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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
서울시는 지난 10일 산하 19개 공공기관 중 30인 미만인 공공기관과 출자기관 4곳을 제외한 15개 공공기관에 대해 오는 10월부터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자격은 비상임이사로 비상임이사의 3분의 1을 근로자이사로 임명하는데 근로자 300인 이상은 2명, 300인 미만은 1명은 둔다는 것이다.
근로자이사제 우선 도입 15개 공기업은 서울메트로와 SH공사를 비롯해 도시철도공사, 시설관리공단, 서울의료원, 세종문화회관, 농수산식품공사, 신용보증재단, 서울산업진흥원, 서울디자인재단, 서울문화재단, 시립교향악단, 서울연구원, 복지재단, 여성가족재단 등이다.
출자기관인 ㈜서울관광마케팅과 근로자 30인 미만인 장학재단, 자원봉사센터, 평생교육원 등은 제외했다. 서울시는 근로자이사제 도입 배경으로 △사회적 갈등비용 발생 예방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선진국 선행 실시 △국내 우호적 환경조성 등을 꼽았다.
앞서 박 시장은 지난 2014년 11월 발표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혁신방안'에서 '근로자이사제' 도입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이같은 공공기관 근로자이사제 도입에는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박근혜정부는 4대 부문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공공부문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왔다.
이는 공공부문이 과도하게 방만하게 운영되어 온 나머지 공공기관 부채가 이미 통제하기 힘든 수준으로 증가해 이대로 가면 증가하고 있는 국가부채와 더불어 재정위기를 초래해 미래세대에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겨 줄 우려가 크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공공기관 방만경영에 대한 강력한 개혁 추진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부채는 2014년 말 594조1000억 원으로 2013년말 594조9000억 원에 비해 경우 8000억 원이 줄었을 뿐이다. 서울시 산하 대표적인 공공기관인 서울지하철의 경우는 부채가 2013년 말 4조5000억원으로 오히려 증가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공기관 방만경영 개혁을 위한 성과연봉제 도입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 이 즈음에 방만경영 개혁은 커녕 오히려 서울시 산하 15개 공공기관에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해 경영진에 근로자를 포함시키겠다는 것은 공공부문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일단 서울시 산하 15개 공공기관에 근로자이사제가 도입되면 650개에 달하는 중앙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으로 확산될 개연성이 커서 공공부문 개혁은 큰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근로자이사제' 도입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과거회귀적인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근로자의 이사회 참여는 독일에서 시행돼 왔다. 독일은 노사공동결정제도를 바탕으로 한 '사회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1951년 철강·석탄·광산 분야에서 경영자와 근로자가 협의해 주요 경영사항을 결정하는 공동결정제도가 도입됐다. '1976년 공동결정법'에서 이 제도가 확립된 노사공동결정제도는 이사회를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로 나누고, 감독이사회의 이사 반수를 근로자의 대표로써 임명한다.
감독이사는 경영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감독이사의 멤버인 근로자는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 말하자면 한국의 사외이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자리다. 감독이사회의 의장은 자본가의 대표가, 부의장은 근로자의 대표가 맡으며, 가부동수인 경우 의장에게 결정권을 준다.
이러한 독일의 제도는 독일의 경제제도가 은행중심 금융제도를 가지고 은행이 기업경영에 직간접으로 개입하고 있는 제도라는 점과도 관련이 크다. 따라서 독일의 자본주의는 은행 경영자 근로자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다.
여기서는 이해관계자의 한 축인 근로자가 경영이사회를 감시하는 감독이사회에 참여함으로써 경영진과 은행 간의 있을지도 모르는 유착관계나 은행의 과도한 경영개입여부를 감시하고 노사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서 경제발전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기업을 '경제적 조직'으로 보기보다는 '사회적 조직'으로 인식하고 '시장규율'보다는 '사회적 규율'이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다. 실제로 노동조합과 기업의 대립적 노사관계를 축으로 하는 영국에 비해 파업성향이 낮아서 독일 경제의 안정적 발전에 기여해 오기도 했다.
이는 주식시장이 발달돼 시장중심 금융제도를 가지고 있고 기업을 '사회적 조직'으로 보기 보다는 순수한 '경제적 조직'으로 인식하는 영미와는 다른 제도다. 영미에서는 주주가 중심은 '주주자본주의'다.
여기서는 주인인 주주와 주주를 대리해서 경영하는 경영진 간의 주인대리인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업지배구조가 발달되어 왔다. '사회적 규율'보다는 '시장규율'이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인 독일은 전체 기업 중 주식회사가 1%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는 주식회사가 95%에 이르는 등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기업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한국에 근로자이사제가 도입돼 근로자가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 근로자와 주주 간의 이해상충문제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 주주자본주의에서는 주인을 대리하는 경영진이 주인인 주주보다는 경영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사결정을 하는 대리인문제를 견제 감독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근로자가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 이러한 문제가 주주와 근로자 간에도 추가적으로 발생할 소지가 커지면서 주주와 근로자 간의 이해상충 문제, 근로자의 대리인문제를 견제 감독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어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뒤따른다.
만약 적절한 대책이 도입되지 않는 경우 근로자의 전횡, 심할 경우 근로자와 경영진 간의 답합 등 새로운 문제의 대두로 주주자본주의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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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서울메트로 등 15개 공사,공단,출연기관에 비상임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
1970~1980년대 독일의 안정적인 경제발전에 기여해 온 독일식 기업지배구조는 1990년 대 들어 은행중심 금융제도로 부채가 많아진 독일 기업들이 외국기업들에 피인수합병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정보통신기업을 중심으로 혁신적인 벤처기업의 역할이 중요해 지면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급기야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에 대한 문제점이 거론되기 시작하고 독일에서도 시장중심 금융제도의 발전과 '시장규율'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공동결정제도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역할이 많이 약화되었고 심지어 공기업은 1994년 연방철도청을 민영화하는 등 공기업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사관계도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일자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혁되었다. 그러한 개혁이 집약된 것이 '어젠다 2010'으로 유명한 '하르츠개혁'이다. 하르츠개혁을 주도한 정부는 다름 아닌 사회민주당 슈뢰더 수상이다.
그는 영국 노동당 블레어 총리와 함께 1999년 '슈뢰더 블레어 선언'을 통해 사회적 개념보다 경제적 개념을 강조한 사민주의의 현대화를 선언했다. 그 결과 정권을 내놓았지만 슈뢰더의 정책을 기민당의 메르켈이 이어받아 추진함으로써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받던 독일은 다시 유럽의 강자로 떠 올랐다. 정권여부를 떠나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이러한 지도자에게서 진정한 지도자상을 보게 된다.
지금 한국은 국가부채와 공공기관부채가 천문학적이어서 이런 식의 방만경영이 이어질 경우 미래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남겨 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가 정보통신기술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진입하고 있어 혁신과 효율성이 더욱 중요해 지고 있는 시대다.
이러한 상황에 부응해 공기업을 민영화해서 효율성을 높여야 할 마당에 1960~80년대 독일에서 시행되었던 노동이사제 보다도 더 강력한, 단지 감독하는 정도가 아니고 직접 경영에 참가하는 경영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하는 경우 한국경제의 부담이 엄청날 것임은 자명하다.
셋째, 혹시 이러한 근로자이사제 도입 구상이 1990년대 독일의 개혁 이후 거의 사문화된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제도를 구현하고자 하는 정치철학에서 나왔다면 더욱 위험한 발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이제는 거의 사문화된 독일 사회민주당 강령의 몇 구절을 보자. "시장경제가 저절로 공정한 소득분배와 재산의 분배를 보장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사회적 노동으로 나오는 수익 가운데 피고용자에게 돌아 올 정당한 몫을 획득하기 위해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에서의 공동결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피고용자는 경제적 노예에서 경제적 시민으로 되어야 한다"(독일 사회민주당 기본강령)
자유시장경제를 부정하고 공정한 분배를 위해 노동자의 투쟁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자유시장경제를 규정하고 있는 한국 헌법 119조 1항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할 소지도 없지 않다. 지금 한국의 임금수준은 경쟁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세계은행은 국민소득을 감안한 시간당 임금이 미국을 100으로 했을 때 한국은 124로 세계 12위로 세계 31위의 싱가포르는 물론 19위의 일본, 22위의 미국보다도 높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단순 명목임금도 대기업의 경우에는 미국 일본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최저임금도 국민소득이나 구매력을 감안하면 한국이 세계 9~10위로 미국 일본보다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공기업은 이런 한국에서 신의 직장으로 꼽히면서 청년들이 가고 싶어하는 직장이다.
오히려 그런 방만경영이 594조 원에 이르는 부채를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공기업 임금수준이 투쟁을 권고할 만큼 공정한 분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특히 5월 10일 서울시 공공기관의 근로자이사제 도입방침을 밝히면서 박시장은 "시민이 주인인 공기업은 민간기업과 달리 이해관계자 모두가 주인이자 소비자인 만큼 근로자이사제를 통해 공기업 경영을 더 투명하게, 대시민 서비스는 더 편리하게 제공할 수 있는 거버넌스, 협치시스템을 실현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시장의 이러한 '시민이 주인' 이라는 발언은 경제적 개념보다는 사회적 개념에 경도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이 주인' 이라는 미명하에 과도하게 남겨진 부채는 결국 우리의 후손들이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넷째, 독일은 감독이사회이기는 하지만 근로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에도 불구하고 노사 간에 쟁의가 적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노동이사가 감독이사회에 참여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독일 국민들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이성적이어서 투쟁보다는 타협을 중시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오죽하면 독일철학을 이성철학이라고 까지 하겠는가. 즉 양 진영이 대등한 입장에서 논쟁을 하더라도 반드시 타협을 이루어 낸다는 점이다. 이는 전 후 독일이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두고 오랜 논쟁을 지속한 끝에 독일 특유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도출해 낸 원동력이다.
이성적이 보다는 감성적이어서 언제나 타협보다는 투쟁과 파행으로 끝나기 십상인 한국과는 다르다.
과거를 돌아 볼 것도 없이 지금의 노사현장과 정치현장을 보면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OECD 1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2004~2013년 중 10년간의 파업성향 분석결과를 보면 한국은 덴마크 스페인 핀란드 이태리 다음으로 다섯 번 째로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이런 국가에서 근로자이사제도가 도입돼 특히 노동조합 대표가 경영이사로 참여하게 되면 임금상승, 노동경직성 증가 등 한국 노동시장 불안 증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12.5% 까지 급증하고 있는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기득권 정규직의 임금 안정, 노동유연성 제고가 한시가 급해서 노동개혁법 통과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 때 한국에서 모든 청년들이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근로자이사제가 도입되어 더욱 기득권이 증대되고 노동경직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 감당할 수도 없는 부채만 남겨진다면 미래 청년세대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서울시가 근로자이사제 도입 배경으로 제일 먼저 적시한 △사회적 갈등비용 발생 예방은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갈등 증폭으로 한국경제를 돌아오기 어려운 추락으로 내몰 우려가 크다.
그 외 도입배경으로 내세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선진국 선행 실시는 주로 유럽국가의 경우를 말하는 바 앞서 근로자경영참여의 선도국인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이 1990년대 이후 형식만 남아 있을 뿐 많은 비판에 직면해 실질적으로 약화되고 있고 오히려 공기업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도입배경으로 내세운 △국내 우호적 환경조성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치 않다. 행여 여소야대의 국회 등장 등 정치지형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경제문제를 정치화하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글 /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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