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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
우리는 토크쇼 신문 잡지의 논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권에게 성장 고용에 적합한 정책, 경제를 해치는 정책이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과거에 한 얘기를 오늘 되풀이하는 등 똑같은 얘기를 반복적으로 입이 달토록 설명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치권은 그런 설명을 번번이 들어주지 않는다. 나쁘니까 버리라고 요구한 정책을 입법화하기 일쑤다. 지지표를 위한 선심성 매표행위, 당리당략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차별과 특혜입법 등 법 같지도 않은 걸 마구 찍어내는 것도 그런 연유다. 국고(國庫)를 차지하려고 달려드는 ‘구유통 정치(pork barrel)’도 꼴불견이다.
주민들이 다수결을 통해 스스로를 다스릴 통치자를 뽑는 민주주의가 그런 추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피를 흘리지 않고 정권을 교체하는 장점’이 있다는 칼 포퍼의 말에 또는 민주주의를 ‘수(數)의 정치’로 정당화하는 법 철학자 한스 켈센의 실증주의 논리에 만족해야 할까?
그렇다고 답하기에는 민주정치가 남긴 잘못이 너무 크다. 첩첩 쌓인 규제, 방만한 재정, 통화 확대 등을 불러들여 시장경제를 왜곡하고 고실업 저성장 경제위기 등 오늘날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병폐를 야기한 게 민주주의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실패’란 말이 그래서 생겨났다.
주목할 것은 실패원인이다. 정치가들이 부도덕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인간은 제도의 틀 내에서 행동하기 마련이기에 정치적 결정과정을 안내하고 조종하는 정치제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게 잘못되었으면 아무리 훌륭한 경제정책이라도 정치가들은 귀담아 듣지 않고 오히려 나뿐 정책을 채택하여 경제를 해친다.
의회제도를 보면 민주주의에 치명적 결함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입법자율 의회구성, 선거, 표결과 관련된 ‘권력구조’는 헌법적으로 깔끔하게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는 입법권의 남용과 오용을 견제하도록 ‘권력을 제한하는 것’인데 애석하게도 그런 제한을 위한 정치제도가 매우 미흡한 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그런 결함의 중심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 전통의 ‘프랑스 계몽주의’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 전통은 ‘왕의 정치’를 ‘민의 정치’로 바꾸기만 하면 자유와 번영이 저절로 보장된다는 순박한 믿음에서 입법권에 대한 모든 견제장치를 제거해 버리는 우(愚)를 범했다.
그런 잘못된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는 통치자 국회를 바꾼다고 해서 정치실패가 치유되는 게 결코 아니다. 부채 규제를 제한 없이 허용하는 정치제도에서는 어떤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그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자정능력이 전혀 없다는 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강조할 것은 정치권에게 적합한 경제정책을 제안하기보다 민주정치 실패를 치유하고 개선할 정치제도를 개발하는데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애덤 스미스 전통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지적하듯, 필요한 건 입법과 조세, 예산 등의 권력을 제한하는 정치제도의 도입이지 분권형 대통령 중임제 등 권력구조의 재편이 아니다.
시장진입의 인허가, 재정및 금융 특혜 차별입법 등을 막아낼 유서 깊은 법치의 도입은 물론이요 예산관련 정책 결정과정을 견제할 적자예산 제한 규칙 등이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정치제도이다.
그런 ‘권력제한’을 목표로 하는 정치제도의 개혁을 통해서 민주정치를 개선할 경우에만 그것이 ‘수의 정치’를 극복하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넘어서 정치적 여론을 형성하는 건전한 무대가 될 수 있다.
그런 정치적 장에서만이 시장경제를 해치는 정책은 도태되고 좋은 정책의 정치적 선택이 보장된다. 그래서 자유와 번영은 민주주의 개선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