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세헌기자]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건설 등 그간 우리 경제의 주력산업이었던 주요 업종들이 공급 과잉, 경쟁력 하락, 중국의 추격 등으로 더는 기업 구조조정을 미룰 수 없는 처지에 놓이면서, 정부 중심의 고강도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 할 전망이다.
공급 과잉과 과당 경쟁으로 인해 사상 최악의 적자와 부도 위기에 처한 조선업과 해운업은 자구력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상황을 역전시키기엔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부실징후 중소기업도 40% 급증했는데 조선, 건설 등의 경영난으로 은행권의 부실채권비율은 2010년 이후 최고치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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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 조선, 철강, 건설 등 한계에 달한 업종에 대한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단행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 연합뉴스 |
이들 주력 업종에 종사하는 직간접 인력은 100만여명에 달한다.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된다면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커다란 파장이 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있어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상황이며 이들 업종 경영진으로선 ‘체질 개선’의 전환점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 업종은 그동안 자체적으로 비핵심 자산 매각, 인력 감축 등 비상 경영에 돌입했으나 현재로선 미흡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조만간 채권단 등을 통해 본격적인 산업 재편이 이뤄질 전망이다.
22일 정부부처와 산업계에 따르면 우선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그동안 위기를 타개하고자 꾸준히 자구 노력을 펼쳐왔다.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계열사 지분을 전량 매각한 데 이어 벌크전용선, 국내외 터미널 지분 등을 팔았다. 한진그룹 지원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 등 자구안을 마련해 채권단과 협의 중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2000억원대의 적자를 내는 등 부채규모가 6조원대에 이르면서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사업과 컨테이너, 초대형원유운반선, 자사주 등을 매각했다. 현재는 용선료를 낮춰야 채권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부 자율협약 상태여서 최근 진행 중인 외국 선사들과의 용선료 협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조선업에서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조선 빅3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진중공업 등 중소형 조선소까지 더하면 국내에만 20여개가 넘는 조선업체가 있는 만큼 그 규모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철강의 경우 철강협회는 늦어도 이달 안에 컨설팅 업체를 선정해 철강업종 공급과잉 관련 보고서 작성을 의뢰할 계획이다. 철강은 기활법(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과 관련 정부가 첫 번째로 공급과잉 문제를 진단하는 업종이다. 오는 6~7월 보고서 작성이 마무리되면 개별 철강 기업들이 이를 검토한 뒤 기활법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
국내 철강업계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이 자체적인 작업에 나선 상태다.
석유화학도 기활법 적용 업종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업계는 자발적인 사업 재편을 위해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민간협의체'를 구성했지만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지는 못했다. 다만 각사마다 수급을 조절하거나 원가를 절감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중동 일변도였던 해외건설 시장의 다변화를 모색하고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해외건설 사업 발굴·기획부터 자금조달, 시공, 운영 관리까지 종합적으로 책임지는 투자개발형 사업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는 공감대도 커지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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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실기업들이 스스로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생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이 무분별 인력감축, 국가경제 타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미디어펜 자료사진 |
"부실기업 구조조정, 대량실직 도화선 돼서는 안돼"
그동안 ‘구조조정 반대’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던 노동계는 해운, 조선, 철강, 건설 등 한계에 달한 업종의 경우 적극적인 기업 구조조정이 단행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노동계는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의 양상이 대규모 정리해고 등 무분별한 인력 구조조정의 양상을 띠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은 노동자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지역경제 황폐화와 내수 침체로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가한다”면서 “인력 구조조정을 최소화하고 일자리 나누기 등 고용 안정을 확보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는 노동자의 임금을 줄임으로써 이에 준하는 전체적인 일자리 규모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노동자는 고용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고, 사측은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어 양측 모두에게 득이 돼야 한다는 노동계의 설명이다.
또한 노동계는 기업 부실을 불러일으킨 경영진에 대한 책임도 집중 추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자에게는 기업 구조조정을 요구하면서도 경영 부실을 초래한 경영진에 대한 책임은 따지지 않는 행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수익성을 따지지 않은 저가 수주와 투자자들을 무시한 분식회계 등으로 지난해 수조원의 적자를 낸 조선업계 경영자의 경우 거액의 보수를 챙기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인력 구조조정만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5조5000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작년 5월말 퇴임한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급여, 상여금, 퇴직소득 등 총 21억이 넘는 보수를 챙겼다. 삼성중공업 박대영 대표도 지난해 10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
노동계는 이와 함께 본격적인 기업 구조조정에 앞선 실업대책 마련도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실업급여 상한액은 하루 4만원, 한 달이면 최대 120만원 정도다. 지급기간 역시 최장 8개월(10년 이상 일한 50세 이상 근로자 해당)에 지나지 않아 구직자의 생계유지에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사안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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