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사람들과 함께 커가며 기쁨과 슬픔과 함께 십대를 보내고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이십대를 맞고 꿈 많은 어른이 되기 바로 직전 '여자'이기에 죽어버렸다. 고통스럽게 그렇기에 우리는 '여자'이기에 분노하고 분노한다."

   
강남역 화장실 묻지마 살인사건 희생자에 대한 추모 물결이 확산되고 있다. 수많은 인파가 강남역 10번 출구 담벼락에 직접 쓴 포스트잇을 붙이는가 하면 SNS를 중심으로도 안타까움과 분노의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 17일 새벽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한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묻지마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범행 동기로 "평소 여자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강남역 화장실 묻지말 살인사건에 대해 한 누리꾼은 "한국에서 여자로 살기 참 힘들다. 자기가 못나서 남한테 받은 무시를 생판 모르는 여자한테 푼다"며 "왜 술 먹고 돌아다녀서 당하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내 자유다. 범죄를 저지르는 게 잘못된 건데 왜 범죄를 저지르려는 자의 눈에 띈 여자 잘못으로 돌리나"라고 적었다.

"아무 여자나 기다리다가 죽인 거니까, 난 아무 여자 중 한 명이니까. 다음은 내가 될지도?"라며 여성을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 이도 있다.

한 SNS 계정에서는 강남역 화장실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고 이 사건으로 다시 한 번 드러난 '여성혐오' 문제를 지적하는 계정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가 등장해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계정은 18일 오전 '강남역 10번 출구 국화꽃 한 송이와 쪽지 한 장. 이제 여성폭력, 살해에 사회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라는 글을 올렸고 이에 수많은 이들이 화답했다.

계정을 만든 누리꾼은 "강남역 화장실 묻지마 살인남이 정말 '여자'에게 무시당했을까? 사람에게 무시당한 건 아니고? 사회에서 무시 당한 건 아니고? 왜 그 화살을 '여자'에게 돌리나" "불과 몇 달 전 대한민국 여성들은 공중 화장실에서 몰카에 찍힐까 봐 얼굴을 가리고 볼일을 보거나 휴지통과 나사, 변기를 살펴봤다. 근데 어제 이후로 대한민국 여성들은 공중 화장실에서 목숨을 잃을까 봐 공포에 떨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 여성들의 현주소이다"라는 등의 글을 올렸다.

'우발적 범행' 이라거나 '용의자가 목사를 꿈꾸던 신학생이었다'는 등의 보도에 대해서는 "화장실에 오래 숨어있었다는데 이건 우발적도 묻지마도 아닌 계획된 살인이다" "이유 없는 여혐에 찌들어 살인한 놈이 신학생이든 뭐든 알게 뭐임. 살인자에게 면죄부라도 줄건가' 등의 격한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묻지마 살인사건 발생 인근 강남역 10분 출구에는 시민들이 직접 적어 붙인 포스트잇이 눈길을 모았다. 

각양각색 포스트잇에는 "예쁜 옷 입어도 돼요. 밤 늦게 돌아다녀도 돼요. 싫으며 싫다고 얘기해도 돼요. 그 무엇도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밤늦게 다니지 말라는 말을 딸들에게 하지 마세요.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아들을 교육하세요." 나는 내일도 '여자'라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이 사회가 너무 두렵습니다." "왜 '가해자가 되어선 안된다'가 아닌 '피해자가 되지 말라'를 가르치시죠?"라는 글들이 붙여졌다.

또 "우리는 여성이기 때문에 목숨이 운에 달렸다. 그게 다이다. 17일 1시, 나는 운이 좋았던 것 뿐이다." "저에게는 특별할 곳도 없는 보통 건물의 공용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두려움이 돼야만 했던 희생자분. 그리고 '우연히' 살아남은 이 사회의 생존자 여성분들에게" 등의 가슴을 울리는 문구들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