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은 때로는 무기력에 빠지게 하고 때로는 분노를 키운다. 그 참담함과 낭패감을 사람들은 때때로 대리만족으로 위안을 찾는다. 대리만족의 좋은 소재 중 드라마가 빠질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정치 현실이나 팍팍한 삶, 온통 배신과 배반이란 단어로 서로를 공격하며 마음을 훔치려는 자, 최악의 막장 드라마다.
4·13총선에 나선 후보는 994명이다. 저마다 지역일꾼을 자처하고 나라를 책임질 적임자라 외친다. 헌데 이들 중 병역면제자가 자그마치 143명으로 면제율이 16.9%다. 일반 국민 면제율 2.2%의 7.7배다. 물론 20대 총선 후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19대나 그 이전이나 대략 그래왔다. 콕 집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언뜻 안보불감증도 이해가 갈 듯하다.
이쯤에서 요즘 온통 화제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떠오르는 것이 영 생뚱맞은 생각은 아닐 듯하다. 물론 드라마는 환타지다.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송중기) 대위가 보여주는 군인의 길은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의사역의 강모연(송혜교) 역시 현실에서도 그런 의사 한번 쯤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모가 아닌 환자를 생각하는 그런 마음씨를 가진 의사. 상관다운 상관 윤 중장 역의 강신일도 있다. 모두를 감싸는 대통령도 있다. 모두가 '그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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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후예' 송중기도 송혜교도 강신일도 모두가 임무와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리는 모습이기에 더욱 그리운 현실이기에 모두가 빠져든다. /사진='태양의 후예' 홈피 캡쳐. |
극중 유시진역의 송중기는 말한다. "군인은 늘 수의를 입고 산다. 이름 모를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가 무덤이 되고 군복은 수의가 된다. 그런 각오라면 매 순간이 명예롭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누군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나와 내 가족, 강 선생과 강 선생 가족, 그 가족의 소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강모연역의 송혜교 역시 송중기의 총상을 떠올리며 "총상을 입었다는 건 총을 맞았다는 거고 그럼 총을 쏘기도 한다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를 죽이거나 본인이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일을 한다는 거다. 나는 매일같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고 수술실에서 12시간도 넘게 보낸다. 그게 내가하는 일이다. 생명을 위해 싸우는 것. 그런데 유시진씨의 싸움은 죽음을 통해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정치인을 향해 군인다운 군인의 말을 외친이도 이도 있다. 특전사사령부 사령관 윤 중장역의 강신일. '국가 안보'를 언급하며 자신을 쏘아붙이는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에게 한마디 한다. "어이 정치인. 당신들에게 국가 안보란 밀실에서 하는 정치이고 카메라 앞에서 떠드는 외교인지는 몰라도, 내 부하들에게 청춘 다 바쳐 지키는 조국이고 목숨 다 바쳐 수행하는 임무이자 명령이다." "지금부터 모든 책임은 사령관인 내가 지겠다. 당신은 섬세하게 넥타이 골라 메고 기자들 모아서 우아하게 정치하라."
이런 대통령(성기윤)도 있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윤 중장을 향해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성공한 인질 구출 작전에 무슨 책임을 지겠다는 말씀입니까. 인질은 무사하고 문제는 정치와 외교고 그럼 그건 제 책임입니다. 모든 책임 제가 집니다." 더 있다. 대통령은 윤 중장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인질을 무사히 구출하고 부하들을 아무 탈 없이 살아 돌아오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외교·안보의 문제는 제 책임입니다."
물론 '태양의 후예' 신드롬의 동인은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여심을 설레이고 녹게 만드는 달콤한 로맨스.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력과 사전제작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것까지. 그러나 이들의 군대 로맨스도 모두의 위치에서 믿음과 신뢰, 임무, 책임감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열풍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꿈꾸기에 꿈의 드라마가 있고 송중기가 있고 송혜교가 있다.
군인도 의사도 지휘관도 대통령도 임무와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 그리는 모습이기에 더욱 그리운 현실이다. 막장 아닌 이상과 꿈을 다룬 드라마와 막장 현실. 그래서 드라마에 빠져든다. 외면하고픈 현실의 대리만족을 주는 숨 쉬는 공간에서의 유일한 도피처이자 위안이기에.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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