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 은행들은 앞으로 위기시 즉각 현금화할 수 있는 외화자산을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국내에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은 16일 제38차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외환건전성 제도 개편방안을 확정했다.

이번 개편방안은 미국의 금리 인상,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등의 대외 충격 발생 시 국내에서 자금이 유출되고 외화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어 이에 사전 대비하려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정부는 우선 현재 모니터링 지표로만 활용 중인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Liquidity Coverage Ratio)을 내년부터 모든 은행에 공식 규제로 도입키로 했다.

외화 LCR은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시스템 위기' 발생에 따라 은행에서 대규모로 자금이 이탈하는 뱅크런 상황이 나오더라도 은행들이 이를 감내할 수 있도록 고유동성 외화자산 비율을 미리 설정해놓는 것이다.

현금과 외화지급준비금, 고신용 채권 등 유동성이 높아 언제든 회수할 수 있는 외화자산을 향후 1개월 간 순현금유출(유출-유입)액으로 나눠 계산한다.

즉 유동성 위기가 발생, 자금이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상황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팔아 실물부문에 안정적으로 외화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일반은행의 경우 내년 60%에서 매년 10%포인트(p)씩 상향조정된 LCR 비율을 적용, 2019년 8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기업은행과 농협, 수협 등 특수은행은 내년 40%에서 매년 20%p씩 높여 2019년 80%를 맞추고, 산업은행은 같은 기간 40%에서 60%로 규제비율을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다만 외화부채 비중이 5% 미만이고 규모가 5억달러 미만인 은행, 수출신용기관(ECA·Export Credit Agency) 역할을 맡고 있는 수출입은행, 해외 본점에서 자국 LCR 규제를 적용받는 외국은행 국내지점 등은 규제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정부는 7일·1개월 만기불일치비율, 여유자금비율, 외화 안전자산보유비율, 3개월 외화 유동성 비율 등 외화 LCR 규제로 대체가능하거나 중복되는 규제, 실효성이 낮은 규제는 없애기로 했다.

개편안은 또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확대해 은행이 대외여건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선물환포지션 규제는 은행의 전월 말 기준 자기자본 대비 선물환 보유(선물외화자산-선물외화부채) 비율을 제한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은행은 30%, 외은지점은 40%인데 이를 오는 7월부터 각각 40%와 200%로 상향 조정해 적용한다.

미국 금리인상 등으로 자본유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높이면 은행들이 선물환거래를 확대하고 외화자산을 늘리게 돼 이런 우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해 외환건전성 부담금 부과 요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외환건전성 부담금은 은행이 외국에서 과도하게 자금을 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잔존만기 1년 이하 외채에 부과하는 부담금이다.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여신전문사 등이 적용받고 있다.

그동안에는 부담금 요율을 올릴 수만 있었지만 최근 외국환거래법을 개정, 일시적으로 요율을 낮출 수 있도록 했다.

부담금 부과요율이 높아지면 금융기관 차입이 줄어들어 급격한 자본유입을 막을 수 있다. 반대로 요율을 낮추면 국내로 들어오는 자금이 늘어나 자본유출에 대비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개편방안은 대외충격에 대한 대응여력을 높여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강화하고 위기 시 실물부문에 안정적 외화공급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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