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칼바람 예고…'골든타임 vs 쉽지않네'
[미디어펜=김세헌기자] 그간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구조조정이 탄력을 받으면 해당 업체 선정 확대뿐 아니라 기존 대상 기업의 인력 감축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중국발 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국제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자 올해 연말까지가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 해운,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과거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주요 업종들은 공급 과잉, 경쟁력 하락, 중국의 추격 등으로 더는 구조조정을 미룰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 연합뉴스

21일 정부부처와 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채권은행들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신용위험도 평가에 돌입한 가운데, 이달부터 현대상선, 한진해운, 한진중공업 등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절차가 다음 국면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특히 해운·조선업계에 구조조정의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 전망이다. 채권단은 이달 중 현대상선이 협상에 성공해 용선료를 낮춰야 회의를 열어 출자전환 등 지원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한진해운은 올해 1월부터 진행한 재무진단 컨설팅이 끝나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경영개선 방안이 수립될 예정이다.

해운업과 조선업은 우리 경제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산업인 만큼 무리한 통폐합보다는 옥석을 잘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그동안 이들 업종이 호황기에 방만 경영으로 부실을 자초한 면도 크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이번에 비핵심 사업을 과감히 배제하고 경쟁력 있는 부문에 집중하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장기 불황에 여파에 적자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해운업계는 최근 기업 구조조정 논란의 가장 선두에 있다.

해운업계는 지난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 선박 수출입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장기 불황이 계속돼 왔다. 이후 8년 여간 구조조정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국내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제외한 중·소형 선사들의 지각변동이 있어왔다.

새로 뛰어든 중·소형 선사들은 배를 헐값에 사들여 원가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며 수익을 내고 있지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수년간 수천억 원대의 적자를 내며 위기를 맞았다.

세계 1위 위상을 이끌어왔던 조선 빅3도 비슷한 처지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대형 3사는 20여 년간 전 세계 조선 시장을 70%가량 점유해오며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 3사가 해양플랜트 악재와 경영 부실로 수조원대 적자를 내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들 업체는 지난해 총 8조5000억여원 규모의 사상 최대 적자를 냈다. 대우조선해양이 5조5051억원, 현대중공업이 1조5401억원, 삼성중공업이 1조5019억원의 적자를 각각 기록했다.

조선업의 상황이 악화하자 일부에서는 조선 빅3를 통폐합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세계적인 규모의 조선업체가 3개나 있는 것은 과잉이라는 지적이다.

중국산 저가 철강재 공세에 공급 과잉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는 철강도 구조조정 대상 업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철강 등 부실업종 재편에 힘을 보태기 위해 오는 8월 13일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벌)'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상법·세법·공정거래법 등 관련 규제를 한 번에 풀어주고 세제·자금 등을 지원하는 게 골자로 일명 '원샷법'으로 불린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철강협회는 늦어도 이달 안에 컨설팅 업체를 선정해 철강업종 공급과잉 관련 보고서 작성을 의뢰할 계획이다. 철강협회는 우리나라 철강 업종의 공급과잉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이달 초 컨설팅 업체를 대상으로 보고서 작성 의뢰 공고를 냈다.

철강은 기활법과 관련 정부가 첫 번째로 공급과잉 문제를 진단하는 업종이다. 그만큼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정부가 판단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르면 오는 6월 초 보고서 작성이 마무리되면 개별 철강 기업들이 이를 검토한 뒤 기활법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 기활법이 적용되면 정부는 세제나 자금 등을 통해 구조조정 지원에 나선다. 

현재 국내 철강업계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체적인 작업에 나선 상태다. 포스코는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국내외 34개 계열사를 정리한 데 이어 올해 추가로 계열사 35개사를 매각하거나 청산할 방침이다.

현대제철은 자동차 강판 등 수익성 높은 폼목 위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계열사 국제종합기계 매각을 추진하는 등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석유화학 부문은 고순도 테레프탈산(TPA) 등 일부 제품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구조조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중국 수출에 의존해왔던 국내 업체들이 중국 기업들의 생산설비 확충으로 자급률이 크게 증가하면서 공급 과잉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수직계열화로 TPA 생산량 상당수를 자체 소비하는 롯데케미칼과 효성 등과 달리 외부 판매 비중이 높은 한화종합화학과 삼남석유화학 등은 어려운 형편이다.

업계는 자발적인 사업 재편을 위해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민간협의체'를 구성했지만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지는 못했다. 다만 각사마다 수급을 조절하거나 원가를 절감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산업구조를 효율화해서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야는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해야겠지만 첨단 기술이 접목된 제품 분야에서는 세계시장 진출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 관계자는 난관에 봉착한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정상적인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경제에 충격을 덜 주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필요한 분야만 조속히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