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부재에 독재정치? 야합의 정치 미화하는 학계·언론
지난 4월 13일 20대 총선을 통해 보여준 제19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냉혹했다. 문제는 선거 이후 출범할 20대 국회에도 희망보다는 우려가 앞선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사상과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일 19대 국회의 의원입법 발의에 대한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국회의원 이념의 현주소를 살피고 20대 국회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무소신 무이념으로 벌이는 입법발의 행태의 원인은 크게 세가지”라면서 “첫째 입법발의 숫자에 기반을 둔 의원평가, 의원 활동 보고서에 필요한 의원활동의 가시적 결과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인영 교수는 두 번째 원인으로 국회에 만연한 운동권적 동지 의식과 지역 유대감을 들었고 세 번째 원인으로는 “무소신·무이념적 행태가 자신의 네트워크 확장의 도구가 되고 ‘소통’에 능한 발 넓은 의원으로 미화되는 국회의 정치풍토가 문제”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운동권 세력이 아직도 ‘산업화(産業化) 대 민주화(民主化)’라는 이분법적 대립 개념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다”며 “여야의 무소신·무이념 의원들은 국회선진화법으로 정당 야합을 제도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학자들과 언론은 ‘협치’(協治, 거버넌스 governance)라는 용어로 야합의 정치를 정당화하고 미화했다”며 “여야가 합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당의 소통 부재이고 독재정치라고 컨센서스(consensus)를 이룰 것을 강요했다”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김인영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국회의원의 ‘무소신·무이념’행태가 국회를 무능과 비효율로 이끈다

류석춘 교수님은 발제문을 통해 국회에서 의원 입법발의를 네트워크 구조분석하고 있다. 법 안 발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회의원(actor)의 철학 없는 ‘이념 잡탕’식1) 행동과 태도를 네트워크 구조분석으로 설명하고 있다. 발제문은 방대한 자료를 입체적인 방식으로 네트워크 분석 을 실행하였다. 그 동안 알려지기는 하였으나 분석적으로 뒷받침 되지 않았던 국회의원의 ‘무소신·무이념’적 행태를 자료와 분석으로 확인시켜준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당내 기반이나 지역 기반이 취약한 초·재선 의원들이 자신들의 취약한 입지를 보완하기 위하여 법안 대표발의뿐만 아니라 공동발의에도 적극 참여하는 현상, 지역 기반이 상대적으로 강한 지역의원들은 동일한 지역의원들의 공동발의에 적극적인 현상, 그리고 야당의 핵심 네트워크 특히 운동권 네트워크에 포섭된 새누리당 의원들이 야당 쟁점 법안에 공동발의 하는 현 상을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잘 밝혀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법안 발의 ‘짬짜미’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과 결과이다. 원인으로는 첫째로 - 발제문도 지적을 하고 있지만 - 외부 시민단체의 입법발의 숫자에 기반을 둔 의원평가, 의원 활동 보고서에 필요한 의원활동의 가시적 결과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인은 국회 에 만연한 운동권적 동지 의식과 지역 유대감 때문이다. 그리고 ‘무소신·무이념’적 행태가 자신 의 네트워크 확장의 도구가 되고, ‘소통’에 능한 발 넓은 의원으로 미화되는 국회의 정치풍토 가 그 결과가 될 것이다.

이는 대통령이 경제회복과 안보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요청하는 법안 들이 야당의 대안 없는 막무가내 식 반대와 여당 지도부의 이념 정체성 상실과 결합되어 법안 원안의 핵심은 빠진 채 ‘맹탕법안’이 통과되거나 여당 지도부가 야당의 반대를 논리적으로 무력화시키지 못하여 무능 국회와 비효율 국회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된다. 발제문도 국회의원의 ‘무소신·무이념’적 행태가 국회를 무능과 비효율로 이어진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2) 이러한 연구 결과는 국회의 개선 방향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결론을 내포하고 있다.   

‘무소신·무이념·무원칙’ 국회의 원인은 직접적으로 한국 정당의 ‘지역주의·계파정치·무소신·이 념 부재·이념 잡탕’에서 찾을 수 있다. ‘무소신·무이념·무원칙’ 국회는 곧 ‘무이념’ 정당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게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정부·야당 협치 주장 역시 국회의 입법발의 에서 보이는 '무소신·무이념' 행태와 동일한 연장선에서의 주장으로 보인다./자료사진=연합뉴스


‘무이념’라는 한국정당의 문제는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정당 (political party) 정의를 돌아보게 한다. 버크는 정당을 “어떤 특정한 원칙에 의하여 공동의 노력으로 국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뭉친 사람들의 집단(a body of men united for promoting endeavors the national interest upon some particular principle in which they are all agreed)”3)(강조는 필자가 한 것)으로 정의하였다. 한국 정당의 이념 정체성 부재는 당내 파벌 의 형성과 파벌에 따른 정당의 분리 해산 및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심한 지극히 불안정한 한 국 정당체제를 만들어 내는 원인을 설명해주고 있다. 나아가 버크에 정의에 기초한다면 - 물 론 정당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존재한다 - 합의된 원칙도 국익을 위한 공동의 노력도 없는 한국 정당이 ‘무능과 비효율’로 이어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로 보인다. 

특정한 원칙이 없고 국익 증진이라는 정당 목표도 상실한 채 계파의 이익을 쫓다 만들어낸 새누리당의 공천실패는 바로 선거 패배로 이어졌음을 4·13 20대 총선은 웅변으로 보여준다. 원칙도 없고 국익도 없고 계파 이익만 있으니 “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이나 수작”이라는 ‘짬짜미 정치’가 국회 입법과정과 정당정치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두거나 운동권 경험으로 뭉친 정치인들이 파벌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짬짜미’하여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계파정치·무소신·이념 잡탕’의 유치한 정치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19대 국회를 ‘역대 최악의 국회’로 만든 소위 ‘국회선진화법’도 사실은 ‘무소신 여야 합의 (consensus) 정치’라는 이름의 짬짜미 수작(정치)의 부산물이다. 

발제문은 한국정치 분석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 1987 년 민주화 이후 30년 - 산업화도 30년으로 한 세대가 지났고, 민주화도 한 세대가 지났음 - 이 된 지금도 운동권 네트워크가 여야 정치권 모두에 통용되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운동권 세력이 아직도 ‘산업화(産業化) 대 민주화(民主化)’라는 이분법적 대립 개념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고 또 여당이 추진하는 입법을 저지하는 가장 큰 이익집단은 운동권 진보·좌파 집단임을 밝혀내고 있다. 

여야의 ‘무소신·무이념’의 의원들은 ‘국회선진화법’으로 정당 야합을 제도화하였고, 학자들과 언론은 ‘협치’(協治, 거버넌스 governance)라는 용어로 야합의 정치를 정당화하고 미화했다. 즉, 여야가 합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당의 소통 부재이고 독재정치라고 컨센서스(consensus)를 이룰 것을 강요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연말이면 벌어지는 여야의 나눠 먹기식 예산 편성, 야당의 극심한 포퓰리즘적 예산 요구, 또 정부 예산안 통과를 조건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 통과를 합의해달라는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만이 ‘합의’ 정치이고, 컨센서스를 이루는 정치이고, 바람직한 민주정치라는 것인가는 진정 의문이다.

   
▲ 국민은 4·13 총선에서 국회를 3당 체제로 운영하라고 국회의원을 (골고루) 뽑아준 것이지 대통령직 수행을 야당과 협의하여 하거나 또는 야당의 동의를 근거로 통치하라고 주문한 것은 아니었다./자료사진=연합뉴스


둘째, 발제문은 분석을 통해 ‘짬짜미’ 법안발의, 예산 나눠먹기 편성, 원칙 있는 법안을 맹탕 법안으로 통과시키는 여야의 법안 협상 등의 폐단으로 볼 때 ‘무원칙’한 나눠먹기식 법안통과 및 국회 운영은 이제 중단되어야 함을 고민하게 했다. 크게 보면 ‘87 체제’로 만들어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운동권의 입지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여야 합의에 의한 국회 운영이라는 ‘무원칙’ 나눠먹기 야합 운영을 이제는 재고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한국정치의 문제는 합의(consensus)에 의한 국회운영과 법안 통과만을 강조하다보니 원칙과 철학과 이념 때문에 합의되지 않을 때의 결정 방식인 다수결(majority rule)이 나쁜 것으로 죄악시 되었다는 것이다. 합의·협치는 선(善)이고, 다수결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사회 전반을 장악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러나 (여야) 합의되지 않을 때, 협치가 불가능한 이념적 지형을 보일 때의 결정은 무엇으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새누리당과 해체된 반 국가단체 통진당과 ‘북한인권법’ 합의 통과는 아무리 토론해도 ‘agree to disagree’만 가능할 것 이 아닌데 어떻게 소통이라는 명분 때문에 다수결이라는 결정 방식을 배제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없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게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정부·야당 협치 주장 역시 국회의 입법발의 에서 보이는 ‘무소신·무이념’ 행태와 동일한 연장선에서의 주장으로 보인다. 협치는 말 그대로 ‘공동 통치’라는 거버넌스(governance)인데 과도한 협치 주장은 헌법 정신에도 어긋나는 주장이다. 헌법 제70조(대통령의 임기)는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여 중임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5년의 임기 동안에는 대통령 ‘소신껏’ 행정을 이끌어 가라는 ‘민의’의 표출이 2012 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국민은 4·13 총선에서 국회를 3당 체제로 운영하라고 국회의원을 (골고루) 뽑아준 것이지 대통령직 수행을 야당과 협의하여 하거나 또는 야당의 동의를 근거로 통치하라고 주문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협치(協治)의 한계는 국회이며, 대통령은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에게 협조를 구하라는 정도로 민의(民意)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언론과 방송, 그리고 야당이 주장하는 협치는 ‘소신과 원칙’이 맞을 때만 가능한 것이지, 발제문에서 밝혀진 대로 ‘무소신·무이념’ 법안 발의 행태를 국회를 넘어 정부까지 ‘무소신·무이념’으로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1) ‘이념 잡탕’이라는 용어는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을 지낸 이한구 의원이 탈당한 무소속 의원들의 복당에 대해 “유승민 의원 등의 복당이 이뤄진다면 (새누리당이) 또 다시 ‘이념 잡탕당’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에 기인한다.   

2) 유석춘·이승수, “19대 국회 의원입법 공동발의 네트워크 분석 -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p.12.

3) 이상우, 『정치학개론』, 서울: 오름, 2013, p.116.
[김인영]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