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을 따라가거나 제도 자체가 이중잣대로 되어 비판 직면
대한민국은 법관의 주관에 따라 판결을 막기 위해 양형기준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이른 바 '고무줄 판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양형기준제도는 포퓰리즘을 따라가거나, 제도 자체가 이중잣대가 되어 오히려 '고무줄 형량'이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이에 자유경제원은 지난 19일  우리나라의 양형기준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해법은 있는지 토론의 자리를 가졌다. 아래 글은 염건웅 명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1. 들어가며

크림빵 뺑소니 사건과 염전노예사건에서 양행기준에 대한 보완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지난달 28일 양형위원회가 발표한 교통범죄 양형기준은 이러한 지적을 발 빠르게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날 양형위가 양형기준을 의결한 범죄는 근로기준법 위반과 석유사업법 위반, 과실치사상범죄, 교통범죄 등이다.

교통범죄를 제외한 나머지는 지난해 12월 양형기준안을 제시했지만 교통범죄는 예상과 달리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특히 교통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2012년 의결해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이번에 난폭운전과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도록 수정됐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음주운전과 난폭운전에 대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을 법원이 받아들인 셈이다. 이번 양형기준 수정안도 사회변화와 국민정서를 제때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 현재 우리나라 양형기준제도는 포퓰리즘을 따라가거나, 제도 자체가 이중잣대가 되어 오히려 '고무줄 형량'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죽음 부르는 데이트' 캡쳐.

2. 양형기준 강화는 바람직한 일

양형기준이 강화되는 것은 범죄 피해자의 불만이나 국민의 공분에서 비롯된다. 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서 정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의 기본 원칙하에 법관이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법의 틀을 벗어날 수 없고, 이 부분에서 사회적 문제나 합의가 필요했던 양형기준이 수정되고 처벌이 강화되었다는 부분은 사회정의실현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양형기준의 획일화로 컴퓨터식 판결을 찍어낼 수 있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최근 범죄형태가 점점 잔인해지며 복합적이고 심각한 피해를 만든다는 점에서 분명 양형기준 강화는 환영할 일이다.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을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 범죄예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일부주장도 있다. 가까운 예로 중국에서 뇌물수수범죄나 마약범죄에 대한 공개처형 같이 아동성범죄자나 잔인한 범죄에 대해 공개처형을 방송 생중계로 진행한다면 어느 정도 범죄의 예방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 유럽에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사형제도를 통한 범죄예방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1997년 이후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실질적인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된다. 다만 가장 강력한 형벌인 사형제도가 실질적으로 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저질러도 내가 죽지 않는 다는 가정을 한다면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못한다는 가정을 할 수도 있다. 누구나 분노나 원한에 의한 살인도 가능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렇다면 법정 최고형인 사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범죄에 상응하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양형기준의 보완과 처벌강화는 결국 범죄예방과 사회정의 실현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인 개인이 가해자인 개인을 처벌할 수 없는 현실에서 국가의 처벌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결국 양형기준의 보완과 처벌 강화를 통해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볼 수 있다.

3. 양형기준 세분할 필요성

양형기준에 의한 문제점은 최근 아동학대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2007년 평택 계모 사건을 비롯해 최근 드러난 원영 군 사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아동 학대 사건에서 잔인하게 학대당한 아이들도 안타깝지만 이런 사건이 세상에 드러날 때마다 살인이냐 상해치사냐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법적으로는 가해자에게 상해의 고의만 있었을 뿐인데 본의 아니게 피해자의 사망이란 중한 결과가 초래됐다면 살인은 아니다. 이런 경우 피해자의 사망에 대해 적어도 가해자의 과실은 인정할 수 있다면 상해치사가 성립될 뿐이다. ‘고의’란 죄의 성립요소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경우이고 ‘과실’이란 ‘정상의 주의를 태만함으로 인해’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언뜻 보기에는 서로 확연히 다른 것 같지만 두 개념의 경계는 사실 그렇게 명확하지만은 않다. 결과의 일반적인 발생 가능성은 예견하였으나 자신의 구체적인 경우에는 그런 결과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믿은 경우엔 소위 ‘인식 있는 과실’이라고 하여 과실의 영역에 속한다. 반면, 결과 발생을 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인식하면서 이를 용인하였다면 ‘미필적 고의’라고 해서 고의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니까 똑같이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는 일반적인 가능성을 예견한 경우라도,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면서 때렸다면 상해치사인 반면 ‘죽어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다면 살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가해자의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이 정확히 어느 쪽이었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사후에 확인하는 것은 말만큼 쉽지는 않다. 앞의 아동 학대 사안에서는 그냥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밀어붙이는 것이 어쩌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법을 적용하는 데 구체적 타당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예측 가능성이다. 예측 가능성이 확보되려면 미필적 고의의 판정 기준이 모든 형사사건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의 범위를 함부로 확대하는 것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과실범은 처벌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형법 체계상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위와 같은 사건들에서 대체로 상해치사죄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죄명이 뭐가 됐든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죄인이 죄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의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살인과 상해치사의 구별이라는 고도의 법적 판단 사항에 그토록 촉각을 곤두세우는 진짜 이유는 죄명이 형량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형법상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상해치사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유기징역은 30년 이하의 징역을 말하지만 가중하면 50년까지도 선고 가능하다는 점과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 양자 간에 법정형의 차이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다.

대법원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보통 동기 살인은 기본적으로 10∼16년(가중하면 15년 이상)을, 비난받을 동기가 있는 비난동기 살인은 기본적으로 15∼20년(가중하면 18년 이상)을 선고하도록 돼 있는 반면, 상해치사는 기본이 3∼5년, 가중하는 경우에는 4∼7년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 이런 양형기준에 따른다면 상해치사죄와 아동복지법위반죄가 경합적으로 적용된 칠곡 계모 사건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된 것이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양형기준이 과연 국민의 법 감정과 정의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범인의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생각들이 무엇이었든지, 저항도 못하는 어린아이를 장기간 죽도록 괴롭히는 고의적인 가혹행위는 미운 인간을 단칼에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악랄한 범죄다. 물론 법적으로 양형기준은 하나의 기준일 뿐 재판부를 구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양형기준을 벗어난 형의 선고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발적인 살인보다 훨씬 더 악질적인 상해치사에 대해 적절한 응징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이제는 양형기준을 세분할 필요가 있다. /염건웅 명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염건웅]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