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람시 추종 좌파, 문화예술계 진지구축, 역사교육도 장악

최근 역사교과서 논란이 한창이다. 좌우 갈등을 넘어 국민적 갈등으로 확산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그 만큼 역사교육이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역사교육의 목적은 과거의 사례를 통해 현재 닥친 문제의 합리적 판단을 도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모범답안 같지만 역사교육이 갖는 이면의 효과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가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구성원의 동질감 및 정체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역사교육이 이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구성원의 동질감 및 정체성 확보를 위해 ‘공통의 과거’를 활용하는 셈이다.

   
▲ 바른사회시민회의 관계자들이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철회 협박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물론 더 중요한 역할도 있다. 역사교육은 현재를 이해하는 일종의 '준거 틀'이 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가령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이 우리나라에서 역사교육의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나라를 빼앗기고 학교에서 우리의 글과 말을 배우지 못했던 일제 강점기의 경험으로 독일은 침략자, 프랑스는 자국의 영토를 빼앗긴 피해자로 각인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지막 수업의 배경인 알자스-로렌은 프랑스가 아닌 독일에 속해 있었던 땅이다. 그런 만큼 프랑스어를 배워오던 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우게 된 것은 지역 주민이 원래 쓰던 글과 말을 다시 배우게 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교육의 출발점은 역사서술이다. 역사를 어떻게 서술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과거 및 현재에 대한 이해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서술의 이 같은 중요성 때문에 옛날부터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만큼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실의 기록을 위해 초개, 즉 풀과 티끌처럼 목숨을 내던져야 했던 것이 사관(史官)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옛 왕정시대의 군주는 절대권력 그 자체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군주의 잘못을 곧이곧대로 들춰내는 일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의 기록을 위해 죽음이라는 극도의 공포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바로 이 같은 상황이 양심과 목숨을 모두 지킬 수 있는 묘안을 도출해 내게 된다. 주문이휼간(主文而譎諫)이 바로 그것. 주문이란 글을 수식하는 것을 말하며, 휼간은 직설적이지 않게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이른다. 이런 글을 언뜻 보면 아무런 평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장의 맥락을 잘 짚어보면 날 선 비판이 담겨 있다.

물론 현대의 역사교과서 집필진은 이 같은 서술 방식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역사서술은 고대사의 경우 과장된 민족주의적 해석, 그리고 근현대사는 이념에 치우친 서술로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고대사의 과장된 민족주의적 해석은 과잉 자부심으로 치부한다고 하더라도 이념에 치우친 서술 및 이로 인한 갈등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혹자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공산주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와 그의 진지론(陣地論)을 지목하기도 한다. 요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주요 키 역할을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람시의 진지론이며, 이를 알면 한국 사회가 들여다 보인다는 얘기다.

최근 한국의 진보진영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람시의 진지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념적 헤게모니를 국가로부터 탈취해 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언론·학계· 문화·예술 등 광범위한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대항 이데올로기를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진영에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에서도 진보진영이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진지를 더욱 공고히 구축해 왔다고 주장한다.

보수진영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고달픈 삶을 위로하던 문화와 예술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으로 급부상한 것, 그리고 그 시기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라는 점에서 보수진영의 주장을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이성적인 설득보다 감성적인 매혹을 선호하는 시대, 마음을 사로잡는 힘을 지닌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실은 진지 구축의 든든한 토대가 될 수밖에 없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문화예술계는 진보진영이 점령했다는 말이 나오고, 최근에는 문화와 예술의 힘이 권력을 능동적으로 창출해 내는 기획자로까지 변신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진보진영에게 있어 역사교육의 헤게모니 장악은 진지론의 또 다른 전략, 또 다른 얼굴이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아 보인다.

 ‘고교 한국사 집필진 이념 성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금성출판사 등 6종 역사교과서의 집필진 37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7명이 전교조 교사 또는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등 좌파 성향의 교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역사교육의 헤게모니 장악은 자연스럽게 좌편향 역사서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2003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쓰고 있는 금성출판사 등 6개 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는 1948년 이후의 대한민국을 미국에 종속된 사회로 설정하는 등 좌편향 서술이 넘친다. 1960년대 이후의 경제발전 역시 대외 의존적 발전으로 폄하하는 등 종속이론을 차용한 듯 서술하고 있다.

이념에 치우친 역사교육은 과거는 물론 현재를 이해하는 준거 틀을 왜곡한다. 또한 한 사회가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구성원의 동질감 및 정체성 확보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 같은 위기감을 반영하듯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국정교과서로의 환원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물론 반발의 목소리도 많다. 보수진영 일부에서조차 국정교과서 환원은 문제를 잘못 파악한 것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로 환원될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과서가 정권의 코드에 휘둘릴 가능성이 있으며, 좌우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내 정치 지형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 구성 등 제작과정에서부터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기는 하지만 '전체'가 아닌 '부분'만 조명하고 있는 느낌이다. 역사서술의 편향성이 가져오는 피해를 감안하면 이 역시 ‘작은 비용’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기업의 부정적인 면만 극단적으로 부각시키는 등의 좌편향 역사서술은 국민적 갈등을 넘어 미래에 상상을 초월한 사회적 비용을 낳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중에 역사교과서 발행 체계 개선안을 확정해 공개하고, 일선 학교가 외부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교과서를 선정·채택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 역시 전교조를 필두로 한 진보진영의 진지론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허술하고 순진한' 대응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미디어펜=정구영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