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만 공격하면 혁신이냐" vs "정당 아닌 패거리집단"
김용태 사퇴, 정진석 잠적…"친박 자폭테러로 당 공중분해"
비박계 중진 긴급회동 "원내대표가 회의 무산 의혹 밝혀라"
[미디어펜=한기호 기자]4·13 총선 참패 이후 한달여간 내홍을 겪던 새누리당은 17일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잇따라 열고 비상대책위-혁신위 출범을 위한 안건을 의결, 당 수습의 첫삽을 뜨려 했으나 교착상태에 빠졌다.

비박계 위주의 인선에 집단 반발해온 친박계가 이날 모두 대거 불참하면서 두 회의는 정족수(과반수 이상) 미달로 결렬됐고, 양 계파간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비박계에선 친박계를 "패거리 집단"이라며 비난하고, 혁신위원장으로 내정됐던 김용태 의원이 사퇴하며 친박계에 날을 세웠다. 친박계에선 "청와대만 공격하면 혁신이냐"고 인선안을 극력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분당 위기가 닥쳐왔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 당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 출범을 위한 안건을 의결하기 위해 17일 오후 2시로 예정됐던 새누리당 제4차 전국위원회는 정족수 미달로 열리지 못했다./사진=미디어펜


당초 새누리당은 이날 연속으로 8차 상임전국위-4차 전국위-9차 상임전국위를 연속으로 열고 정진석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겸임과 9명의 비대위원 임명, 혁신위(위원장 김용태) 권한 강화를 위한 당헌 개정안 추인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첫 순서인 8차 상임전국위부터 삐걱거렸다. 오후 1시20분께 열려 안건 심의를 진행했어야 하지만 정원 52명 중 의결 정족수인 과반수(27명) 이상이 불참해 1시간 넘게 '대기 모드'였다. 회의에는 20명 남짓에 불과한 위원들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오후 2시20분쯤부터 의장 대행으로 회의에 참석했던 정두언 의원이 퇴장하며 "정당 역사상 이렇게 말도 안되는 행태를 보인 것은 처음"이라며 불참 인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친박계를 향해 "정당이 아닌 패거리 집단이다. 동네 양아치들도 이런 식으로 안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후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정훈 의원이 잠시 회의장을 나와 "대여섯 분만 더 오시면 되니까 직접 전화를 돌렸는데도 전화를 안받거나, 온다고 했는데도 안 오는 분들이 있다"며 "(회의를) 해산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고 있다"고 내부 상황을 전했다.

그는 "성원이 안되면 혁신위 (관련) 당헌당규 개정을 못하고, 전국위에서 비대위원도 안되고 비대위원장만 (추인)할 수 있는데 지금 정진석 원내대표도 '비대위원장을 안 맡겠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후 정 원내대표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 답변하지 않고 그는 의원회관을 빠져나갔다. 뒤이어 김용태 혁신위원장 내정자가 회의장을 나와 상임전국위 무산 사실을 전했다.

이윽고 오후 2시40분쯤 4차 전국위도 정원 850명 중 과반 이상인 정족수(426명)에 약 70명정도 미달해 결렬됐다.

사회를 맡았던 홍문표 사무총장 권한대행은 "성원이 되지 않아 회의를 이루지 못한 이 참상을, 저희의 현실을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 당원 여러분, 멀리 지역에서 오신 전국위원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고 사죄한다"며 폐회를 선언했다.

홍 권한대행의 발언이 끝나자 마자 좌석에서는 "(당이) 이러니까 (총선에서) 패하지, 정신좀 차리라. 뭐야 이게"라는 불만과 함께 "청와대만 공격하면 혁신이 됩니까?"라고 비박계를 질타하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비대위원 인선이 좌절된 김영우 의원은 "당이 얼마나 더 어려움을 겪어야 정신을 차릴지, 오늘은 정말 부끄러워서 말을 못할 정도"라고 불쾌감을 표한 뒤 "지금으로선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비대위도 그렇고, 정 원내대표가 구상했던 혁신위도 굉장히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의원은 다만 "아마도 오늘 참석했던 분들은 '자포자기' 심정일 텐데, 혁신과 변화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준비를 더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다른 의원들과의 접촉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으로 내정됐던 김용태 의원은 17일 당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 개최가 무산된 직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위원장직 사퇴를 선언했다./사진=미디어펜


오후 3시10분에 이르러 당초 정 원내대표의 입장 표명 후 거취를 밝히기로 했던 김용태 내정자가 국회 기자회견장에 나섰다.

그는 "새누리당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면서 "저같은 사람에게 세번 국회의원이 되는 은혜를 주신 국민과 당원께 죽을 죄를 지었다"며 "혁신위원장을 사퇴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친박계를 겨냥 "국민에게 무릎꿇을지언정 '그들'에게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고 날을 세운 뒤 "이제 국민과 당원께 은혜를 갚고 죄를 씻기 위해,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며 "소멸해버린 정당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 국민의 뜻을 모아서 싸우겠다"고 공언했다.

당 수습에 착수하긴커녕 친박 대 비박으로 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하면서 새누리당은 이제 혁신이 아닌 당의 존속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게다가 잠적한 정 원내대표의 측근이 한 매체와 통화에서 "친박계의 자폭테러로 당이 공중분해됐다"고 질타하는 등, 범친박계로 분류됐던 정 원내대표가 친박계에도 등을 돌려 내홍은 겉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번진 모양새다.

원내대표단은 긴급 회의를 갖고 대안 마련에 나섰지만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한 한편, 이종구 이명수 김학용 김성태 이혜훈 이진복 홍일표 황영철 당선자 등 비박계 중진들은 긴급 회동을 갖고 당선자 총회 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아울러 이날 전국위 무산과 관련 친박계의 조직적 회의 방해 여부를 원내대표가 직접 조사해 소명할 것을 요구했다.

김성태 의원은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긴급 당선자 총회를 열어 향후 당의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며 "회의 무산에 대해 다른 발단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정 원내대표가 소상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참패 책임을 두고 한달여간 신경전을 벌여온 양 계파는 전국위 무산을 계기로 전면전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비박계가 최근 독자 세력화를 시사한 정의화 국회의장 또는 유승민 의원 등 탈당파와 손잡고 여권발(發) 정계개편을 이룰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총선 참패 후 칩거에 들어간 비박계 거두 김무성 전 대표의 행보도 주목 대상이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