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윗자리 지정곡 말 안돼…진영논리 떠나 국민 눈높이 바라봐야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며칠 전 광주 '5.18행사'에서 누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심히 부르고 누구는 입을 다물고 부르지 않았다는 등 언론들이 편가르기에 신바람 난 듯한 모습이다. 국회는 두 말할 것도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으로 나라가 뒤로 행진할 판이다.

언론보도처럼 보훈처장은 행사에 참석도 못하고 쫓겨나왔고 국무총리와 청와대 정무수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노래할 때 입을 다물었다. 야권인사들은 모두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큰 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따라 불렀다.

20대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야당이 요구한 내용이 정치, 경제, 국방, 민생 문제도 아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이었다는 사실이나 언론이 기념행사에서 누가 노래를 부르고 안 불렀는지를 꼬치꼬치 따지는 것을 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상징성을 가늠할 만하다. 노조 시위장에서 빠지지 않는 이 노래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정부나 여야가 이 문제에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우선, 국가보훈처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齊唱)을 불허한 결정과 관련하여 지난 17일 북한이 "남조선 보수집권세력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더욱 커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대남선전용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항쟁 용사들이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운 넋과 정신을 대표하는 노래"라며 "이 노래에 대한 부정은 민주주의를 위해 피흘려 싸운 광주용사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고 나아가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말살하겠다는 것이며 반인민적 악정을 일삼겠다는 것이나 같다"고 전했다.

   
▲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ㆍ18 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 등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행사장 진입을 막으며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의 비방이야 의례 그렇다고 치더라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서울 기념식' 기념사에서 "불의에 저항하는 광주 민주화 정신을 위해 싸워 나가야 할 때"라며 "'임을 위한 행진곡'조차 부를 수 없는 현실에 저항해야 한다. 분노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노래 제창 여부를 두고 하는 얘기치고는 지나치게 거창하고 비장하지 않은가? 나아가 그의 "국민을 따르고, 광주정신을 따르겠다.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목숨 바쳐 지켜낸 '민주, 인권, 평화, 대동' 정신을 지켜가기 위해 더 헌신하고 희생하겠다"는 말은 견토지쟁(犬兎之爭)의 일갈(一喝)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1980년에 백기완 씨가 쓴 시 <묏비나리>의 내용 중 일부를 바탕으로 소설가 황석영이 작사했고, 곡은 1982년 현 광주문화재단 김종률 사무처장이 광주항쟁 때 사망한 윤상원 당시 시민군 대변인과 1978년 12월 연탄가스 중독 사고로 숨진 노동운동가 박기순이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내용의 <넋풀이 굿>이란 음악극의 영혼결혼식 축가로 작곡한 것이다.

이 노래는1982년 '5.18' 제2주년 기념행사에서 처음 불려진 후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등이 공식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대신 이 노래를 부르면서 좌우 갈등과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광주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1980년대부터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라는 형식으로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대신 이 노래를 제창하고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을 올리는 순으로 진행해 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하여 국가행사에서 제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의 입장은 무엇일까? 우선, 이들은 이 노래를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가 프랑스 국민에게 사랑 받는 것과 비유하면서 이 노래가 5·18 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상징하는 노래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5.18'을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된 사건'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매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추모행사에서 유족과 시민들 사이에서 제창되어 오다가, 1997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승격되어 정부 주관으로 첫 기념식을 열었을 때부터 2008년까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기간 중에 공식기념식에서 제창 방식으로 불러왔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시기였던 2011년부터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폐지되고 합창단의 합창에 삽입되는 것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이나 제창을 반대하는 측의 입장은 무엇일까? 우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5·18'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한 것 자체에 대해 불만이나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노래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이유 중에는 작사자인 소설가 황석영이 북한을 불법 방문하여 김일성을 7차례 만나고 1991년에 상영된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시나리오를 써줬다는 사실, 그 후 노무현 정권 시절에 '5.18' 영화 '화려한 휴가'(2007년 상영)가 만들어져 이 곡이 주제곡으로 불려졌다는 사실, 그리고 이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공산혁명가 투의 선동성이 짙다는 지적 등이 있다.

   
▲ 아무리 여소야대의 정국이라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이 과연 '5.18' 기념곡 지정이나 제창 여부로 국회와 온 나라가 아귀다툼할 만큼 한가한가 말이다./사진=연합뉴스

게다가 이 노래는 노랫말의 뜻이나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노조를 위시한 전국의 각종 좌파단체들 시위장의 모습과 확성기를 통해 반복되는 소음을 연상케 한다. 어쩌면 시위장의 투쟁적, 폭력적, 선동적 분위기와 붉은색 머리띠를 두르고 이 노래를 불러대는 시위대들의 모습이 이 노래에 대한 거부감을 높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5.18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제창하는 걸 불허한 국가보훈처의 입장은 정부행사로 진행하는 행사에는 보수단체도 참석하므로 논란의 대상인 이 노래를 전원이 제창으로 따라 부르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참석자들의 자율의사에 따르도록 합창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현재 우리의 정치상황 하에서 이 판단에 대한 시비는 좌우진영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간과(看過)해서는 안 될 사실은 20대 국회 개원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야당의 첫 요구사항이 정치, 경제, 국방, 민생 문제가 아닌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 문제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여소야대의 정국이라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이 과연 '5.18' 기념곡 지정이나 제창 여부로 국회와 온 나라가 아귀다툼할 만큼 한가한가 말이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만일 5.18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권에 협조할 수 없다… 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문제를 넘어 정권 차원의 해괴한 일로서 의아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눈에는 다른 국민은 안 보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는 국민만 보이는지 그야말로 해괴하고 의아한 모습이 아닌가?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는 "대통령이 국민들, 특히 광주시민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한 것이다"라며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박주선 최고위원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반대가 "소통과 협치를 요구하는 총선 민의에도 정면 배치된다"고도 했다. 국민의 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 공식기념곡으로 지정되도록 법안을 개정하자면서 보훈처장의 해임을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운동권 출신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국가보훈처 입장에 대해 "국민통합의 시대 정신을 구현하려는 정치적 정당성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하며 "총선 민의를 겸허히 수용한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정부의 국민통합 의지를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총선에서 졌으니 좌익진영 요구에 무릎 꿇자는 얘기인가? 국회의장 주도로 상정되어 전격 통과된 '상시 청문회법' 표결 결과에서 보듯 새누리당의 분란이 이미 현실로 드러났다.

국회는 역시 민초들의 상식과 상상을 초월하는 집단인 모양이다. 여소야대의 20대 국회 개원 후의 모습이 걱정스레 점쳐진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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