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피해자 자처·페미니즘의 변질…위험한 일반화의 오류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남성 혐오녀들의 놀이터가 된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현장

21일 밤, 묻지마 살인이 일어났던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에 대한 추모현장이라기 보다는 남성 혐오녀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이들은 남자들을 몰아넣고 "소추소심"과 "재기해"를 외쳤다. 소추소심은 '작은 고추에 편협한 마음이 깃든다'는 의미로 한국남성에 관한 비하 용어다. "재기해"는 남성들을 향해 '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처럼 죽으라'는 말이다. 피해자를 추모하러 왔다는 사람들이 맞는지 의문이다.

강남역 화장실 묻지마 살인현장과 관련, 추모공간을 보존하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피해자를 향해 남자로 태어나라는 문재인 의원은 이들에 비하면 약과다.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와 시위를 주도하는 여성단체 워마드는 피해자 추모공간을 너도나도 마이크를 들어 "나야말로 여성혐오의 피해자"라며 간증하는 광화문 광장으로 만들어놓았다. 

워마드가 안중근 의사나 세종대왕조차 한국남자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남혐' 여성단체라는 것을 떠나, 한번 생각해 보자. 피해자는 정신이상자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 추모공간에서 여혐-남혐을 조장하는 언변에 '잘한다'며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떼로 몰려있다. 이를 보면 강남역 화장실에서의 묻지마 살인을 부른 정신분열증만 위험한 게 아니다. 피해망상도 마찬가지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고였으나 이를 보편적인 현상으로 만든다. 남성 권력의 사회에서 여자들을 피해자로 일반화하려는 시도다. 공공장소에서의 묻지마 살인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에 관한 건설적인 정치는 실종되고 피해자 코스프레만 가득하다. 자신도 시선 강간과 언어 성폭행을 당한다며 피해고백을 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피해자를 자처하는 페미니즘의 변질된 모습이 나타난다.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고인을 모독하는 그들만의 추모를 보는 듯하다.

   
▲ 21일 밤, 묻지마 살인이 일어났던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에 대한 추모현장이라기 보다는 남성 혐오녀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사진=연합뉴스


피해자 추모는 엄숙하고 절제되어야 한다. 진정 슬퍼해야 할 사람은 강남역 화장실에서 나도 죽을 수 있었다며 울부짖는 일부가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들이다. 피해자 추모를 빌미 삼아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밝히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순수한 추모의 선을 넘었다. 남녀 갈등을 일으키는 남혐녀들, 자신들의 이기심과 정체불명의 공감대를 악용해 남자들은 잠재적 범죄자라며 이때다 싶어 외치는 이들은 스스로에게 침을 뱉는 격이다.

자신은 정의로움과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신여성이라는 관념이 작동하는지 모르겠지만,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이지 남성을 혐오하는 자리가 아니다. 범죄자를 비난해야 마땅하지만 범죄자가 여성혐오라는 가능성으로 우리나라 남성들을 여성혐오에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그들의 행태에 남자들은 없던 분노가 생길 지경이다.

평등한 주체로서 남녀가 함께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과 잠재적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사건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남성들에게 사회적약자로서의 여성의 삶을 전하고 이를 이해시키는 선에서 그쳐야지, 남성을 범죄자로 매도하고 비난하는 행위는 강남역 살인현장, 추모의 공간을 그들만의 놀이터로 만들 뿐이다. 

우리가 진정 맞서야 할 대상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다. 여성혐오와 남성혐오 등으로 왈가왈부하기에는 남녀가 서로 아껴주고 사랑해야 할 시간도 부족하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라.여성을 사랑하고 지켜주는 아버지와 오빠, 남동생과 남자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죽은 자의 공간을 위해 싸운다며 산자들을 기망하는 죽음의 굿판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와 시위를 주도하는 여성단체 워마드는 피해자 추모공간을 너도나도 마이크를 들어 "나야말로 여성혐오의 피해자"라며 간증하는 광화문 광장으로 만들어놓았다./사진=시민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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