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1986년부터 30여 년간 사용된 ‘현대증권’이라는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간 갈등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증권을 인수하는 KB금융지주는 최근 “향후 5년간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현대증권’ 브랜드를 현대상선에 넘겼다.

이에 따라 오는 31일 인수 잔금을 납부해 KB금융지주가 현대증권 새 주인이 되면 브랜드 사용료를 현대상선에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양사가 합병을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말까지는 ‘현대증권’ 사명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현대증권’ 브랜드는 현대상선이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증권사가 사명으로 사용하기는 어렵게 됐다. 금융투자업계에서 ‘현대’가 사명에 들어가는 증권사를 최소 5년간 보기는 힘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범현대가 증권사인 현대차그룹 계열사 HMC투자증권과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하이투자증권은 ‘현대’라는 이름에 강한 미련을 갖고 있다. ‘현대’라는 이름이 갖는 브랜드 파워와 범현대가 내에서의 적통성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2010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이어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감정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시숙과 제수 사이인 두 사람은 그때 생긴 앙금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모양새다. 현대상선이 법정관리 위기에 몰리면서 정부에서 현대차그룹에 대한 인수를 추진했지만 “관심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한 데는 정 회장과 현 회장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현 회장이 유동성 위기에 몰린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현대증권을 매각하면서도 ‘현대’라는 브랜드는 HMC투자증권이나 하이투자증권에 넘겨주기를 거부한 것이 아닌가하는 시각도 있다.

현대상선이 겉으로는 “고객 혼선을 빚을 수 있으니 브랜드 사용권을 다른 곳에 넘기지 말라”고 했다지만 5년간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굳이 ‘현대증권’이라는 이름에 욕심을 낼 이유가 없다는 것.

KB금융지주 입장에서도 그룹이 해체된 ‘대우증권’ 사명도 계속 사용되는데 현대그룹이 위기를 겪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전통과 브랜드 파워를 가진 ‘현대’라는 이름을 버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현 회장이 KB금융지주에 강하게 현대증권 브랜드를 넘기라는 요청을 한 것 아니냐는 것.

실제로 HMC투자증권은 지난 2008년 사명을 ‘현대차IB증권’으로 변경하려고 했지만 현대그룹에서 반발하면서 가처분 신청을 내 법원이 받아들이자 지금의 HMC(Hyundai Motor Company)투자증권으로 바꿨다. 당시 HMC투자증권은 영업점 간판 교체비용 등으로 수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HMC투자증권 관계자는 “소송 등 법적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어 ‘현대’라는 이름을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HMC투자증권은 물론 하이투자증권 역시 ‘현대’ 브랜드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핵심계열사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으로 지분 771만7769주(10.15%)를 보유 중이다.

정 이사장은 지난 2006년 현대상선의 지분을 현 회장과 사전 협의 없이 매입해 경영권을 위협한 일명 ‘시동생의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대중공업과 정 이사장 역시 현대상선 인수의 강한 후보로 떠오른 바 있다.

하이투자증권 관계자는 “‘현대’라는 이름을 법적으로 문제없이 증권사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사명을 변경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우증권을 인수한 미래에셋증권은 합병 후 사명을 ‘미래에셋대우’로 결정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0년이 다돼가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대우증권이 줄곧 1위 증권사였고 역사성도 있는 회사”라며 “‘대우’라는 이름은 아직도 해외에 많이 알려져 있어 해외진출에도 유리하다”고 전했다.

이어 “동부대우전자, 대우조선해양 등이 아직도 ‘대우’를 사명에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이름의 가치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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