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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규 국립안동대 무역학과 교수,한국공공선택학연구소 소장 |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는 인류 문명의 초석을 이루고 있다. 달리 말하면, 공공재는 인류 문명의 토대 또는 “문명 초석재”(礎石財)와도 같다. 인류 문명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경제안정’을 비롯하여 ‘국가안보’(안전보장), ‘과학’, ‘깨끗한 환경’, ‘신뢰’, ‘정직한 정부’, ‘언론의 자유’ 등은 모두 공공재에 해당한다.
이밖에도 더 많은 공공재들이 있다. 이들 공공재들은 인류 문명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충분한 양을 생산·공급하기 어렵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공공재의 혜택 범위가 더욱 글로벌화 될수록 더욱 더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의 발달로 사적재(private goods)를 더 많이 생산·공급할수록(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더 부유해 질수록)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공공재의 종류도 더욱 다양해진다는 점이다. 이에 인류는 새로운 공공재의 충분한 공급이라는 또 다른 난제에 봉착해 있다.
최근 서구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의 그 기저에 공공재 문제가 도사리고 있으며, 공공재 공급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와 관련된 논의의 중심은 극심한 ‘금융 불안정’을 어떻게 피하느냐와 관련되어 있다. 세계적인 금융 불안정은 ‘부(負)의 공공재’(public bads; 공공악재)에 해당되며, 반면에 그러한 금융 불안정을 회피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이나 조치들은 ‘공공재’(public good)에 해당된다.
문제는 시장체제 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공공재를 자발적으로 공급하려는 유인’이나 ‘부(負)의 공공재(공공악재)를 스스로 피하려는 유인’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를 ‘시장실패’(market failure)라 한다.
이러한 용어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과연 ‘공공재는 무엇인가?’. 전문용어로 말하면, 공공재는 ‘배제불가능성’(비배제성)과 ‘비경쟁성’이라는 특징을 가진 재화를 말한다. ‘배제불가능성’(비배제성)이란 “어떤 재화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도록 배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대가 지불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재화를 말한다.
반면에 ‘비경쟁성’은 “어느 한 사람의 즐거움(기쁨)은 다른 사람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혜택의 비경쟁성’). 즉, 재화의 소비로부터 나의 즐거움(기쁨)이 증가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즐거움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두 조건을 충족시키는 ‘국방’이 전형적인 그리고 전통적인 공공재이다. 만약 어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공격으로부터 안전을 유지할 수 있다면 국가방위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국방(안전)으로부터 혜택을 얻는다(혜택으로부터의 비배제성). 또한 어느 한 사람이 혜택을 본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혜택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혜택의 비경쟁성).
이와 비슷하게, 어느 한 나라가 ‘경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그 혜택을 빼앗을 수 없다(혜택으로부터의 비배제성). 또한 어느 한 사람이 경제안정의 혜택을 많이 누린다고 다른 사람의 혜택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혜택의 비경쟁성).
공공재는 경제학자들이 부르는 소위 “시장실패”(market failure)의 한 예에 속한다. 또한 시장실패는 “외부성”(externalities)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즉, 어떤 행위의 ‘결과’(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가 의사결정자들에 의해 고려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경제행위자(소비자든 생산자든)가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외부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공공재의 무임승차 행위나 외부성을 유발하는 행위를 변화시킬 어떤 방법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공공재의 경우 보통 국가에 의해 공급된다. 반면에 외부성의 경우 외부성을 교정하기 위해 조세가 부과되거나 보조금이 지급되며, 또는 재산권의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가해자 또는 피해자 중 누구에게 재산권을 부여해 줄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조세보다는 재산권의 변화를 더 선호한다.그러나 재산권의 변화는 임의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효과적인 공적 행동이나 법적 장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시장경제는 내재적으로 ‘안정적’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시장경제 내에서 ‘안정성’이 자동적으로 공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장경제는 안정성을 자동적으로 공급하지 못한다. ‘경제안정’은 일종의 공공재로서 시장경제 내에서 충분히 공급하기 어렵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경제안정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면 비참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심지어 시장에서 정부개입을 열렬히 반대해 온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조차도 은행의 연쇄 파산을 막기 위하여 중앙은행을 통한 ‘정부개입’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금융안정과 경제안정이 가지는 공공재적 측면은 이보다 더 심오하다고 할 수 있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곧 ‘공공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문명이 더 복잡해질수록 시민들에게 공급되는 공공재의 수도 더 많아진다. 현재 인류는 지금까지 발전시켜 온 그 어떤 문명보다 가장 복잡한 문명, 즉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문명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명에 필요한 새로운 공공재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교육과 건강처럼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 재화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누가 이러한 공공재들을 공급할 것인가? 전통적으로 공공재를 공급해 온 기관은 국가였다. 그러나 과연 국가가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공공재들을 공급할 수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공공재의 역사는 국가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냐하면 공공재는 국가의 설립과 그 역사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역사적으로 농업혁명의 결과로 수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농업혁명의 결과 주민들은 도적(산적)들의 공격에 취약하였다. 올슨(Mancur Olson) 교수는 이들 도적을 “방랑(放浪)하는 도적”(roving bandits; 이동하는 도적)이라고 불렀다. 이때 도적들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해 준 것이 바로 국가였다. 국가는 주민들의 도적들로부터 피난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국가 또한 도적과 다름없었다. 올슨 교수는 국가를 “정주형(定住型) 도적”(stationary bandits;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물러 있는 도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국가는 인구의 커다란 증가를 가져다주었다. 국가는 조세징수의 대가로 방위(보호와 안전)를 제공하였다. 로마 제국이나 중국 제국 등의 대제국들은 안전(방위)을 제공하는 데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를 누리게 되었다.
로마 제국이 붕괴되자 지방 갱들이 안전을 책임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로마 제국 붕괴 후 안전은 지방 갱들에 의해 ‘독점화’되었다. 이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였다. 지방 갱들에 의한 안전의 독점화 과정을 우리는 오늘날 ‘봉건제도’라 부른다.
산업혁명으로 국가의 활동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국가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확대되었다. 시장은 교육받은 인구나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을 자발적으로 제공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은 스스로 지식 재산권을 보호해 주지 못하며, 환경과 공중위생도 자생적으로 보호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공급자’, ‘규제자’, ‘보조금 지급자’, 또는 ‘세금 징수자’로서 시장에 개입하게 되었다.
게다가 민주주의의 등장은 부분적으로 노동자들의 생활 불안정에 대응하여 ‘재분배’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게 되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현대 국가는 그 활동의 범위와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현대 국가는 이전의 그 어떤 국가들보다 더 힘센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추세가 역전될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현대 국가는 현재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과정 속에서 잘 작동할 것인가?
경제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영향도 나날이 글로벌화 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시대에 ‘경제안정’은 ‘글로벌 공공재’(global public good)이다. 핵무기의 시대에 ‘안전’도 또한 글로벌 공공재이다. 전 세계적으로 증가일로에 있는 조직범죄, 위조행위, 해적행위, 오염이나 공해 등에 대한 ‘통제나 규제’도 글로벌 공공재이다. 심지어 교육이나 건강(위생, 보건)의 공급도 글로벌 공공재이다. 이들 공공재들은 속성상 어느 한 곳에서 발생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또 세계화의 덕택으로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경제가 붕괴되지 않는 한 현대 문명이 필요로 하는 공공재의 수는 늘어나게 되며, 또 글로벌화 될 것이다. 이제 많은 공공재들은 한번 공급되기만 하면 그 파급영역이 글로벌화 될 것이다.
국내 공공재의 경우 그 특성상 국가가 공공재를 공급한다. 그러나 글로벌 공공재의 경우 국가는 이러한 공공재들을 독자적으로 공급하지 못할 것이다. 글로벌 공공재의 경우 그 공급을 위하여 각국이 서로 협력해야만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그러한 협력을 확보하는 방법은 국가 지도자의 지도력(leadership)을 통해서였다. 몇몇 지도자들은 무임승차자들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몇몇 글로벌 공공재들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히 공급되었다.
그러나 세계가 글로벌화를 통해 다극화(多極化)된 시대로 이동함에 따라 어느 한 국가가 그러한 지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을 받게 될 것이다. 심지어 냉전시대와 같은 단극화(短極化)된 시대에도 패권국이 특정 공공재를 제공하기를 원하는 경우에만 가능하였다.
경제안정은 특성상 자발적으로 공급되기 어려운 공공재이다. 오늘날 우리는 안전과 안정(예를 들면, 핵안전과 경제안정)을 비롯하여 기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종류의 공공재 공급이 필요한 글로벌 문명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공공재를 공급하기 위하여 인류 문명이 의지해야 할 곳은 국가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인기도 없고, 이미 지나치게 팽창되어 있으며, 또 국가들 간에 서로 반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세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새로운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국가는 지식 혁명 또는 정보기술 혁명의 시대에 글로벌 공공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공급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각국은 협력을 통해 경제 및 금융안정이라는 ‘글로벌 공공재’를 효과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글로벌 문명시대’에 적합한 ‘글로벌 공공재’를 협조적으로 공급해야 할 필요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성규 국립안동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한국공공선택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