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公約)인가, 공약(空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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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
총선이 끝나고 여야 각 당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관련 약속 이행에 고심해야 할 판에 경제계의 노사 갈등 조짐이 심상치 않다. 최근 금융권을 위시한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이 추진되면서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양대노총은 성과연봉제가 결국 민간기업에서의 쉬운 해고로 이어질 것이라며 정부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할 경우 9월 총파업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12일 그동안 약 5조원에 달하는 누적적자를 기록하면서 작년 초 사무직 1300여 명을 감원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현대중공업이 희망퇴직을 통한 인력감축과 자산매각 등을 포함한 자구계획안을 주채권은행에 제출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이에 즉각 반발하며 다음주(5월16일)부터 희망퇴직 반대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작년 말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조선업을 '5대 취약 업종'에 포함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난 총선 울산 지원 유세에서 "현대중공업에 구조조정이 없도록 특별 조처를 하겠다"는 상식 이하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울산 동구 새누리당 후보가 무소속 후보에 패한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성 미래차 사업을 광주에 유치해 3조원의 투자와 함께 5년간 2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당(黨) 차원의 공약(公約)이라고 큰소리 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장은 다르다. 비록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광주에서 패배하기는 했지만 새누리당을 누른 제1 야댱의 대표로서 당 차원의 공약을 공약(空約)으로 날려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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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4·13총선에 앞서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를 미래형 자동차 생산의 산실로 만들겠다"며 삼성의 미래차 산업을 광주에 유치해 5년 간 2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광주 서을에 출마한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양향자 후보./사진=연합뉴스 |
선거가 끝난 후 지난 4월 19일 <전남일보>는 "제20대 총선 과정에서 제기된 삼성전자 자동차 전장(電裝) 사업의 광주 유치에 광주시와 지역 정치권, 시민단체 등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초당적 접근을 통해 꼭 이뤄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라는 보도를 했다. 당초 이 공약을 내세우며 "지금 필요한 것은 지역 정치권, 지자체, 시민단체 등이 뭉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낙선 즉시 이 공약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삼성 미래차사업 광주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광주는 기아자동차라는 완성차 기업이 있는 등 자동차 전장사업의 최적 도시"라고 주장하는 광주시 관계자들은 2년 전의 아래 기사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면서 삼성 미래차 관련 공장이 들어설 곳이 광주나 국내 다른 도시가 아닐 수도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국회가 힘으로 밀어붙힐 일도 물론 아니다.
2014년 7월 15일 동아일보 최영해 논설위원(현 국제부장)은 아래와 같은 요지로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간 이유"라는 기사를 썼다.
『(전략)
삼성전자는 2008년 경북 구미의 휴대전화 사업장을 확장하는 방안과, 해외에 공장을 신설하는 방안 두 가지를 놓고 검토한 끝에 베트남 진출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베트남의 인건비는 아주 싸다. 고졸 여직원들의 월 급여(초과근로수당 포함)는 베트남이 353달러로 한국(3715달러)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이 회사는 2012년 베트남에서 1만9665명의 생산직 사원을 뽑았다. 같은 기간 구미공장 채용 인원은 고작 175명이다. 공장 인근 200km 이내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고교 졸업생을 모집하지만 대부분 공장 일에는 손사래를 친다. 너도 나도 대학문을 두드리는 데다 취업 희망자들은 서울 쪽을 원하고 업종도 서비스업을 선호한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니 왜 해외로 나가느냐고 기업들 탓을 하기 어렵다……
(중략)
베트남 정부는 삼성전자에 공장부지 112만4000m2(약 34만 평)를 공짜로 내놨다. 법인세는 4년 동안 한 푼도 안 내고 이후 12년간 5%, 다음 34년 동안 10%를 내면 된다. 한국(22%)과 비교가 안 된다. 수입관세와 부가가치세는 면제, 전기·수도·통신비는 절반 수준이다. 정부가 통제하니 노조가 파업해도 4시간이면 대충 끝난다. 베트남 정부는 2만여 명에게 번듯한 직장을 선사한 한국 대기업에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호찌민에 1조 원을 들여 가전공장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축구장 100개만한 크기다. 비즈니스 환경을 개선할 생각은 않고 대기업의 애국심에만 호소하기에는 세계가 너무 가까워졌다.』
최근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가 일반·연구직 조합원의 '승진 거부권'을 올해 임금협상 요구안에 포함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면 노조원 자격이 없어지기 때문에 승진 대신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과장이 되면 연봉제를 적용받고 인사고과의 부담을 받게 되는 반면 대리로 남아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면 정년이 보장되고 호봉승급이 적용되어 임금을 동결하더라도 정년까지 해마다 임금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이 대기업 공장의 해외 진출과 청소년 실업률 증가의 근본적인 원인이며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딜레마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조가 '승진거부권'을 임금협상안으로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승진을 거부하면서까지 정년까지 자리를 지키겠다지만 회사가 망하면 노조도 없고 정년도 없다. 노사협상에서 절대 넘어서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정부는 산업공동화(産業空洞化)와 청년실업률 증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3년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및 자본재 수입관세 감면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관련 법의 '완전 철수'와 '중소기업인 경우에만'이란 단서조항과 함께 여전히 "불리하고 불안한" 노동시장 여건 때문에 대기업 공장이 복귀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이런 현실에서 여야가 위와 같은 경제 관련 공약(公約)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수많은 공약(公約)들이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건 처음부터 우선 표를 낚고보자는 심산으로 가능성 희박한 선심성 약속을 남발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부도를 예견하면서 당좌수표를 발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을 우롱하고 민주선거의 뿌리를 흔드는 기만행위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이번 총선 결과에서 보듯이 우리 유권자들이 공약(空約)이 될 수 있는 무책임한 공약(空約)들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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