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5월을 보낼 순 없다. 지난 달 내내 쟁점이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제창 논란과 법제화 문제가 어정쩡한 봉합상태로 남은 상황에서 사고까지 터졌다. 성역화된 5.18에 이의를 제기해온 논객 지만원 박사가 5.18유족 수십 명으로부터 19일 집단폭행을 당한 것이다. 현대사 갈등이 테러행위로 번진 중차대한 사건인데, 누가 하나 잘잘못을 가리는 이 드문 게 현실이다. 마침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사했던 논란 속의 인물 소설가 황석영이 입을 열었다. 그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짧은 밑천을 드러내는 망발을 했는데, 그 바람에 새롭게 짚어볼 쟁점이 몇 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펜은 3부작 칼럼 '광주5.18의 진실을 찾아서'를 연재한다. 5.18이 한국현대사의 축복이었던가, 악의 꽃인가를 점검하는 작업인데, 1)지식인에 대한 테러는 결코 안 된다, 2)반역 소설가 황석영은 자중하라, 3)5.18의 진실, 지역 자존심 걸고 광주가 규명하라 등의 순서로 싣는다. <편집자>
3부작 칼럼 ‘광주5.18의 진실을 찾아서’-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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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주필 |
TV 화면을 보는 내내 가슴이 벌렁댔다. 지금도 그 끔찍했던 상황의 잔영이 남아 지워지지 않는데, 정말 의아한 건 그 대목이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는 5.18유족들이 저렇게 법원청사를 휘저으며 행패를 부려대도 되는 걸까? 공격의 표적이 된 상대방은 5층 법정을 막 빠져나오던 피고인 신분의 지만원(74) 박사였다. 5층 복도에서 난리를 치던 그들을 피해 1층에 막 내려오자 또 다른 무리가 진 치고 있다가 그를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네가 사람이야? 내가 빨갱이야?"
앙칼진 목소리의 중년여성이 법원을 빠져나가는 지 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엉겁결에 손을 뻗어 뿌리를 치자 그 여성은 헐리우드 액션도 서슴지 않았다. "어? 나 지금 피가 나와!" 소리를 질러댔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지 박사의 등짝을 향해 주먹을 내리치기도 했다. 이게 법과 질서가 살아있는 서울이 맞긴 맞는가? 이 나라에 공권력이 존재하긴 한 건가?
와이셔츠와 넥타이가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지 박사는 법원 경비의 시늉뿐이 보호를 받고 있지만,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지 박사가 허둥지둥 인근 창고에 몸을 피해야 했을만큼 위급한 상황이었으나 몰려든 유족들 항의로 다시 끌려 나와 수모를 당했다.
왜 모두 5.18유족의 폭력에 눈 감나?
기세등등한 유족들은 그를 에워싼 채 머리-어깨 등 지 박사의 신체를 가격하며 위협을 반복했다. 그가 어렵게 택시에 올라탄 뒤에도 폭력난동은 끝날 줄 몰랐다. 택시 앞자리까지 올라 탄 유족 한 명이 뒷자리의 지 박사를 향해 주먹질을 거듭하며 위협을 가하는 모습이 TV 화면에 노출됐다.
그들 무리의 다른 이들은 대로에 댓자로 누워 택시운행을 방해하는 등 막무가내였는데, 이걸 보도하는 SBS뉴스가 심하게 균형을 잃고 있어 눈살이 찌푸러들었다. 지 박사가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는데도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식이다. 정말 가관은 한겨레인데, "지만원 씨, 법원서 시민들에 혼쭐"(19일자 보도)이라고 저들은 보도했다.
무법천지를 언론이 더 부채질하는 상황이 지금이다. 더 나쁜 건 애써 "내 일 아니다"는 식으로 모른 척하는 다른 언론사들인데, 저들은 현대사의 어둠을 파헤치는 지 박사 하나를 옹호하지 못하는 바보들이고, '권력화된 광주5.18'의 존재가 그렇게 두려운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사적(私的)응징을 서슴치 않는 유족들이 저렇게 안하무인이다.
살펴보니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과 2008년에도 각각 한 차례씩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02년에는 지 박사가 동아일보에 낸 의견광고를 5.18단체가 고소고발했다. 김대중 정부 말기 북한 퍼주기와 반공전선 허물기가 자칫 국가전복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그가 내보냈는데, 광주5.18 문제를 잠시 언급했던 게 화근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마다 않고 계엄군 총칼에 맞서 싸운 숭고한 의혈을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부대원들에 의해 저질러진 폭동이라는 망언을 (지 박사가) 서슴지 않았다."
5.18단체들이 지 박사가 사는 경기도 안양의 아파트까지 몰려와 그런 내용을 담은 항의방문 이유서를 뿌리고 승용차를 때려 부쉈다. 서울 충무로의 지 박사 사무실에도 난입했다. 이후 저들은 지 박사를 검찰에 고발했고, 얼마 뒤 그는 수갑에 채워진 채 수사관 세 명에 이끌려 광주검찰로 압송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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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내내 쟁점이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제창 논란과 법제화 문제가 어정쩡한 봉합상태로 남은 상황에서 사고까지 터졌다. 성역화된 5.18에 의의를 제기해온 논객 지만원 박사가 5.18유족 수십 명으로부터 19일 집단폭행을 당한 것이다. 현대사 갈등이 테러행위로 번진 중차대한 사건인데, 누가 하나 잘잘못을 가리는 이 드문 게 현실이다. /사진=연합뉴스 |
5.18연구 물꼬 튼 12년 전 대법 판결
"우익 새끼들은 모조리 죽여 버려야 한당께. 네깟 놈이 무얼 안다고 감히 5.18을 건드려? 이런 싸가지 없는 X", "이 X새끼야, 네깟 놈 가다가 중간에 죽여도 표시도 안 날 거야."
승용차에 함께 올라탄 양 옆의 수사관들은 그런 최악의 폭언과 함께 지 박사의 뺨을 여러 차례 후려쳤다. 그 일로 결국 지 박사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판결 받았으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몇 해 뒤 대반전이 있었다. 대법원이 현대사 연구를 위해 광주 5.18 수사기록을 일반에 공개하라는 판결(2004년)을 내렸던 것이다.
힘을 얻은 지 박사도 단행본 네 권 분량의 방대한 작업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를 펴냈다. 5.18단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용 일부를 문제 삼아 다시 그를 고발해 제2라운드 송사가 펼쳐졌는데, 지루한 재판 끝에 지 박사가 1~3심 모두를 이겼다.
"방대한 연구서 중 극히 일부를 따로 떼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대법원 판결(2012년)이었다. 그건 지 박사의 손을 들어준 명판결이었다. 광주가 독점하던 5.18 논의에 물꼬가 열린 것이다. 보름 전 집단린치 사태란 지 박사가 운영하는 뉴스 사이트에 올린 글과 사진 때문으로 벌어지는 또 한 번의 홍역일 뿐이며, 5.18문제를 공론(公論)에 부칠 수 있다는 데에는 변화가 없다.
5.18은 민주화의 상징이요, 광주는 성지(聖地)라는 신앙고백 외에는 입도 벙끗하지 못했던 관행이 깨진 것이다. 기억하실 것이다. 3년 전 종편 채널에서 5.18에 북한군 개입 논쟁이 펼쳐진 것도 지 박사 때문에 가능했다. 유감스럽게도 광주지역의 반발에 놀란 방심위가 이런 방송에 급제동을 걸었다.
이 문제의 잠재적 파급력에 놀란 정치권도 서둘러 봉합에 나서는 바람에 공적인 논의가 충분치 못했다는 게 유감일 뿐이다. 이런 형편에서 이번에 느닷없이 벌어진 지 박사에 대한 집단린치 같은 쇼킹한 일도 다시 발생한 것이다.
물론 민주화에 한없이 너그러웠던 김영삼 정부가 만들었던 5.18 특별법 등 3개 법령이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광주5.18에 대한 대한민국 인식의 표준이란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내린 대법원 판결(1997년)이다. 36년 전 당시 광주 시위대의 활동이란 전두환의 내란 음모로부터 헌법을 지켜낸 애국행위였다는 게 당시 판결의 요지다.
논의 원천봉쇄 법제화 시도는 전체주의적 폭력
어쨌거나 필자인 나는 그걸 인정한다. 1980년 당시 민주화의 열망이 호남이 가장 높았다. 광주 5.18은 그 결과였고, 그래서 지금껏 현대사의 큰 분수령으로 남아있다. 단 광주5.18의 실체적 진실 규명과 재해석이란 연구 차원에서 별도로 이뤄지는 게 정상이다.
지 박사가 했던 단행본 저술이나 사이트 운영이란 그런 차원인데, 그걸 원천봉쇄하려는 여하한의 시도란 전체주의적 폭력에 다름 아니다. 그건 36년 전 5.18정신과 전혀 무관함은 물론이다. 놀랍게도 최근 광주는 우리 모두의 눈과 귀를 막는 결과를 낳을 '묻지마 제도화-법제화'를 거듭 시도하고 있어 그게 걱정스럽다.
지 박사 식의 논의가 광주 5.18을 폄훼한다면, 그런 움직임 자체를 특별법을 제정해 아예 불법으로 몰고 가자는 움직임인데, 호남은 그걸 위해 국회와 연계활동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기념곡으로 법제화하자는 걸 막은 박승춘 보훈처장에 대해 해임결의안을 가결하자는 야당 움직임도 그 맥락이다.
광주와 야당이 이런 움직임을 계속 고집할 경우 변화하는 시대에 뒤쳐질 뿐이다. 무엇보다 지역민 다수도 이런 상황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걸 외면하는 일부 유가족들의 만용과 지 박사에 대한 집단린치 행위란 정말 용납 안되는 폭력일 뿐이다.
내 경우 지 박사가 펴낸 단행본 상당수를 최근에 꼼꼼히 읽었다. <5.18분석 최종보고서>(2014년), <솔로몬 앞에 선 5.18>(2010년)이 그것이고, 동시에 김대령의 주목할만한 단행본 <역사로서의 5.18>(2013년)과 <임을 위한 행진곡>(2015년)도 훑어봤다. 모두 자랑스러운 인류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을 했던 자료에 근거한 논의라서 문제될 게 전혀 없었고, 광주가 명예훼손 등으로 법적 대응을 하려는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다.
그게 정상이다. 이런 논의를 환영해야 개방적인 민주사회가 된다. 냉정하게 말하자. 광주5.18 문제란 이 나라 민주화 길목이 맞지만, 동시에 한국사회 이념 양극화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때문에 규명해야 할 쟁점을 그냥 남겨둔 채 쉬쉬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북한군 개입설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연구하는 게 책임있는 시민으로서 책무고, 그런 논의를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게 민주화의 선봉에 섰던 광주시민들의 자세다. 광주5.18민주묘지의 영령들도 그걸 원할 것이 라면,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다음 회에는 '5.18의 문제적 인물' 황석영을 도마에 올려놓을 작정이다. 관심 바란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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