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연구원, 각계 전문가 초청해 공청회 개최
[미디어펜=이원우 기자]누구나 한두 개쯤 가지고 있는 '휴면계좌'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금융권에서 논의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원장 신성환)은 30일 오후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계좌통합관리서비스 도입 관련 공청회'를 개최해 휴면계좌를 정리하는 계좌통합관리서비스 도입의 필요성과 쟁점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 한국금융연구원이 30일 오후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계좌통합관리서비스 도입 관련 공청회'를 개최했다. /미디어펜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개설한 전체 계좌 수는 2억 2970개다. 성인 1인당 평균 5.4개의 계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이들 중 1년 이상 입출금 거래가 없었거나 만기가 경과된 후에도 해지되지 않은 계좌가 절반 수준인 44.6%(1억 200만 개)에 달한다는 점이다. 휴면계좌 속에 예치된 자금은 무려 14조 4000억 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체 예금액 609조 1000억 원의 2.3%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한국의 경우 계좌 '보유'에 대해서는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로선 휴면계좌를 정리할 인센티브가 없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잠들어 있는 자금이 많아져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또 금융사기 등의 범죄에 휴면계좌가 악용될 가능성도 낮지 않은 것으로 금융연구원은 보고 있다.

그러나 은행계좌 해지의 경우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워 휴면계좌를 없애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상당수 은행들이 가입에 비해 해지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어 놓은 데다, 사회 전반적인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은행 업무에 친숙하지 않은 고령층의 경우 계좌정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본인 명의로 개설된 은행 계좌를 한눈에 확인하고 불필요한 계좌를 해지할 수 있는 서비스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러 금융회사의 예‧적금, 대출 등 금융상품의 금리와 수익률 등을 원스톱 비교할 수 있는 '금융상품한눈에', 자동이체 통합관리시스템인 '페이인포'에 이어 '계좌통합관리서비스(어카운트인포)'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연구원은 올 초부터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결제원, 은행권 등과 함께 계좌통합관리서비스 시행 방안을 논의해왔다. 특히 금융결제원은 오는 11월까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테스트를 거친 뒤 12월 2일 계좌통합관리서비스를 선보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온라인에서 계좌통합관리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내년 3월 무렵엔 은행 창구에서도 같은 서비스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공청회는 계좌통합관리서비스 도입을 앞두고 업계‧학계‧법조계‧소비자단체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다는 취지로 개최됐다. 신성환 원장은 개회사에서 "(과도한 숫자의 은행계좌는) 은행에도 유지비용을 부담케 한다"면서 "이는 무엇보다 정리 절차가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계좌통합관리서비스 도입의 필요성 및 쟁점'이라는 주제의 발제자로 나선 금융연구원 이순호 연구위원은 "소비자들이 장기미사용 계좌에 방치된 자금을 회수하면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금융사기 피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은행 계좌 유지 수수료 도입, 예금거래기본약관 개정 등을 통해 불필요한 계좌를 적극적으로 정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결제원 금융정보관리팀 문영석 팀장은 '계좌통합관리시스템 구축방안'이라는 주제를 통해 현재 금융결제원이 진행 중인 서비스 홈페이지 화면을 미리 안내해 눈길을 끌었다. 문 팀장은 "오는 7월부터 3개월간 시스템 구축과 테스트에 돌입하며, 11월 중 시범실시를 거쳐 12월에 '어카운트인포'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이어서 진행된 토론에서는 계좌통합관리시스템 도입에 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경남은행 마케팅기획부 공민철 부부장은 "시중은행들이 계좌통합관리시스템을 마케팅에 활용하게 될 경우 과당경쟁이 우려된다"면서 "도입 초기부터 제도가 정착될 때까지는 기간이나 금액 면에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은 계좌통합관리시스템에 대해 "편의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한눈에 계좌상황을 알 수 있는 편리함이 오히려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면서 이른바 '빅 브라더'의 대두를 우려했다. 핵심적인 개인정보가 한눈에 펼치지는 상황이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였다.

이날 공청회에 참여한 참가자들 대다수가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조금씩 드러내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계좌통합관리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동국대학교 경영대학 강경훈 교수는 이날 제기된 '과당경쟁' 우려에 대해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경쟁이 격화되는 건 언제나 마찬가지"라면서 "어떠한 양상으로 경쟁이 펼쳐지는지가 중요하다"고 정리했다. 

금융위원회 은행과 이윤수 과장은 계좌통합관리시스템에 대해 "마치 봄맞이 청소처럼 국민들이 잊고 계셨던 계좌들을 정리할 기회를 드리는 취지"라고 설명하면서 "초반 수요가 과도하게 몰리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언론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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