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희회장의 선진부국 4만불 가는 길 경제정책-차별화경제 강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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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미디어펜 회장 |
지난 30년간의 표퓰리즘이 오늘날 경제 어려움의 뿌리
시장은 경제적 차별화기능을 수행한다. 시장은 그래서 경제력 집중과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일을 한다. 우리는 경제인이 아닌 인간으로서 경제력집중이나 경제적 불평등을 혐오한다. 이것이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모순론이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 속에 잠재된 경제적 인간은 경제력 집중을 조장함으로써 경제발전에 기여하지만 또 다른 잠재된 비경제적 인간은 항상 거대기업의 횡포니 재벌의 횡포니 하며 경제력 집중을 혐오한다.
이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인간상의 합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경제발전의 문제는 우리가 어떤 인간상을 더 중시하느냐의 문제이다. 전자의 경제적 인간상을 적극 장려하고 수용하는 사회는 경제발전의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후자의 비경제적 인간상을 더 선호하는 사회는 경제발전의 정체를 대가로 지불하게 된다.
비경제적 인간 성향에 호소하여 표를 구하려는 정치행태를 경제적 포퓰리즘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른바 경제민주화라고 불리는 경제적 포퓰리즘은 그래서 경제발전에 역행하는 정책을 생산하는 경향을 갖는다. 시장의 차별화와 동기부여기능의 작동에 역행하는 정책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30여년의 한국의 경제정책기조는 바로 자본주의 모순론에 기초한 경제평등주의 정책의 양산과정이었다. 1987년 민주헌법 119조 2항이 경제민주화추구를 천명한 이후 평등주의적 경제정책들이 남발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대기업에 대한 경제력집중 규제와 중소기업에 대한 무조건적 1/n 지원, 1982년부터 시작된 수도권 규제와 지방에 대한 무조건적 1/n 지원, 농업에 대한 무차별적 지원, 무소불위의 전투적 노조 육성 혹은 방치, 교육평준화 등의 평등주의 정책들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시장의 차별화와 동기부여 기능에 역행하고 경제 내에 반창발적 대립적 상호작용을 초래하는 정책들은 경제정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시장의 동기부여 기능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모든 국민들을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등주의 정책들이 결국 지난 30여년의 경제성장잠재력 하락의 원인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퓰리즘 정책들의 부작용은 그렇게 쉽게 감지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강남청산이니 대학 평준화니 하는 비이성적 주장들, 인위적 대-중소기업 상생 추구정책, 보편적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복지포퓰리즘 정책, 서민을 위해서는 시장역행적 개입도 불사하는 정부개입정책 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나 정책들이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하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경제발전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장기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반면 대증적으로 정부개입을 통해 경제적 결과를 교정하는 데는 단기간밖에 소요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에 해가 되지만 유권자의 일부 혹은 전부에 단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포퓰리즘 정책은 그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는데 장기간이 걸린다. 정치가나 유권자들은 항상 포퓰리즘 정책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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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등주의 경제정책을 지향하는 경제민주화는 동기부여를 억제하고, 차별화를 가로막아 지난 30년간 성장잠재력을 갉아먹었다. 흥하는 이웃의 발목을 잡기보다는 흥하는 이웃이 었어서 내가 흥한다는 차별화정책, 동기부여와 우대정책만이 선진부국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87년 헌법 117조 2항에 사회민주주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삽입하고, 지난 대선에서도 경제민주화 이슈를 주도했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강연하고 있다. |
과도한 소득 재분배정책은 저소득층에는 당장 해택이 오지만 이것이 제도변화과정을 통해 저소득층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고 고소득층의 일할 의욕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궁극적으로 재정적자를 초래하고 경제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데는 장시간이 소요된다.
지난 30여년의 우리의 정책경험은 선진 사회민주주의국가나 복지국가들이 취한 정책기조와 유사하다. 우리는 경제능력이나 재정능력의 미흡으로 직접적인 복지확충은 적극적으로 못했지만 여타의 경제평등지향의 규제정책들이 그 대신 경제민주화의 수단이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경제의 어려움의 뿌리인 것이다.
한국경제의 미래: 동반성장을 중심으로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 헌법 119조 2항은 이미 사회민주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이 조항은 국가가 경제를 민주화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 규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야당은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여당과 정부도 이에 질세라 각종의 평등주의적 성향의 정책이나 비전을 들고 인기와 표를 구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선 박근혜 후보다 문재인 후보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경제민주화를 핵심공약으로 내걸었다.
골목상권 보호와 경제력집중억제, 일감몰아주기 징벌적 과세 등 반기업적 경제민주화정책은 박근혜정부 첫해에 주요 과제로 추진됐다.
하지만 경제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시장의 차별화와 동기부여 기능에 역행하는 이런 발전역행적인 정책들을 타파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럼 시장이 경제적 차별화기능을 수행한다고 하면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결국 불평등만을 가져온다는 것인가? 이는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정착된 이래 자본주의에 대한 시각은 자본주의체제와 부의 불평등을 동일시하는 이념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래서 자본주의체제는 모순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주장도 등장하였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경제에서의 경제정책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같은 시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더구나 불평등은 모순이며 이는 같이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끝없이 사회주의적인 정책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자본주의 사회를 보는 올바른 세계관인가? 이에 대한 답은 이미 앞에서 주장한대로 아니다 이다.
오히려 자본주의경제는 동반성장을 그 기본 메커니즘으로 하는 경제체제이다. 경제적 차등을 바탕으로 모두에게 동기부여하여 뒤 따르는 자들이 앞 선자를 무임승차하여 모두 발전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이라 보는 것이 옳다.
모두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전 자본주의시대의 말사스 함정이나 공산주의체제하에서의 평등과 자본주의 체제하의 차등속의 동반성장을 비교형량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소위 양극화는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양극화라는 용어자체는 차등이나 불평등 현상을 극단적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어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현상에 과도하게 부정적인 인상을 초래하는 문제가 있다. 부익부, 빈익빈 이라는 표현 또한 그러하다. 우리는 시장은 차등은 만들어내지만 모두를 향상시키는 기제라고 본다. 이 기제는 바로 앞서가는 성공자들의 성공노하우라는 문화유전자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무단복제(무임승차)되는 과정을 통해 작동된다.
따라서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그 사회는 필요이상의 차등(소위 양극화)이 생기게 된다. 이 문제의 원인은 대체로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은 성공하는 이웃이 양산되지 않는 경우이며, 둘째는 성공노하우의 물방울 떨어뜨리기(적하, Trickling-down)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셋째로는 성공노하우가 사방에 널려 있음에도 이를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자조의지가 빈약한 경우이다.
첫째 문제의 원인은 대게 정부의 대기업규제, 부자에 대한 과도한 세금, 수도권에 대한 규제, 기업이나 부자에 대한 반정서, 과도한 전투적 노조활동 등이 거론된다. 이는 기업의 투자를 막고 부자들의 지출을 막고 도시의 성장을 막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오히려 일자리창출을 어렵게 하는 경우이다.
두 번째 문제의 원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자연스런 협력에 오히려 거래비용을 높이는, 소위 중소기업을 위하고 대기업의 확장을 규제한다는 정책들, 사회 구성원들 간의 협력보다도 적대감과 증오감을 초래하여 협력의 거래비용을 높이는 사회분위기나 제도 등이 원인이다.
세 번째의 문제는 국민들이 나태하여 자조가 아니라 국가 의존적이고 의타적인 이념에 빠져 있는 경우이다. 오늘날 한국의 소위 양극화문제는 인재(人災)라고 생각한다. 답은 물론 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경제주체들이 대접받는 사회분위기와 제도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 흥하는 이웃들이 보다 많이 등장할 수 있는 경기규칙을 만들어내어야 한다.
동반성장 경험과 오늘날의 양극화의 원인
한국의 개발연대, 1960년대 이후 1980년대 말까지의 한국의 경제성장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개선시킨 모범적 자본주의 경제성장 경험이다. 세계은행이 1965-89년간 주요국가의 성장률과 소득분배를 비교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은 평균성장률은 표본국가 중 가장 높으면서 소득불평등지수(상위 20% 소득/하위20% 소득)는 아주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였을까? 수출주도정책으로 성장하는 기업들이 수출의 과실을 국내투자로 환원시킴으로써 수출이 내수부문과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구조가 정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이다. 당시의 한국기업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독려 하에 내수투자를 늘릴 수 있었다. 당시에는 노조를 지나치게 억압한 문제가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투적 노조는 없었다. 당시에는 수출을 많이 하여 대기업이 되는 것이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 이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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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열심히 하는 사람과 기업, 지역에 대한 차별화와 우대를 부정하는 경제민주화 광풍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 폭넓게 스며 들어가고 있다. 새누리당내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에 참여하는 이종훈의원(오른쪽에서 두번째) 등이 골목상권및 대기업 규제 관련법안을 협의하고 있다. |
경제력집중규제(1980년대 중반이후 지속적 강화)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들의 국내투자를 규제하는 일은 없었다. 또 당시에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수도권에 투자하는 것을 막는 수도권 대기업투자 규제정책(1982년부터 시작)도 없었다. 대기업들이 수출 과실을 국내에 환원하는 데 큰 제약이 없었다. 종합상사들이 수출을 늘리는 일은 중소기업들과의 연대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대기업 수출이 바로 중소기업들의 성장과 국내 일자리 창출, 내수활성화로 이어졌다.
오늘날 그럼 왜 소득분배는 악화되고 양극화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동반성장이 안 되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소득분배에 대한 많은 연구에 의하면 1990년 이후 소득불평등도를 측정하는 지니계수는 계속 증가하여 소득분배가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앞에서 지적한대로 1980년대 말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 사회, 지역의 균형발전을 추구하고 소득분배 개선을 위해 소위 경제민주화를 추구했음에도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인가? 근로자를 위한다는 전투적 노조 방치 문제,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대기업 투자 규제 문제, 지방을 위한다는 수도권규제 문제, 대기업들의 문어발을 규제한다 하지만 오히려 중소기업들과의 협력(자본제휴 등)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 등등...
경제적 약자를 더 우대한다는 정책들이 역설적으로 투자할 능력이 있는 기업들의 해외투자를 과도하게 조장함으로써 결국은 좋은 일자리를 해외에 팔았다. 소위 비전 높은 청년들이 기피하는 중소기업 일자리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해외로 떠나고 99% 이상이 중소기업이고 88% 이상이 중소기업 일자리인 한국경제, 중소기업이 성장보다 중소기업으로 남아 있음이 더 유리한 인센티브구조를 만들어내는 한국경제가 양극화 문제에 봉착하게 됨은 너무나 당연한 경제적 결과이다.
성장하는 기업이 아니라 작은 기업이 우대받는 경제에서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연목구어에 다름 아니다. 동반성장을 위한 답은 간단하나 실천은 어렵다.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투자할 능력이 있는 기업들이 국내투자를 늘릴 방안을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전투적 기득권 노조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은 없다. 진정으로 기업투자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기업의 의향은 물어보지도 않고 정부가 나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책은 성공가능성이 없다. 투자할 능력이 있는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소릴 할 수 있는 정치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국민들도 이제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일자리와 양극화해소를 위해 대기업들을 국내로 들어오도록 대기업규제, 수도권규제 등등 평등, 균형, 도덕과 명분을 내세운 정치색 짙은 소위 경제민주화 정책들을 폐기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정책들을 지속 강화하여 모두 어려워지는 오늘날의 선진국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계속 따라 갈 것인지를 …
우리 모두가 경제적 차등과 차이가 싫다고 정부로 하여금 시장의 차별화기능을 무력화시키거나, 그에 역행하는 평등주의정책들을 만들어내게 하면 당장은 편해지지만 결국 모두가 하향 평준화되는 실패하는 길을 재촉하게 된다. 국민들도 이제 흥하는 이웃이 되고자 모두 털고 일어나 노력할 것인지 흥하는 이웃의 발목이나 잡고 있을 것인지 선택할 때가 되었다.
정부에게 내 몫을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나에게 더 큰 경제적 자유를 달라, 결과는 내 책임이다”라고 소리칠 수 있는 국민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없다.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미디어펜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