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제 변한다 해도 '감염' 치료에 수십년 걸릴 것"
복거일 "마비된 감각 깨우는 위대한 작품"
[미디어펜=한기호 기자]북한 김정은 정권 독재체제의 모순과 조직적 수령 신격화를 폭로한 다큐영화 '태양 아래(Under the Sun)'가 이달 27일 개봉 예정인 가운데, 25일 국회에서 특별시사회가 열렸다.

태양 아래는 러시아 감독 비탈리 만스키가 평양에 사는 8세 소녀 '진미'와 1년 동안 함께 생활하며 깨달은 북한 전체주의의 광기를 폭로한 리얼 다큐멘터리다. 실제 촬영에서 북한 당국은 감독에게 대본을 주며 다큐 '연출'을 주문, 이에 만스키 감독은 다큐 자체가 당국에 의한 거대한 '사기극'임을 폭로하고 있어 주목받는 작품이다.

만스키 감독은 이날 오후 자유경제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특별시사회에 참석, 10여분 분량으로 편집된 영화 상영이 끝난 뒤 북한 체제의 실상을 폭로한 배경과 함께 북한 사회의 전체주의 문화 극복에 대한 소견을 표명했다.

   
▲ '태양 아래' 스틸컷/사진=THE픽쳐스 제공


감독은 영화 상영 후 "대한민국에서 북한을 조망하는 영화를 보여주는 것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소련 시절 러시아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북한에 일어나는 실상을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저만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자유는 그 어떤 민족이나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똑같이 공산주의, 사회주의도 민족에 특수하게 연관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소련 치하 공산 전체주의 경험자로서 북한 체제에 대한 남다른 문제의식을 표명하는 한편, '개인의 자유'가 실종된 북한의 인권문제를 인류 보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이날 상영된 영상 마지막 부분에는 진미가 '가장 좋았던 기억을 말해달라'는 만스키 감독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눈물짓고, '아는 시를 외워보라'고 하자 조선소년단 입단 선서를 읊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에 대해 만스키 감독은 북한을 "자기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상실된 나라"라고 평가한 뒤 "한 세대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굉장히 큰 연민과 아픔을 불러일으킨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서 꽤 오랜 시간 그 사람들을 보고 이해한 결과 저는 확신이 생겼다. 북한 체제 또는 권력에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북한 (사회가) '감염'돼 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십 년이 필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소련이 1953년에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한 뒤에도 1991년에 이르러서야 붕괴됐으며, 지금까지도 러시아 국민들에게 스탈린이 정서적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들어 "북한에서 어떤 변화가 생겼을 때 그들이 '감염'된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대한민국이 잘 참아가면서 그것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감독은 "저는 한국측으로부터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을 굉장히 큰 기대를 갖고 기다리고 있다"면서 "한 민족이 겪고 있는 분단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도 커다란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 러시아인으로서 북한 체제의 현실을 폭로한 비탈리 만스키 영화감독/사진=미디어펜


이날 시사회를 주최한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과 함께 참석한 전희경 새누리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평양에서 사는 진미라는 아이의 눈물, '행복을 떠올려 보라'고 했을 때 그 막막한 눈빛, '시를 외워보라'고 했을 때 결국 읊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북한이란 체제가 아이에게 주입한 그런 것들 뿐인 현실이 우리가 머리 위에 이고 있는, 같은 피를 나누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겪는 것이란 사실에 굉장히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저렇게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7, 8살 된 아이들이 '자유'와 '개인'의 가치를 모르고 사는 현실이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비극 중 비극"이라며 "이 참상에 대해 눈을 감고, 알면서도 계속 북한 현실을 호도하고 이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오히려 공격하는 사람들은 정말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북한인권법이 최초 발의 11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은 점을 상기한 뒤 "거악(巨惡)이 돼버린 북한의 주민들을 그 속에서 빨리 구출해내는 토대, 자유통일을 위한 토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20대 국회가 시대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진 순서에서 복거일 작가는 "묘하게도 위대한 작품일수록 '다 아는 것'을 낯설게 만들어 마비된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 준다"며 "그동안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얘기해왔는데, 러시아 분이 (북한의 실상을) 얘기한다는 것은 정말 고무적"이라고 만스키 감독과 작품에 찬사를 보냈다.

이근미 작가는 "리얼 다큐멘터리를 북한에서 찍게 해놓고는 다큐를 조정하는 것, 그 (영화) 첫 장면만 보고도 모든게 나타났다. 다큐를 조작하는 나라라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고 조작된 북한 사회의 심각성을 환기했다.

그는 탈북 후 한국 사회에서 1~2년의 적응기를 가진 아이들을 만났을 때 영화 속의 북한 아이들이 '웃음기 하나 없이' 살아가는 것과 판이한 모습을 보여 놀란 경험을 언급하며 "그렇게 밝을 수 있는 애들이 저렇게 산다는 게 안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탈북한 아이들이 '왜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 개인 단위로 탈북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가장 기분나빠한다며, "(북한 정권 붕괴는) 안에서 할 수 없다. 결국 밖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 인권운동 활성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시사회엔 비탈리 만스키 감독,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새누리당 전희경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 복거일·이근미 소설가 등이 참석했다.

태양 아래는 앞서 러시아와 북한 정부의 상영금지 압박으로 러시아 개봉이 취소된 바 있다. 한국에선 27일 전 세계 최초로 개봉된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