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공현진 어구 가자미 낚시로 포식, 친구는 날 바다로 또 떠밀고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나는 낚시다>저자
문향과 스토리가 있는 하응백의 낚시여행(1)- 강원도 공현진 어구 가자미 낚시

1.
1993년 여름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황동규 시인의 전화였다. 스승인 황순원 선생 댁에 세배를 드리러 갈 때면 선생의 장남으로서 늘 황순원 선생의 제자들과 어울리곤 하셔서 여러 번 얼굴을 뵌 적은 있지만, 황 시인이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용건은 곧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이 나올 예정인데, 시집 해설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황동규 같은 대가의 시집에 해설을 쓴다는 것은 당시 갓 등단한 애송이 문학평론가에게는 영광스런 일이었지만, 나는 완곡히 거절했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현대문학 중에서도 소설 비평을 전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고, 학위도 등단도 다 소설 비평으로 했기에 시 비평에는 자신이 없었다. 시 비평은 그 해 여름인가 『시와 시학』이란 잡지에 황동규 시인의 유명한 시 <즐거운 편지>에 대해 그저 2,30매 가량의 원고를 쓴 것이 전부였을 때이기도 했다.
황동규 시인은 집요했다. 몇 번 전화를 걸어, 시 비평, 소설 비평을 가르는 것은 우리나라 밖에 없고,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즐거운 편지> 비평을 보니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써라, 였다. 당시 문학과 지성사 시집에 해설을 쓴다는 것, 더군다나 황동규 시인의 시집에 해설을 쓴다는 것은 문학평론가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굳힐 수 있다는 것도 알았기에, 또 평소에 황동규 시인의 시를 좋아하고 있었기에, 그것은 큰 유혹이었다.

나는 그 즐거운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다. 한 달인가 걸려 해설 원고를 완성하여 원고를 출판사로 보냈고, 그해 11월 황동규 시인의 시집 『미시령 큰바람』이 출간되었다. 한 때 문단에서 주례사 비평이니 하는 비판의 말도 있었지만, 시집이나 소설집 뒤에 붙는 해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해당 작품을 이해하기 쉽게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나의 지론이다. 황동규 시인은 그 해설에 대해 흡족해 하셨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 몇 달에 한 번 씩은 만나 술잔을 기울거나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 여행 멤버가 황동규, 홍신선, 김윤배, 김명인 시인과 평론가인 이숭원 교수와 나 이렇게 여섯이다. 그 중 내 나이가 가장 어려 20년 전부터 막내로 운전도 하고 잔심부름도 한다(오십이 넘어서까지!).
 

그 여행은 대개 이렇게 시작된다. 사당동의 한 술집에서 모여 술잔을 기울이다가 다들 조금취해서 2차로 맥주를 한 잔 더 마시다가, 누군가가 남해 두미도에 동백꽃이 예쁘다는데 하면 , 거의 이구동성으로 그럼 가야지, 하고 날짜를 잡는다(갔더니 두미도에는 동백꽃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꽃 구경, 절 구경을 다니곤 했다. 한 20년 이어졌으니 거의 전국을 다 돌아보았을 것이다. 여행에 목적이 없을 수는 없다. 선운사 동백꽃, 남해 보리암, 정선의 몰운대 등등 전국 명승지의 경치를 구경하는 것, 그것이 목적이다. 가서 그 동네의 맛있는 음식도 먹고 꽃 구경, 절 구경도 하고, 바다와 강과 산 구경도 하고 돌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목적이라 할 수 있을까? 두미도에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행이 실패인가? 삼천포로 나와 남해도를 돌아다녔으니, 즐겁기는 매 한가지였다. 황동규 시인의 표현대로 좋은 친구와 좋은 술과 좋은 음식이 있으면 어떤 여행이든 즐겁지 아니하랴. 그렇다고 그 여행이 산해진미를 찾아가는 호화판 여행도 아니다. 그 지역이 주산지인 제철 음식을 먹고 민박을 하거나 여관에서 잠을 잔다. 시인들의 여행이지만 보통 사람들의 여행과 다를 것이 없다.

한 20여 년 전부터 시인들을 내버려 두고 나 혼자 혹은 다른 동료와 가는 여행이 있다. 바로 낚시 여행이다. 평창강으로 내린천으로, 동해, 남해, 서해, 제주도로 낚시를 다녔다. 여기에는 고정된 멤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인 번역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이경식군, 변호사 유강근군 등이 주된 멤버였다.
 

낚시를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뻥’을 칠 수 있다. 이를테면 미터급 대구를 잡았다, 우럭으로 한 쿨러를 채웠다, 저 횟집 수족관에 잇는 고기보다 더 많이 잡았다 등등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따라 ‘뻥’은 달라진다. 한 번은 세계일보 기자들과 만나(세계일보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도 가끔 나와 함께 낚시를 가는 낚시 동료다), 술잔을 기울이다가 또 ‘뻥’이 나왔다. 조용호 기자까지 합세했으니 ‘뻥’은 더욱 찬란했다. 그 ‘뻥’에 문화부장이 낚였다. 낚시기사를 연재하자는 제의를 한 것이다. 술자리에서 무엇을 약속 못하랴.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한 달이 지나 정식으로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아차 싶었지만 약속은 약속인 법. 그러기로 하고 ‘하응백의 테마낚시’란 제목으로 2주에 한 번, 1년 2개월 연재를 했다. 책 한 권 분량의 원고가 모여 『나는 낚시다』라는 좀 촌티 나는 제목의 책을 냈다.

연재가 한참일 무렵 인터넷에 뜬 낚시 기사를 보고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졸업하고 34년 만에 낚시 기사 때문에 연결된 것이었다. 자기도 낚시를 좋아하니 함께 가자는 것, 바로 그 주 토요일부터 같이 낚시를 갔다. 그 친구가 바로 오라클에서 상무로 일하고 있는 백성목이다. 그 이후 날씨만 허락한다면 거의 매주 그 친구와 낚시를 다녔다. 둘이 낚시 취향이 비슷해 즐겁게 다녔다.
 

세계일보에 연재가 끝나고 낚시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다. 사실 쓴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낚시 중에 사진 찍어야 하고, 날씨가 좋지 않아도 기사 때문에 낚시를 가야하는 사태도 발생한다. 낚시라는 ‘놀이’가 ‘일’로 변환되는 순간 ‘놀이’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즐겁게 하는 그 무엇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도, 또 남들이 내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것도 또한 매혹적인 일이다. 전국에 산재한 낚시점 주인이나 선주 혹은 선장이 나를 알아주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다. 내가 속물이라서 그렇겠지만 낚시계의 뭐라도 된 양 마음속으로는 우쭐거리는 것이다. 또 2년 쉬었더니 손끝이 근질근질 거리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미디어펜의 이의춘 대표가 연재 제의를 했다. 아니 내가 먼저 제의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제목은 ‘하응백의 낚시 여행’. 한 달에 두 번 정도 연재하기로 했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가 아니라 먼저 낚시를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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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월 1일 동해 공현진 앞바다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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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일 해가 밝기도 전인 새벽 4시. 잠실 유람선 선착장 주차장에 검은 차 한 대와 흰 차 한 대가 들어섰다. 검은 차의 주인은 말없이 내려 주섬주섬 짐을 내려 흰 차로 옮겨 실었다. 흰 차의 주인은 시동을 걸고 손살 같이 서울춘천 고속도로 쪽으로 차를 몬다. 흰 차의 주인은 나, 하응백이고 검은 차의 주인은 백성목군이다. 1월 1일부터 해맞이 겸 가지미 낚시를 하러 동해 공현진으로 떠나는 길이다. 공현진은 속초 북쪽 20분 거리에 위치한 아담한 항구다.
 

두 시간 여를 달려, 미시령 고개를 넘지 않고 미시령 터널을 지난다. 미시령터널로 인해 서울에서 속초까지 걸리는 시간이 20여 분은 단축된 듯하다. 통행료 3,300원이 아깝거나 시간이 많거나 강원도 고갯길에서 운전 연습을 더 해보고 싶거나, 미시령에서 보는 기가 막힌 풍광을 보고 싶거나 하면, 터널을 지나지 않고 미시령 고개를 넘어도 된다.

 

   
▲ 공현진 앞바다에서 어구가자미 낚시하는 배들, 이날 10여 척이 떴다.

 터널을 지나 순두부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공현진항으로 차를 몬다. 속초에서 봉포, 청간정을 지난다. 청간정은 관동팔경 중 북한 지역에 있는 삼일포와 총석정을 빼면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의 단아한 현판 글씨를 구경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동해 일출의 명소이기도 해서 오늘 같은 1월 1일은 이미 사람들로 장사진일 것이다. 이어 아야진, 송지호를 지나 고성군 공현진항에 도착한다.
오늘 탈 배는 미리 예약해 둔 비너스호. 20인승인데 일반 어선이나 낚시배보다 상당히 넓다. 동해 가자미 낚시야 항구에서 대개 2,30분 거리에서 이루어지므로 배의 속도보다는 동해바다의 너울 파도에 적응하기 위해 특별히 건조한 것 같다. 실제 낚시를 해보니 다른 배들보다 특별히 안정감이 있어 출렁거림이 덜했다.

 

   
▲ 비너스 낚시

 오늘 잡을 어종은 어구가자미다. 12월부터 시작해 4월 정도까지 공현진항을 기준으로 동해안 북쪽에서만 잡힌다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구가자미는 동해안 현지에서 부르는 말이지만, 사전을 찾아보니 용가자미가 정식 명칭이라고 한다. 사실 가자미라 부르는 생선은 수십 종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도다리라 부르는 생선은 문치가자미가 정식 명칭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강원도 동해안에서 낚시로 잡히는 가자미 종류는 3종 정도이다. 이중 바닥이 노란 테두리가 있는 노랑가자미(참가자미)와 물가자미는 연중 내내 잡힌다. 어구 가자미는 수심 100미터 정도에서 60미터 정도의 모래바닥에서 낚시한다.

   
▲ 가자미 연날리기

 7시가 조금 넘어 배가 출항한다. 어구가자미 낚시는 바늘 10개가 달린 카드 채비를 사용한다. 봉돌은 100호 봉돌. 20여분 배가 나아가고 선장이 낚시를 시작하라고 한다. 파도가 심해 백파가 일어난다. 너울도 있다. 그 속에서 10개의 바늘에 일일이 갯지렁이를 단다. 갯지렁이는 입을 관통시켜 바늘을 감추고 3-4cm 길이로 자른다. 너무 길면 아래만 따먹는 경우가 많기에 잘라주는 것이다. 입을 관통시키지 않으면 미끼가 바늘에서 잘 빠지기 때문에 특히 미끼를 잘 끼우는 것이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첫 포인트는 수심 70m 정도다. 사실 수심이 이 정도 되면 수동 릴로 낚시할 수는 있지만 하루 종일 올리고 내리고 하면 엄청난 힘이 든다. 때문에 요즘 거의 모든 꾼들은 전동 릴을 사용한다. 어구가자미 낚시가 겨울 낚시로 자리 잡은 것도 따지고 보면 4,5년 전부터다. 어구가자미는 예전에도 있었겠지만, 낚시 장비가 발달하고 보편화 되면서 자리 잡은 낚시 장르인 것이다. 전동릴과 합사로 된 낚싯줄이 배 낚시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 동해안 가자미 낚시는 주로 정치망에 배를 묶고, 바늘 두 개를 사용해 참가자미나 물가자미를 잡는 것이 보통이었고, 수심도 40m를 넘지 않는 곳에서 했다.

하지만 어구가자미 낚시는 서해 우럭낚시처럼 배를 흘린다. 포인트도 우럭낚시처럼 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범위가 넓다. 때문에 10여 척의 배들이 이날 낚시에 나섰다. 낚시를 시작하려 하니까 해가 뜬다. 오늘의 해라고 특별히 다를 바 없겠지만, 1월 1일의 일출이다.
해를 보고 있는데, 거치시켜 놓은 낚싯대 초릿대에 입질이 온다. 어구가자미 낚시는 손맛으로 하는 느낌의 낚시가 아니다. 초릿대의 움직임으로 입질을 파악하는 눈맛의 낚시다. 때문에 우럭낚싯대와 같은 경질대보다는 길이가 3m 정도 되는 연질대가 유리하다. 연질 갈치대나 열기대라면 적합하다. 입질이 오면 잠시 기다리다가 줄을 조금 푼다. 또 입질이 오면 줄을 조금 푼다. 바늘 열 개에 몽땅걸이를 위해서다.

하지만 무작정 풀었다가는 옆 사람이나 뒷 사람 채비가 엉킬 수가 있다. 그러니까 다른 낚시꾼의 동향을 잘 살펴가면서 눈치껏 해야 엉킴이 적다. 경험이 없는 꾼들은 자기 낚시 하기에도 정신없기 때문에 남들과 줄 엉킴이 발생했는지 채비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에 오히려 베테랑 꾼들이 잘 조절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2, 3분을 기다리다가 머릿속에서 바늘 10개에 다 가자미가 물렸으리라고 상상하고 전동릴을 감아들인다. 이때 너무 빨리 감으면 가자미는 입이 약하기 때문에 떨어져 나갈 수 있다. 급하더라도 천천히 감아야 다수확을 노릴 수 있다.

   
▲ 한꺼번에 9마리를 걸어 올린 필자

 처음 낚싯대를 올리자마자 9마리가 줄줄이 달려 올라온다. 낚싯대를 들면 가자미가 마치 연처럼 바람에 날린다. 이것을 꾼들은 ‘연날린다’고 표현한다. 이것이 손맛 없는 가자미 낚시의 재미다. 겨울 바다에서 가자미 연을 날리는 것.

이날 철수할 때까지 계속적으로 연을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10바늘 몽땅걸이는 없었다. 네마리, 다섯 마리, 많을 때는 아홉 마리, 이렇데 하다보니 1시가 넘어 철수할 때는 쿨러가 거의 찼다. 1월 1일 첫 출조에서 대박이 난 것이다. 항구로 들어와서 할머니들에게 고기 손질을 맡긴다. 바닥에 쏟아놓으니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족히 250마리는 넘는다. 할머니들의 재빠른 손질에도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작은 것은 뼈 채로 회를 쳐 일회용 도시락에 담고 좀 큰 것은 대가리와 내장만 제거하고 구워먹거나 찜용으로 남겨둔다. 약 400g의 회가 담긴 도시락만 17개가 나온다. 30여 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회다.

   
▲ 항구에 돌아오면 할머니들이 가자미를 구이용 혹은 횟감으로 손질해 준다. 물론 수고비를 받는다. 이날 수고비로 5만원을 지불했다.

 1월 1일 저녁과 그 다음날까지 나를 아는 상당수 분들이 어구가지미회를 서울에서 포식했다. 그들은 나를 바다로 떠민다. 또 가시라고.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