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올바른 정치란 폴리스(공동체)의 공동 이익을 위한 통치라고 정의했다.
국가와 국민들을 위하여 최선의 것을 실현하는 정치가 올바른 정치였다. 통치자의 수에 관계없이 최선의 사람들(aristoi)이 최선의 것(ariston)을 실현하는 통치를 중요시 했다. 다수에 의한 통치를 이상으로 하는 민주주의(democracy)가 최악의 경우 ‘폭도들의 통치’(mob rule)로 왜곡되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2013년 한국정치가 ‘폭도들의 통치’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을지 의심이다. 집권당 새누리당은 노무현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문제로 민주당과 대치했다. 하지만 아무 소득 없이 종결됐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대선 댓글 이슈만 가지고 한해를 허비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밀양 송전탑 반대, 철도 노조의 파업 등 각종 이익집단의 요구 어느 것도 정치권은 바르게 해결하지 못했다. 김무성, 박기춘 의원은 철도 파업을 해결한다고 노조 지도부의 ‘민영화’ 주장을 그대로 국회로 가져왔다. 불법 파업을 국회가 보호해준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의 ‘비정상의 정상화’ 노력에 재를 뿌리고 귀족 노조의 파업을 감내한 국민의 고통을 허공에 띄워 버렸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앞으로 모든 불법 파업은 정치인이 오기만 기다릴 것이고 국회는 파업처리 전담위원회를 만들게 생겼다.
핵심은 제주 강정마을 시위대든, 밀양 송전탑 반대자든, 철도 노조든 집단들은 이제 갑(甲)의 위치에서 정부를 몰아세우고,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탄압 받는 위치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서 그들의 편에 선다는 것이다.
결국 2013년의 정치권은 갈등의 해결사가 아니라 갈등의 증폭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서로의 지지자들만을 고려한 엇갈린 해결책을 제시하며 국민을 피곤하게 했다. 정치실패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3년 정치실패 때문에 국민은 답답했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최선의 것,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고, 정치(政治) 본래의 의미인 바른(正) 비전을 세우고 흐르는 강물에 둑을 쌓는 것처럼 흐름을 유도하는 것에는 근처에도 못 갔다. 국민은 정치권에서 미래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정치가 국민에게 행복한 미래를 약속한 한해가 아니라, 국민이 도리어 정치권의 미래를 걱정하게 만들었던 황당한 한해였다.
박근혜 정부도 성공적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했던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은 첫해부터 목표 달성의 기대를 접게 했다. 물론 거기에는 끊임없는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가 원인이지만 청와대의 미숙한 정국운영도 한몫 했다.
묻고 싶은 질문은 정권을 시작하는 첫해 야당의 발목잡기와 대선 불복을 예상하지 못했느냐이다. 박근혜 의원을 비롯하여 친박 세력들이 정권을 잡겠다고 나섰을 때 그들은 이미 정치권의 프로들이었다. 집권 첫해 야당의 발목잡기 행태를 예상하여 미리 플랜 A, 플랜B, 플랜C를 준비해 놓았어야 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고 대책 마련에 허둥댔다.
대선 불복 공세에 대한 대비도 승리에 취해 지나치게 미흡했다. 지난 노무현, 이명박 두 정권 모두에 반복된 대선 불복과 그 변형의 정치 공세로부터 아무런 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적 가치에 해당하는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을 하지 않는 정치인에 대하여 선거 재출마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하여 선거 결과 승복의 기본을 세워야 했었다.
박근혜 정부 첫해 창조경제는 원칙도 내용도 없이 흔들렸다. 경제 활성화 한다고 하면서 규제를 그대로 두는 것은 플랜만 있고 액션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창조경제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고, 지하경제 양성화 한다고 세무조사로 중소기업 피곤하게만 했다. 청년실업 문제도 정부가 나서서 시간제 일자리 만들기 등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었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을 젊은 나이에 시간제 일자리가 정답이 아니다.
창조경제와 일자리 창출 모두 애초부터 정부가 해서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민간 기업에서 잘하는 것이 창조이고, 일자리 창출이었으니 기업에게 맡기고 잘하도록 규제만 풀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복지공무원 숫자 늘리고 경찰 증원해서 일자리 창출하는 것은 하수(下手)의 정책이다. 사회주의 정부도 아니고 공무원과 경찰 증원하여 실업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이 잘못됐다.
공무원과 복지 증가로 파산에 이른 그리스 재정파탄의 교훈은 참고도 하지 않았다. 경찰 증원 대신 경비 업무의 많은 부분을 민간에 넘겨 젊은이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생각을 해야 했다. 치안이 공공성을 가지는 영역이라서 안 된다면 IT시대에 인터넷 보안은 공공성을 가지지 않는가? 인터넷 보안을 민간이 더 잘 하면 정부가 하지 않고 기업에 맡기는 것이 답이다. 그래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국민을 실어 나르는 철도만 공공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항공은 공공성이 없어서 민영화 했고, 민영화에 성공했는가? 왜 철도 강국 영국과 일본이 철도를 민영화하여 만년적자 없애고 경쟁시켜 안정성 높이는데 성공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원전도 국영, 공영이라 주인이 없었으니 조직원에 맡겼고, 결과는 부실(不實)에 부패(腐敗)와 부정(不正)이 판을 치게 된 말아먹기의 지속이었다. 결과는 직원 1인당 뇌물 액수가 1억원이 넘는 비리에 매년 되풀이 되는 전력난이다.
한국경제가 당면한 모든 문제의 해답은 정부 영역을 줄이고 민간이 스스로 하도록 두는 것, 즉 적극적 민영화와 규제 철폐다.
국회는 작년 한해 자기들끼리 걸고 다투는 일 말고는 경제민주화 규제 입법에 매달렸다. 대기업 경영 못하게 규제하면 중소기업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라는 망상적(妄想的) 사고가 깔려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중국, 일본, 미국 등 외국 기업들의 국내 시장 진출과 장악이었다.
그리고 경기 진작을 위해 국회가 꼭 해야 할 규제 철폐, 관광진흥법 개정안 등의 처리는 새해로 넘겼다. 외국인 투자 촉진법은 미루고 다투다가 새해 첫날 새벽에 처리했다. 예산안 역시 법정 기한을 한 달을 넘겨 새해 첫날 통과시켰다. 그러나 핵심은 예산안 심사에서 매년 그렇듯 포크 배럴(Pork Barrel)식 나누어 먹기에 여야가 합심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새해 시작에 맞춘 예산안 통과는 기정사실이었다. 사실 새해 예산안이 통과 되지 않아도 국민의 불편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마치 미국연방의 셧 다운처럼 정부가 크게 필요치 않음이 증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실패의 원인은 정책에 몰두하지 않고 정쟁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국가운영의 원칙과 정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민주당 역시 지난 대선의 실패가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음을 깨닫지 못했다. 따라서 대선 패배 후 새로이 국가운영 정책을 제시한 것이 없다. 대선 불공정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안철수 신당 지지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정당 지지율이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은 더 벌어져 새누리당 35%, 안철수 신당 32%, 민주당 10%였다. 돌이켜 보면 새누리당과 정부가 새로운 미래를 보여줄 때 국민의 지지도는 올라갔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미래를 약속할 정책은 제시하지 않고 싸우기만 할 때 국민은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을 높여 주었다.
갑오년 청마(靑馬)의 해가 시작되었다. 정치권과 정부는 말처럼 열심히 뛰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을 잘 살게 하는 정책으로 여야가 대결할 때, 국민은 정치를 신뢰하고 따를 것이다. 국민에게 행복을 주고, 기업이 춤추게 하고 기업하기 좋게 하는 정책으로만 경쟁해야 정치실패는 극복될 수 있다. 정치권이 간절히 매달리는 정의도, 평등도, 민주주의도 경제가 나아져 국민이 잘 살지 않고서는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김인영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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