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석 주필

"지금 정당(새누리당)은 가치도 리더십도 없어요. JC(청년회의소)만도 못합니다. 기껏 선거만을 위해 있는데, 그 선거 대비도 못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4.13총선도) 개판을 만들어 놓았어요. (前 당대표 같은) 정치지도자가 국가 어젠다는 어떻게 끌고 가겠습니까? 깜도 안 되는 인간을 대선 주자로 여론조사하고, 언론이 날마다 등장시킵니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얼마 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얘기인데, "깜도 안 되는 인간"이란 김무성을 지칭한다. 이정현이 막상 표적으로 삼은 건 새누리인데, 그는 이렇게 예견했다. "총선 참패 이후 난리를 쳐도 좀 지나면 원상으로 돌아갑니다. 저 권력, 저 오만을 어떻게 이겨 냅니까?"
 

총선 참패 이후 한 달도 안 된 새누리가 지금 자충수에 엉뚱한 진상 짓에 여념이 없다. 위기의 당을 맡아줄 구원투수인 비대위원장 모셔오기부터 허둥지둥인데, 놀랍게도 어떤 당선자는 손학규 모셔오기를 제안했고, 다른 이는 한화갑을 지목했다.

둘이 어떤 위인이던가? 좌파정서를 깊숙하게 가진 철새(손학규)이거나, 김대중 야당의 간판(한화갑)이다. 손학규의 경우 무엇보다 새누리와는 이념을 공유할 수 없다. 멀쩡해 보이는 그가 그동안 줄기차게 국보법 폐지-햇볕정책 지지-평화체제 구축을 공언해오지 않았던가?
 

그는 <월간조선> 인터뷰(2007년 3월 호)에서도 "이 나라가 반공-수구꼴통의 나라냐?"는 식의 망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아직도 그가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정체성조차 긍정하지 못하는 철부지 운동권으로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 못지않은 충격은 좌익 학자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을 지난달 모셔서 조언을 들은 점이다.
 

자칭 쇄신파라는 새누리당혁신모임(새혁모)가 그 따위인데, 집권여당이 좌파 코스프레하는 걸 당 쇄신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당시 최장집의 발언도 최악이다. 간담회에서 최장집은 "임기 후반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통령 탓, 그리고 민주주의 타령이 맞는 소리일까? 인터넷매체 '올인코리아'대표 조영환이 이렇게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제 새누리당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저런 생뚱맞은 충고를 하는가? 과잉 민주화의 적폐가 집권여당에도 깊이 침투하여, 전 원내대표(유승민)가 정부여당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입법을 하지 않고 좌익 야당에 휘둘리는 현실을 뻔히 지켜보고도…"
 

무엇보다 민주주의 타령이 걸린다. 두 달 전 미디어펜 칼럼에서 필자는 최장집을 "민주주의교의 사제인양 으스대는 허깨비"로 규정한 바 있다. 그는 예전부터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줄기차게 요구하던 궤변가다. 실제로 '민주주의교(敎) 환자' 최장집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란 단행본을 펴낸 바 있다.
 

새혁모가 모셨어야 하는 학자가 있다면 양동안(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이 아닐까? 먹물입네 하는 사람 열에 아홉이 좌파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그런 위선자 그룹과 달리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가진 거의 예외적인 인물이 바로 그 분이다.

뿐이랴?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훌륭한 카드의 하나다. 그가 가진 장점은 무엇보다 확고한 국가관이다. 그 점 양동안과 비견할만한데, 단언컨대 새혁모 멤버들은 '양동안=극우', '이영훈=뉴라이트'라는, 좌익이 씌워놓은 프레임에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양동안-이영훈을 모시면 큰일 나는 줄로 저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고전 반열에 있는 양동안의 묵직한 양장본 <대한민국 건국사>과, 명편(名篇) 중의 명편인 <사상과 언어>을 알기나 할까? 이영훈이 쓴 <대한민국 역사>, <대한민국 이야기>도 모를 것이다.
 

정말 문제는 비대위원장 모셔오기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왜 새누리는 손학규-한화갑 정도에서 맴맴돌이를 할까? 꽉 막힌 그들의 눈에는 왜 기파랑 안병훈(78) 사장 같은 분이 안 보일까? 조선일보 부사장 출신의 언론인으로 그만한 중량감에 신망과 추진력을 가진 인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고령인데다가 썩 나서줄 것인지 다소 의문이라면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같은 분도 떠올릴만하다. 2년 전 좌익과 선동언론의 장난에 유감스럽게도 낙마했지만, 이후 그의 애국심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여전하다.
 

결정적으로 고영주 MBC 방문진 이사장도 비대위원장 깜이다. 무엇보다 확실한 국가관이 돋보인다. 1980년대 부산 지역 최대의 공안사건인 부림사건 담당 검사로 활동하는 등 공안이론가로 유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검사 생활을 마친 뒤인 2008년 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을 맡은 이력과 이후 걸어온 길도 신뢰감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2010년 <친북·반국가행위 인명사전> 편찬 활동, 2011년 민주노동당 해산을 촉구하는 청원 활동은 뚜렷한 일관성이 있다. 결정적으로 지난해 가을 국회 국정감사장에 야당의원들의 공세 앞에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보여줬던 담대함과 결기가 그를 자유민주진영의 스타 반열로 올려 세웠다.
 

상식을 재확인하자.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이유는 포괄적으로 말해 그런 '배신의 정치'DNA에, 한없이 비겁했던 김무성 등 새누리 지도부에 유권자들이 질렸기 때문이다. 유승민 하나 잘라내지 못하는 걸 지켜보면서 전통적 지지층이 등을 돌렸다.
 

이 명백한 표심(票心)을 못난이당 새누리만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중도 실용으로 가거나 좌클릭을 하면 살아날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런 새누리를 향해 원로원론인 류근일은 이렇게 일갈했다.

"자존심과 자기 항심(恒心)과 자기 정체성이 없는 기회주의 카멜레온들은 살 가치와 자격이 없다. 도무지 영혼이랄 게 없는 위인들이다."
 

다음 회에는 '배신의 정치 DNA'가 19대 국회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에게 어떻게 표출됐었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히겠다. 유석춘 연세대 교수가 실증적으로 작업한 논문 '19대 국회 의원입법 공동발의 네트워크 분석'이 그것인데, 이걸 잘 들여다보면 새누리가 왜 '배신의 정치' 집단인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기대 바란다. /조우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