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하다고 한다면 국회 통과해야"
[미디어펜=한기호 기자]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2일 정부·여당이 기업 구조조정 자금 조달 방안으로 내놓은 '한국형(선별적) 양적완화'에 대해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양적완화라고 말하기 어렵다.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박 전 총재는 이날 오전 SBS라디오 '한수진의 전망대'에 출연, "양적완화라는 건 시중에 돈을 풀 목적으로 한은이 돈을 찍어내는 것"이라며 유럽과 일본의 사례를 지목한 뒤, "우리가 하는 것은 조선과 해운업 몇 개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라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은을 '우리나라의 금고지기'라고 비유하며 "이 금고 열쇠를 5년마다 바뀌는 정부 권력이 갖고 있으면 여러가지 남용 우려가 있어 중앙은행을 독립시켜 중앙은행이 그 열쇠를 가지도록 한다"며 "열쇠 사용에 준칙이 있다. 사회의 보편적 목적을 위해 금고 열쇠를 써야지 어떤 개인이나 특정 기업, 지역을 위해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이것은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이라고 꼬집은 뒤 조선·해운 뿐 아니라 철강, 건설산업 등에도 같은 정책이 남용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한은이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에 지원한 자금에 대한 감독권과 이들 기관에 대한 인사권도 없다는 점을 들어 "국민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면서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갖고 원칙과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총재는 "정부가 한은 돈을 쉽게 쓸 수 있으니까, 꼭 필요한 일이니까 편법으로 이렇게 하지 말고 정공법으로 떳떳하게 국회를 통해야 한다"며 "야당이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 적극 정부와 협력해 조속히 매듭짓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여야 협조를 통한 정책 마련을 제안했다.

그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국회의 동의를 거쳐 부실금융기관에 5년간 168조60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사례를 들었고,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한은에 인수시켜 추경예산으로 활용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공적자금 투입의 경우 국가 부채 급증을 야기했으며 그중 49조원 가량이 회수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돼 국가채무로 전환된 후 사실상 국민세금으로 부담된 전례가 있다. 국채 발행 역시 국가부채를 늘리는 효과가 있어 국민의 세부담 초래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방안들은 단기적 경기부양책에 해당한다.

그러나 박 전 총재는 이같은 제안에 이어, 작금의 경기 침체를 '구조적 문제'라고 평가한 뒤 "단기부양책만 쓰게 되면 일본처럼 20년간 장기 불황이 올 수 있다"며 단기부양책에 반대하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일본이 1990년부터 경기 침체가 오니까 계속 금리를 내려 마이너스 금리까지 갔다. 그때 건전재정이었다"며 "오늘날 계속 적자 재정을 하다 보니까 GDP의 250%라는 국가부채, 세계에서 제일 빚이 많은 나라가 되고도 일본 경제 성적표는 제로"라고 강조했다.

이어 "단기부양책을 계속하면 내성이 생겨 돈을 풀면 땅값과 주가를 올리지만 실제 투자와 소비를 늘리는 효과가 없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