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희회장의 차별화경제 강연 2부-세계 경제위기의 진실, 자본주의의 문제인가? (4)
세계 금융·재정위기의 원인
이 장에서는 세계경제 위기를 촉발시켜온 2008년 미국의 주택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금융위기가 서구 민주주의의 평등이념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평등이념이 경제적 평등정책으로 발전되게 되면 발전 친화적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미 주택금융위기의 원인: 민주주의 평등이념 실현을 위한 금융규제완화
2008년 미국 주택금융위기에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를 놓고 금융위기의 원인이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지, 나아가서는 전 세계의 경제운영패러다임에 일대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너무나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논쟁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이번의 금융위기는 그 동안 세계 경제운영의 중심적 패러다임이라고 받아 들여져 온 ‘시장 우위’ 와 ‘작은 정부’로 상징되는 소위 신자유주의 이념 하에서 추진해온 규제완화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규제완화가 금융부문에서 과도하게 추진된 결과 주택금융의 과다 공급과 주택금융에 기초한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실패를 가져옴으로써 작금의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의 금융부문에 대한 규제 강화와 위기에 대처함에 있어서도 정부재정 지출 확대와 저금리하의 적극적인 통화공급 정책을 강조한다. 이 입장은 결국 재정지출의 증대를 통한 정부개입 확대를 주장함으로써 소위 ‘큰 정부’로 상징되는 케인즈적 경제운영 패러다임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미국 주택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통일된 의견이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의 주류 견해는 주택시장의 버블이 그 원인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버불이론’은 일종의 동어반복이론으로 사태의 진행과정을 설명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근본원인을 규명하지는 못한다.
주택시장과 주택금융시장의 버불을 초래한 근본원인, 즉 왜 사람들이 주택가격이 계속 오르고 주택금융은 계속 공급될 것이라고 믿게 되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 이론은 동어반복에 그치고 말게 된다. 물론 버불이론은 금융규제의 완화, FRB(미국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 글로벌 호황, 중국의 과도한 대미무역수지 흑자의 미국 주택금융시장 유입, 월스트리트의 탐욕 등등이 버불을 초래한 원인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마저도 실상은 어떤 더 근본적인 원인의 결과이지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이 화재가 인공발화인지 그럼 방화범이 누구인지, 아니면 자연발화인지를 규명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고 화재를 키운 바람(규제완화, 금리인하 등)이나 화재현장에서 불장난을 하던 자(월스트리트 금융인들), 혹은 화재로 오히려 피해를 본 사람들(개인 주택거래자나 금융기관들)을 화재에 책임이 있다고 책임지라고 하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왜 미국 주택 및 주택금융시장 참여자들이 모두다 한꺼번에 집단최면에 빠지게 되었는가? 진정한 방화범은 누구인가? 필자는 미국 민주주의의 오래된 평등이념인 “모든 국민의 자가주택 보유”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이 모든 버불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본다. 미국의 저소득층을 위한 다양한 주택정책의 목표는 ‘자가주택소유를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이라고 간주하는 이념적인 토대위에서 설정되었으며 대공황 이후 미국의 주택정책의 목표는 줄곧 ‘주택소유’였다.
|
|
|
▲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흔히 작은정부와 금융규제 완화의 신자유주의가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요인은 민주당 공화당을 망라하는 역대정부의 포퓰리즘적 자가주택보유정책과 이로인한 금융규제 완화, 금융감독당국의 건전성감독 소홀 등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식 민주주의와 평등주의 이데올로기가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이것은 좌파들이 비난하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다. 명백한 정부의 실패 사례로 봐야 한다. 월가를 점령한 시위대들이 월가의 탐욕을 비판하고, 1대99%의 양극화를 개혁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물론 시기별로 주거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춘 공공임대주택 공급정책이 강조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주택소유를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할 목적의 정책이 강조되기도 하였지만 주택정책의 기저에는 항상 ‘주택보유’라는 이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주택소유는 정당의 성격을 초월하여 주택정책이 지향할 ‘최고의 목표’로 간주되고 홍보되었다.
이처럼 미국의 주택정책, 특히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정책은 자가주택 보유라는 이념의 실현과정이었다. 이러한 이념적 토대위에서 만들어진 주택금융제도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에 관계없이 가능한 한 저소득계층의 주택보유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주택금융감독에 있어서도 강화보다는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특히 필자의 판단으로는 1993년 자가주택보유확대를 정치적 슬로건으로 집권한 빌 클린턴 행정부가 낙후지역의 발전과 저소득층의 주택보유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소위 지역재투자법 (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1995년부터 개정 강화하면서부터 자가주택 보유가 급속도로 늘고 주택시장의 버불이 쌓이기 시작하였다.(<그림 2> 참조)
주택금융제도, 금리정책, 파생상품제도, 규제정책 등이 이런 정치적 이념에 따라 주택금융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주택금융시장 참가자들의 행동 또한 이에 부화뇌동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방화의 주범은 모든 국민의 자가주택 보유라는 미국 민주주의의 평등이념인 셈이다.
이 이념에 따라 미국의회와 대통령이 법을 만들고 이에 따라 중앙은행, 주택금융공사, 금융기관, 개인들이 움직인 결과가 바로 주택금융위기이다.
개인의 자가 주택 보유여부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신용도에 따라 시장이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러한 시장의 기능을 존중하기 보다는 의회, 정부, 중앙은행 등 금융감독 당국들이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대출확대라는 목적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건전금융 감독을 소홀히 하거나 완화하면서 과도한 주택금융대출이 초래된 것이다.
따라서 이는 정부의 실패 때문이지 시장의 실패라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시장이란 진공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만들어내는 각종 시장거래의 경기규칙(rules of the game)의 집합으로서 국가가 어떠한 법령으로 시장을 규율하느냐에 따라 그 기능이나 역할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정부에 의해 도입된, 모든 국민들에게 자가 주택 보유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각종 잘못된 금융경기 규칙이 가져온 결과로서 정부실패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평등의 이념이 가져온 과도한 온정주의가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인 것이다.
<그림 2> 미국의 자가주택보유비중 추이와 CRA개정 등 주택금융시장 관련 주요 사건. (출처: 좌승 희.황상연 전게논문)
물론 미국경제의 문제는 주택금융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경제정책이 아직은 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해 평등주의적 색체가 약하다하더라도 재분배 복지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수정자본주의의 큰 틀에서는 같은 이념을 공유하고 있어 여전히 표퓰리즘 민주주의에 노출되어 있다. 주택금융위기 역시 이러한 문제가 노정된 결과인 것이다. 미국의 장기 성장추이를 보면 1980년 이후 20여년(레이건의 시장개혁기간과 그 혜택을 본 클린턴정부기간)을 제외하면 지난 반세기동안 성장추세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그림 3> 참조.)
전후 수정자본주의와 케인즈적 국가개입주의 하에 형성된 소위 규제 자본주의와 복지국가 건설로 성장추세 하락이 이어졌으며 이런 전후체제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다. 1980년에 등장한 규제완화와 복지제도 개혁을 선도한 레이건정부와 이러한 기조를 이어받은 클린턴정부까지 20여 년 간 성장추세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나 클린턴 정부후기에서 부시정부에 걸쳐 금융규제완화가 저소득층 주택보조를 위한 수단화되면서 금융버블이 쌓이고 이것이 2008년 주택금융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경제성장의 뚜렷한 추세하락 반전은 200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미국 민주주의의 표퓰리즘이 지속되는 한 지금의 하락추세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자가주택 보유율 추세와 경제성장 추세 간에 역상관 관계가 보인다는 점이다. 자기주택보유율 추이가 아마도 발전역행적 평등주의 이념과 정책의 강도를 반영하는 대리변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좌승희 미디어펜 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그림 3> 미국의 장기 성장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