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제로금리일 필요 없어…산업은행 채권 직접 인수는 답 아냐
총선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한국판 양적완화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은행이 산업금융채나 MBS(주택담보대출증권)을 직접 인수토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새누리당은 총선 이후 한은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처음 한국판 양적완화를 주장한 강봉균 선대위원장은 ‘산업은행이 이전에도 산업(조선, 해운)에 금융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과감히 해보자는 것이며, 일본처럼 마구잡이로 돈을 찍어내자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야당을 중심으로 관치금융이며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20대 총선 이후 여야 3당은 모두 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각론에서는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7일 전문가들과 함께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한국판 양적완화의 구체적인 방법과 실현 가능성, 우리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이날 서울시 NPO지원센터에서 열린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한국판 양적완화, 실현가능성은?’ 토론회에서 패널로 나선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이와 관련 “산업은행 채권에 대한 직접 인수는 답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오 교수는 “기업구조조정이 과제이기에 산업은행이 선도과정에서 자금공급능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한은이 산은채권을 인수해야 하지만, 직접인수보다는 부실기업채권 매입을 위한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채권이나 부실여신으로 자본건전성이 훼손된 금융기관의 자본보전을 위한 예금보험공사채권을 매입하는 대책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지금 호미로 막지 않으면 나중에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올 수 있다”며 “공허한 논쟁보다는 현실에 맞는 정책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오 교수는 “주저앉고 있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불완전고용상태나 잠재성장 수준보다 낮은 성장 상태에서 어떤 통화금리 정책을 채택해야 하는지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오정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한국판 양적완화 통화정책 논쟁

한국판 양적 완화 통화정책 논쟁이 대두되고 있다. 총선과정에서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경제성장률을 3%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제기한 '한국판 양적완화(QE)' 통화정책의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구조조정이 초미의 과제이므로 산업은행이 기업구조조정 선도 과정에서 신규 자금 공급능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한은이 산은채권을 인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은이 주택담보대출증권도 직접 인수해 주택담보대출 상환 기간을 20년 장기분할상환제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한 해만 조선3사에서 8조 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하고 그 여파로 산업은행도 1조 9000억 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하는 등 급증하고 있는 기업부실과 그에 따른 금융부실 증가추세를 고려해 볼 때 기업부실이 중요한 과제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산은채권을 인수해 산은이 기업구조조정을 주도하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적지 않다.

우선 산은이 기업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오면서 문제를 키워온 것은 물론 심지어 기업부실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낙하산인사들 마저 대거 부실기업 고위직에 임명해 왔던 도덕해이 문제, 이해상충 문제 등의 과정을 보면 산은채권 인수는 기업구조조정은 안되면서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우려가 적지 않다.

산은채권을 직접 인수하기 보다는 부실기업채권 매입을 위한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채권이나 부실여신으로 자본건전성이 훼손된 금융기관의 자본보전을 위한 예금보험공사채권을 매입하는 대책이 바람직해 보인다. 

주택담보대출증권 인수는 미(美)연준에서 주택경기 부양을 위해 채택했던 양적 완화 통화정책으로 침체지속하고 있는 주택경기와 주택거래부진으로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하고 있는 하우스푸어 문제를 고려할 때 전향적으로 검토할 만한 대책이다. 지금 호미로 막지 않으면 나중에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 한국판 양적 완화 통화정책 논쟁이 대두되고 있다. 총선과정에서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경제성장률을 3%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한국판 양적완화(QE)' 통화정책을 제기했다./자료사진=연합뉴스


미(美)연준은 자산가격폭락을 방치할 경우 대공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1차 양적 완화정책(2009.3-2010.3)에서 1조 4500억 달러, 3차 양적 완화정책(2012.0-2013.12)에서 6400억 달러의 주택저당채권을 매입했다.

그 결과 미국주택가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해 주택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주택대출 등 가계대출이 상환되어 글로벌 금융위기 시 135%였던 가처분 소득대비 가계부채비율이 105%로 낮아지면서 소비가 살아나 경기가 회복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 143%였던 동 비율이 최근 170% 수준까지 상승해 소비를 짓누르고 있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자 이의 심각성을 간파한 미(美)연준은 가장 먼저 한 달 뒤 10월에 제로금리정책을 도입하고 2009년 3월부터 국채와 주택저당채권을 매입해 돈을 푸는 양적 완화 통화정책(QE)에 돌입했다. 영국도 2009년 3월부터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 통화정책에 가담했다.

유럽중앙은행도 2011년 발생한 재정위기에 대응해 11월부터 장기대출(LTRO) 규모를 확대하는 등 확장적 통화정책을 추진했지만 경기회복이 더디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지속되자 시중은행의 중앙은행 예금금리를 2014년 6월 처음으로 마이너스인 -0.1%로 낮췄으며, 9월 -0.2%, 2015년 12월 -0.3%로 잇달아 인하한 데 이어 금년 3월 10일 다시 -0.4%로 내렸다.

2015년 3월에는 매월 600억 유로의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푸는 미국식 양적 완화정책을 도입한데 이어 금년 3월 10일 다시 월 800억 유로로 규모를 확대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장기불황을 탈출하기 위해 2010년 10월부터 국채매입프로그램을 가동하다 2012년 12월 아베 집권과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 취임을 계기로 본격적인 양적 질적 완화정책(QQE)을 시작했다. 

2016년 1월에는 기준금리를 –0.1%로 낮추어 마이너스 금리대열에 합류하고 연간 60조 엔의 자산을 매입해 오던 양적 완화 규모를 2015년부터는 연간 80조 엔으로 규모를 늘린데 이어 금년부터는 100조 엔으로 늘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09년 3월부터 시작된 미국 영국의 양적 완화정책과 2010년 10월, 2015년 3월부터 시작된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정책 결과 이들 국가들의 GDP대비 본원통화 공급비율이 급증했다.

미국 영국은 22% 수준까지, 심지어 일본은 50% 수준까지 급증했다. 반면 유로존 중국은 10% 수준, 한국은 7%대에 머물렀다.

그 결과는 성장률로 나타났다.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6천 달러대인 미국과 4만 5000달러 대인 영국은 2015년 성장률이 각각 2.5% 2.2%를 달성하여 잠재성장률 수준인 2.5%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일본은 양적 완화 정책을 추진했지만 GDP 245%에 달하는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2014년 단행한 소비세 인상의 여파로 회복되던 성장률이 다시 주저앉고 있다.

뒤늦게 양적 완화 대열에 합류한 유로존과 확장적 통화정책에 그친 중국은 여전히 성장둔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도 잠재성장률 수준을 하회하는 성장에 그치고 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대공황기에 통화량을 엄격히 규제했던 금본위제를 먼저 폐기한 영국 일본 등이 먼저 회복되고 금본위제를 나중에 폐기한 미국 독일 등은 경기회복이 더디었다.

   


경기회복이 정상궤도에 들어섰다고 판단한 미국은 지난 12월 2008년 9월 이후 유지해 온 제로금리를 중단하고 연방기금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했다. 그 여파로 달러화 강세로 수출과 제조업생산이 둔화되자 추가금리 인상이 지연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달러화 강세가 일시적으로 수그러들고 오히려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실업률이 완전고용으로 간주되고 있는 5.0%보다 낮은 4.9%에 이르고 1월 근원개인소비지출물가상승률이 1.7%에 도달, 연준 목표치인 2%를 내다보게 되어 늦어도 6월에는 추가 금리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일본은행 유럽중앙은행은 일제히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하거나 마이너스금리 폭을 확대하고 중국도 지급준비금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확대 공급하는 등 주요국 간 통화정책의 대분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주요국 간의 통화정책 대분기는 자본이동과 환율 등 국제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하면서 글로벌 주식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고 환율예측을 어렵게 해 글로벌 교역까지 둔화시키고 있다.

한국은 침체하고 있는 국내 경제여건만 고려하면 한국판 양적 완화 통화정책도 고려해야 하지만 미국 금리인상이 예상되는 시기라서 자본유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시건전성 차원의 적절한 대비가 사전에 강구되어야 한다.

양적 완화정책과 관련해 또 하나 중요한 논쟁은 반드시 금리가 제로수준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양적 완화정책은 금리를 낮추어도 기업이나 가계가 통화를 수요하지 않아서 돈이 돌지 않는 경우에 돈이 필요한 부문에 중앙은행이 직접 통화를 공급하고자 하는 정책이다.

지금 한국도 본원통화대비 통화량 비율인 통화승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는 대체로 위기국면에서 불확실성에 대비해 은행과 개인의 현금보유수요가 증가하거나 금융불확실성에 대비해 MMF 등 단기성 금융자산에 돈을 넣어 두는 경향이 증가하는 시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1997년 금융위기 시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고 미국에서도 대공황시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시기에는 금리인하만으로는 통화공급이 되지 않아서 경기회복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시기에는 주택부문 등 돈을 공급하면 경기회복이 될 만한 부문에 중앙은행이 직접 통화를 공급해 경기를 살리고자 하는 통화정책이 양적 완화정책이다.

따라서 반드시 제로금리일 필요는 없다. 충분히 금리를 낮추어도 통화승수가 현저히 하락하는 등 통화공급이 되지 않아 전통적인 통화정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 양적 완화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이 주택부문 정상화를 위한 주택저당채권매입이나 특정 정부투자정책을 위한 국채매입일 수도 있다. 미국은 이 두 정책을 병행했다.

주요국 간의 통화·금리정책의 차이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케인즈가 『일반이론』(1936)을 출간한 이후 지난 80년간 경제학계를 양분해 온 통화·금리 이론의 차이에 연유하고 있다.

케인즈 이전 고전학파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는 저축과 투자에 의해 실질금리가 결정되는 것으로 주장되어 왔다. 지금처럼 불완전고용이나 잠재성장 수준에 못 미치는 성장 상태에서는 실질금리를 올리면 저축이 늘어나고 저축은 언제나 투자를 가져온다는 ‘세이의 법칙’에 따라 투자가 늘어나므로 금리를 올리는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이론은 케인즈가 『일반이론』을 출간해 케인즈혁명이라는 경제학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후에도 신고전학파 틀로 케인즈를 재해석한 신고전학파 종합으로 이어지면서 경제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극단적으로 통화정책이 중요하지 않다는 통화론자 합리적기대론자 등은 크게 보면 이러한 신고전학파의 극단적인 분파로 분류될 수 있다.

반면 케인즈는 불완전고용상태에서 실질금리를 올리면 저축이 늘어나고 저축은 언제나 투자를 가져온다는 ‘세이의 법칙’은 유효수요가 부족해서 불완전고용이 발생하는 대공황 같은 현실에는 맞지 않다고 부정하고 화폐시장에서 명목금리가 결정되고 그 명목금리가 투자를 결정하고 그 결과 소득이 결정되므로 불완전고용상태나 잠재성장수준 이하의 성장 상태에서는 금리를 내려 투자를 증대시켜야 한다는 ‘유효수요이론’ 을 주장했다.

화폐시장에서 명목금리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역할도 중시했다. 지금처럼 불완전고용상태나 잠재성장 수준보다 낮은 성장 상태에서 어떤 통화·금리정책을 채택해야 할 것인가. 

주로 일본 영국 독일 등에서는 케인즈의 주장을, 미국 한국 등에서는 신고전학파나 통화론자의 주장을 따라왔다. 아마 한국에 미국 유학파들이 많은 점도 중요한 배경인 듯 싶다. 미국이라고 모두 신고전학파나 통화론자는 아니다.

   
▲ 한국은 침체하고 있는 국내 경제여건만 고려하면 한국판 양적 완화 통화정책도 고려해야 하지만 미국 금리인상이 예상되는 시기라서 자본유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자료사진=한국은행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과감하게 양적 완화정책을 들고 나온 벤 버냉키(Ben Bernanke)는 대공황을 연구해 온 케인즈 경제학자다. 중요한 점은 공허한 논쟁보다는 지금 한국의 현실에 맞는 이론과 정책을 찾아내서 주저앉고 있는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한 가지 흥미 있는 점은 케인즈를 확대재정을 주장한 재정확대 내지는 큰 정부 주장론자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점이다. 심지어 큰 정부를 주장한 사회주의자로 평가하는 경우마저 있다.

케인즈의 주저인 『일반이론』의 완전한 서명은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6)이다. 428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주저 어디에도 재정정책 관련된 주장은 없다. 서명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통화정책이 경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면서 거시경제학의 기초를 제공한 책이다.

인구에 더 많이 회자되며 인용에 인용이 거듭되는 위대한 저서일수록 원저는 가장 적게 읽힌다는 통설이 아마도 여기에도 적용되고 있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미국 양적 완화를 도입한 벤 버냉키(Ben Bernanke)는 바로 대공황을 연구한 케인즈 학자라서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나자마자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바로 양적 완화를 도입하고 이어 영국도 뒤따른 것이다. 오늘날 미국, 영국만이 회복을 앞서 가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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