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한국신용평가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상선 회사채의 신용등급을 곧바로 ‘D’ 등급으로 내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해명했다.

D급등은 현재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있다는 의미다. 통상 기업의 신용위험평가는 A등급(정상), B등급, C등급(워크아웃 대상), D등급(법정관리 대상)으로 나뉜다.

한신평은 현대상선이 지난달 7일 만기가 도래한 12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하자 즉시 신용등급을 강등한 한국기업평가와는 달리 지난달 12일이 돼서야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을 D로 슬그머니 내렸다. 이에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뒷북’ 평가를 내놓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기업은 신용평가사의 고객이자 돈줄이기 때문이다.

20일 양진수 한신평 평가정책실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어음의 지급불능으로 인한 1차부도 및 최종부도, 당좌거래 정지, 파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부도의 개념으로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어 부도란 지급거절, 지급불능을 넘어 곧 ‘파산’이라는 인식이 깊다”며 “신용평가사가 기업에 D등급을 부여할 경우 투자자들이 자칫 파산으로 인식할 수 있고, 계속 기업으로서 영업활동을 지속하는데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신평은 부도기업이라도 예상 회수율을 고려해 CCC~C등급을 부여하고 있는 만큼 채무불이행이 있다고 곧바로 D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어음부도 등 법률에 규정되어 있으면서 시장에서 관행적으로 정착된 부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D 등급 부여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

한신평이 기업에 D 등급을 부여하는 경우는 ▲원리금의 적기 미상환 ▲회생 및 파산절차의 개시 ▲지급제시된 어음의 미지급이 발생했을 때다. 현대상선은 회사채 미상환이 발생했기 때문에 D 등급을 부여해야 하는 사례는 맞다.

양 연구위원은 “원리금의 적기상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한신평은 즉시 D등급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며 “영업일 기준 3~5일간의 유예기간(Grace Period)를 통해 회사의 회생가능성이나 상환능력 및 의지를 면밀히 분석해 최종적으로 지급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D등급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외환위기 이후 통상적으로 사채 원리금 미지급은 ‘부도’보다는 ‘연체’로 인식하는 금융권의 관행을 존중하는 측면”이라며 “또 기한이익이 상실되더라도 추후 사채권자 집회를 통해 자발적으로 기한이익 상실을 취소하고 만기를 연장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등 원리금 미지급 이후의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2013년 웅진에너는 주채권은행으로부터 부실징후기업 통보를 받았고, 이에 따라 일부 회사채가 사채모집위탁계약서상 기한이익을 상실했다”며 “이후 사채권자 집회를 통해 기한이익 상실이 취소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현대상선은 정부가 제시한 용선료 협상 마감시한을 맞아 법정관리 위기에 처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물리적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달 31일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 재조정안을 통과시키려면 적어도 그 전에는 용선료 협상이 마무리돼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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