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악 이분법? 역사를 증오로 심판하기 시작하면 그 끝은 종교재판
제1회 이승만 시 공모전 대상 수상소감문
대상의 수상 소감을 말하며

역대 대통령의 공과 과는 반드시 입체적으로 비추어져야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모든 인물에게 객관적 사실을 평가 받아야하는 그 잣대는 같다.
 
4월 5일자로 논란이 된 세로쓰기의 시는 두 편이 있다. 두 편 모두 표현의 자유의 행사이지만, 그것이 신사가 할 만한 행동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시를 출품하신 두 분이 신사적인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행동만이 우려할 요소는 아니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증오로 역사를 심판하기 시작하면 그 끝이 종교재판과 무엇이 다를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두 분의 작품을 천천히 읽어보면 오직 증오로만 쓴 글이 맞다.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역사는 종교가 아니다. 종교재판처럼 심판할 수도 없다. 역사의 위인들은 악마이거나 천사가 아니다.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겠다는 말은 이미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겠다는 것처럼 주관을 개입하겠다고 선언하는 일이다. 역사는 드라마가 아니다. 모종의 진행이 드라마 같을 순 있지만, 역사에는 주인공과 악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책과 범죄는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이다. 역사는 신이 없이 만들어진, 오로지 인간이 만든 행동의 결과의 연속이다.
 
한국인이 역사에 관해 그토록 많이 인용하던 에드워드 카의 명언,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연간 독서량 9.1권을 초라하게 자랑하는 한국인이 인용하는 것은 양심의 결례라고 생각한다. 그 명언은 대중이나 개인이나 역사가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역사라고 정의한 것뿐이다.

같은 책에서 뒤에 결국 역사가는 “역사적 과거의 사실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라고 에드워드 카는 썼다. 이 문장이 주목받지 못하는 일은 이상한 일이다. 그에 의하면, 역사가는 일반화를 통해 현재에게 줄 교훈을 유추하는 것이 일이지만, 그것의 자원이 되는 역사공부는 역사적 사실에 접근해 가는 것뿐이라고 했다. 일관된 신격화와 증오는 사실에 접근해가는 역사가의 자질로는 탈락이다.

   
▲ 우남 이승만에게도 공과 과가 있다. 공에서 그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초대 대통령이다. 그리고 그 부분이 결국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북한과 다르게 만들었다는 것이 사실이다./사진=연합뉴스

 
부끄러운 역사를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것은 한국인의 공통적인 바람일까? 본인은 그에 대한 우려를 시에 담아 썼다.
 
조선총독부 건물(중앙청)은 반인륜적인 집단의 사무실로 쓰이기 위해 지어졌지만, 45년 이후엔 우리의 역사를 썼다. 제헌 국회와 헌법 선포는 바로 이 중앙청에서 이루어졌다. 중앙청은 1990년대 말에 치욕적인 유산이라는 이유로 철거되었는데, 치욕적인 유산이라는 이유로 철거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치욕적인 역사도 역사다. 유산은 그 역사에 대한 증거물이다. 그것을 지운다고 그 역사가 사라지거나, 비슷한 것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유산은 유산일 뿐, 더 많은 의미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그에게도 공과 과가 있다. 공에서 그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초대 대통령이다. 그리고 그 부분이 결국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북한과 다르게 만들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혼란스러운 해방정국과 공산주의에 다수가 우호적인 당시에 그런 변화를 이끌어 낸 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다른 역사와 비교해보자면 대한민국의 해방 전후의 혼란 시기는 극히 짧았다. 농지개혁법과 같은 여러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전쟁에서도 그는 결국에 총력전을 수행하며 국가를 지켜냈다. 그런 시도들은 혁명이다. 좋든 싫든, 현대 한국인도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 과에서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과가 싫다고 그를 지우려고 하는 것은, 공만 보는 것만큼 이상한 짓이다.
 
어쨌든 역사와 위인을 입체적인 사실로 보지 못하고, 끌어내리기만 하려는 것은 역사를 쓰는 석조(石造)의 펜을 부수는 행동이다. 오늘날 세태를 보니, 더 이상 역사를 담담히 기록할 석조(石造)의 펜이 없는  것 같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역사라면 다 부숴버리고 귀를 닫고 눈을 감으니 말이다. 이는 뒤늦은 수상 소감이다. /오종택 세종대 기계공학과

   
▲ 우남이 살았던 역사를 입체적인 사실로 보지 못하고, 끌어내리기만 하는 것은 역사를 쓰는 석조(石造)의 펜을 부수는 행동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인물에게 객관적 사실을 평가 받아야하는 잣대는 같다.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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