇴시켜 불화의 소지를 남겼다. 

반면 22일에 이르러선 친노 진영에서 김 대표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복심으로 꼽히며, 컷오프(공천배제)된 정청래 의원 대신 서울 마포을 총선 후보로 공천된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이날 오전 TBS라디오에 출연해 "우리 당이나 비대위원 등이 전략 쪽에서 굉장히 잘못했다"고 김 대표를 적극 두둔했다.

손 위원장은 김 대표의 분당사태 수습, 경제민주화 정책 등을 고평가한 뒤 "비례대표는 기여도"라며 "지금 김 대표 이상으로 우리 당을 제대로 잡고 나갈 분이 또 누가 있겠나"라면서 "이 분이 당연히 원내에 계셔야 하는데, 그것을 우리가 미리 배려하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친노성향 당외 인사들의 발언 번복도 있었다. 앞서 당 혁신위원으로 활동했던 조국 서울대 교수는 20일 SNS에 "김종인 대표, 비례대표 순위 2번 배정. 5번째 비례대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한지 하루만인 21일 "이번 더민주 비례대표 문제를 단지 김 대표의 순위 문제로 환원하면 안된다"며 칸막이 투표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21일 SNS에 "비례 2번이면 설사 선거에 참패를 해도 자신은 살아남겠다는 얘기"라고 김 대표를 힐난했으나, 이내 22일 "이른바 운동권 쳐내고, 우로 1클릭 해야 중도층을 장악해 새누리를 이길 수 있다는 거죠"라며 "그 역시 하나의 생각으로 존중해줄 수 있다"고 급격한 온도차를 보였다.

문성근 국민의명령 상임위원장은 지난 15일 친노 좌장격인 이해찬 전 총리가 컷오프된 뒤 탈당하자 김 대표의 불출마를 촉구한 바 있으나, 21일 SNS에서 "하루종일 고민을 했다"며 "김 대표의 비례 2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공개 옹호하고 나섰다.

이같은 친노계의 여론 전환 노력에도 김 대표는 칩거를 계속 이어갔다. 이날 김성수 대변인이 중앙위 의결사항을 전달한 뒤 김 대표의 '오전 11시 비대위 복귀'를 전해왔으나, 이와 달리 김 대표가 칩거를 유지하면서 사퇴설까지 흘러나왔다.

이에 문 전 대표가 직접 사태 수습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그는 이날 오전 경남 창원에서의 일정을 마치자마자 급거 상경, 오후 1시17분쯤 김 대표의 구기동 자택을 찾아 사퇴를 만류했다.

회동 전 문 전 대표는 "김 대표가 우리 당에 꼭 필요하다"며 "이번 사태 때문에 많이 서운하셔서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시다면 제가 잘 말씀드려 잘 결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회동 후 문 전 대표는 "(김 대표가) '대의적으로 아무런 욕심 없이 당을 살리는 그런 일만 해 왔는데 그것이 노욕인 것처럼 모욕당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며 "그런 마음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고, 마지막 결정은 모르겠지만 좋은 결정을 해주시길 기대한다"고 확답을 받아내지 못했다.

회동을 마친 김 대표는 자신의 사퇴설과 관련, "결정은 내가 종합적으로 발표할테니 지금 나한테 답을 들으려 하지 말라"며 "얼마 안 가서 내가 결심한 바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틀간의 칩거를 끝내고 이날 오후 3시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 참석, 약 1시간 회의를 주재한 끝에 언론 취재에 응하지 않고 국회를 떠났다.

회의 중 김 대표는 비대위원들에게 셀프공천 논란과 관련해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으며, 비대위원들은 한명씩 차례대로 그에게 직접 사과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노 수장까지 나서 당내 갈등은 일견 진정된 듯하지만, 김 대표가 "좀 더 고민할 시간을 갖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언제든 재점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앞장서서 김 대표를 성토했던 김광진 의원, 정청래 의원 등은 침묵 중이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