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서 국정과제로 제시한 창조경제, 아직 명료하지 않고 공감대가 확보되어있지 못한 상태에서 창조경제를 주도하는 정부역할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그동안 산업화는 정부주도로 이루었으며 애국심과 책임감이 가득한 관료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필자는 정부역할이 창조경제시대에서도 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시대변화에 따라 창조경제의 주체는 민간부문이며 정부는 지원 및 환경조성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념해야 한다.

행정가 정신의 부재, 정부 불신(不信)을 키우는 원인

창조경제시대의 시장에서 기업가정신이 한층 강조된다. 이러한 역할이 행정에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행정은커녕 시장에서도 기업가정신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창조경제를 주도하겠다는 행정현상에서 드러난 공무원들의 의식, 행태가 창조경제시대에 요구되는 기대수준과 괴리를 드러낸다. 가령 끊임없는 비리 부패 무능 무책임으로 인해 공직자윤리가 땅에 떨어졌다. 스스로 영혼 없는 관료라 자괴한다. 심지어 불황도 피해간 고위공직자의 재테크, 조직이관 문제로 각 기관마다 아웅다웅하는 모습, 검경의 수사권 다툼, 온통 나라 전체가 비리 투성이 등 부정적 편린들이 공직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공직자정신의 부재로 인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불만이 커져만 간다.

무릇 스포츠경기에 스포츠맨십이 필요하고, 공예나 기술이 요구되는 현장에는 장인정신이 요구된다.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에게는 작가주의와 실험정신이 깃들어야 하듯 시장과 기업에는 기업가정신이 충만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행정에는 행정가정신이 요구된다. 기업가정신과 구별되는 행정가정신이 공직자에게 절실하다. 이를테면 창조성, 전문지식과 능력 그리고 책임성, 헌신과 봉사, 윤리의식 등으로 무장된 행정가정신의 바탕에서 정부기능과 역할의 새로운 정립이 요구된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한국경제는 가히 창조적이다. 산업화를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전쟁의 폐허 위에 아무것도 없던 가난한 시절, 당시 6·25전쟁을 총지휘했던 미국 맥아더 장군은 전쟁 직후 “한국경제는 100년쯤 지나야 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니, 당시의 암담한 상황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와중에 1962년 한국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87달러로서 세계 최대 빈곤국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산업화 과정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한강의 기적’을 달성했다. 세계은행이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명명하는 한강의 기적은 1960~7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을 나타내는 상징어다. 2012년 기준 한국의 GDP는 1조 1,300억 달러로 반세기 만에 500배가 넘는 경제성장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은 자원의 현실적 제약을 무릅쓰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기업가정신에서 비롯된다. 물론 공무원의 기여도 컸다.

경제학자 케인스가 설파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경제가 인간의 합리적, 이성적 판단과 경제적 동기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 판단 및 본능과 같은 비경제적 본성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기업 뿐 아니라 행정에도 필요한 ‘기업가 정신’

일각에서는 정부에게도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행정에 기업가정신이 필요한가? 적절한가? 행정에서 사용되는 관리기법은 민간부문에서 사용되는 것과는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행정관리는 정치적 맥락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일반관리 이상의 개념을 내포한다. 권력이 기업의 경영행위를 간섭하고 기업가정신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피터 드러커는 새로운 정책을 수립할 때 “그것이 사회의 혁신능력, 유연성을 촉진하는가? 또는 기업가정신을 억제하지 않는가?”를 살피라고 역설했다. 이는 창조경제에서 정부가 나아가야할 역할에 대해 방향성을 시사한다.

오늘날 많은 것이 바뀌고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오랜 기간 유지되었던 역사적 관계와 통념이 번복되거나 깨지는 흥미로운 시대다. 이러한 현실은 행정이 풀어야 할 과제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잘 보여준다. 기업가정신을 고양하는 정부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고 성공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10년은 물론 그 후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리더십이 중요하디. 그래서 정부모습과 형태도 달라지고 있으며 그럴듯한 레토릭도 넘쳐난다. 하지만 진정 국민에게 영감을 줄 비전이나 설계도는 보이질 않는다. 정부의 형질인 관료주의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젠 관료사회가 변해야 한다. 관료들이 소신과 소명감, 천직의식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기업가정신을 고양하고 민간 활력을 살리는 철학이 필요하다. 행정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자신이 견지하는 가치와 철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얄팍한 인기가 아닌 듬직한 인격을 드러내야 한다. 행정가의 규범적 역할, 특히 전문 직업주의(professionalism)의 의미에 대한 재인식도 필요하다. 행정에서 필요한 전문 직업주의는 전문가적 자질을 입증할 경험, 훈련, 자격증 등만이 아니라 윤리와 규범에 있다. 공공선의 수탁자로서 그리고 대리인의 관점에서 가능한 한 포괄적인 의미의 공익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되 헌법적 질서를 유지하는 임무의 토대에서 행정가정신의 함양을 위한 각고의 실천이 요구된다.

첫째, 정부에 경쟁원리를 도입함으로써 행정효율화와 고객중심의 행정을 구현해야 한다. 정부기능 재정립을 통해 관료제에 기반을 둔 일률적 조직형태보다는 당해 기능 및 업무의 특성에 따라 그 수행에 가장 적합한 조직형태를 모색해야 한다. 정부 3.0의 가치 실현을 위해 공직자들은 과거 자기 부서의 이익에만 집착해왔던 소관주의 원리가 아니라 문제해결을 우선시하는 이타적 목적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둘째, 공공적 창조성을 발굴, 주입하여 민간 창의성을 보호, 장려하기 위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셋째, 상급자가 지시하지 않은 업무를 하급자가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을 경우, 그 성과에 대한 물질적 보상과 인사 상 근무평정이나 승진에 반영해야 한다. 넷째, 행정통제나 감사제도의 경직성을 개선하여 공무원으로 하여금 유연한 사고에 입각하여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자발적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스스로 개발하여 대민행정서비스 제고, 업무개선, 새로운 사업 발굴 등의 사업/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다섯째, 창조시대에 걸맞게 공직사회에서도 자유롭고 창조적인 발상과 함께 관행과 관습,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파탈(擺脫)의 행보가 요구된다. 이러한 노력을 뒷받침할 행정가 정신에 대한 탐구와 실천이 필요하다.

행정 조직도 창의성이 깃든 조직으로 변모해야

행정은 집단적 협력활동이며 협창(협력적 창조성) 또한 요구된다. 잘난 개인기 위주의 독창(獨創)을 넘어 전체 속에서 부분을 보고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관료들의 합창(合創)이 중요하다. 자기 목소리만 내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유익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한층 요구된다. 행정조직도 안전한 철밥통이라는 인식을 깨고 핫하거나 쿨해야 한다. 중요한 결정들이 고위층에서 결정되고 하위 업무와 관련하여 사소한 것까지 관리되는 조직문화에서는 자율성이나 창조성 발휘가 어렵다. 형식과 규율에 얽매인 조직에서는 혁신이 살아 숨 쉴 수 없다.

빡빡한 업무일정이나 단조로운 조직생활 속에서 꿈과 열정이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공직만큼이나 사회를 변화시키면서 미래비전이나 국가사회발전이나 성장 동력이 되는 분야는 드물다. 고위층부터 위기의식과 긴장마인드로 끊임없는 혁신과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혁신, 창의성, 미래성장 동력 확보 등을 자양분 삼는 기업가정신의 고양을 위해 행정에도 끊임없는 헌신과 공헌, 책임의식, 열정과 패기로 충만한 행정가정신이 필요하다. 그래야 정부조직도 영혼이 깃든 조직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행정가는 가치중립적 기능인(technician)에서 벗어나 공익을 철저히 수호하는 수탁자(trustee)로서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그 동안 실증주의와 행태주의에 몰입한 나머지 행정윤리와 규범을 도외시한 행정학도 자성하고 변해야 한다. Daniel Bell은“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변하는데,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라고 설파했다. 행정환경도 창조패러다임으로 급변하고 있다. 창조경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백년하청 정치와 함께 관료주의 행정은 반드시 종식되어야 한다. /한세억 동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 글은 한국경제연구원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