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조 헐어 근로자·서민 살리자?…기업투자 80% 해체하자는 궤변
   
▲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기업바로알기 : 사내유보금을 헐자고?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가계로 돌리고 투자를 독려해 내수를 부양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 이른바 ‘사내유보금 과세제도’(‘기업소득 환류세제’)이다. 기업이 한 해 이익의 80% 이상을 투자·배당·임금인상 등에 사용하지 않으면 미달 금액의 10%를 법인세로 추가 징수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15년부터 4년 간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2016년 현재 이 제도의 실효성을 문제 삼아 정부와 국회에서 대대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한편, 최근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라는 단체는 ‘재벌사내유보금 환수로 최저임금 1만 원 실현하자’고 주장했다. 또 창사 이래 처음으로 ‘비상경영설명회’를 열었던 현대중공업에서는 사원들로부터 ‘사내유보금을 풀어 종업원 고용보장·임금인상·복리후생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렇듯 현재 약 750조 원 규모로 알려진 시내유보금을 강제로라도 풀어서 우리 경제를 살리고 근로자와 서민을 살리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사내유보금이 일종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고도 있다. 무엇보다도 “서민이 배고플 동안 750조가 넘는 사내유보금을 곳간에 쌓아”두었다는 식의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데, 사내유보금이 정말 곳간에 쌓아둔 돈인가? 그래서 풀라고 하면 곳간 문을 열어 풀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의 일단은 현대중공업 비상경영설명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 재무담당 임원은 “우리 회사 사내유보금은 12조4449억 원이지만, 이 가운데 현금은 10% 수준인 1조3323억 원 밖에 안된다....정상적인 회사 운영을 위해 매월 2조 원을 넘게 사용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돈은 곳간에 쌓여있지 않고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 투자 확대 명분으로 사내유보금을 축소하라고 강제할 경우 기업 현금 보유 및 설비투자가 동시에 축소될 수 있다. 기업 자산을 강제로 헐어서 근로자를 살리자는 궤변이다./사진=연합뉴스


사내유보금이란 기업 활동의 결과 발생한 당기이익금 중에서 세금, 배당금, 임원 상여금 등으로 사외(社外)로 유출된 금액을 제외하고 회사에 축적된 나머지 금액을 말한다. 문제는 우선 사내유보금이란 회계상의 개념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현금’으로 ‘곳간’에 쌓아두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데서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사내유보금이란 곳간에 쌓여 있는 돈이 아니라 상당부분이 이미 투자 등 경영활동에 사용되고 있는 것인데, 이를 곳간에 쌓아두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현대중공업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사내유보금의 겨우 약 10%만이 현금이다.

다른 기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8년~2012년까지의 사내유보금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내유보금 중 현금성 자산의 비율은 15~18% 수준이다. 그리고 이 현금성 자산도 -현대중공업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주로 회사의 원활한 현금 흐름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자금이다. 그리고 나머지 사내유보금의 약 80%는 이미 투자되어 있는 것이다.

사내유보금을 헐어서 투자에 나서라고 하는 것도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투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사내유보금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사내유보금을 설비투자에 사용할 경우 자산항목이 변할 뿐, 사내유보금액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다. 따라서 사내유보금의 축소와 투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일부에서는 사내유보의 증가가 기업에 축적되어 투자 및 고용에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사내유보금의 상당부분은 이미 투자 및 고용에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투자 확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내유보금을 축소하라고 강제할 경우 기업의 현금 보유 및 설비투자가 동시에 축소될 수도 있다. 오히려 사내유보를 해야 투자도 가능해진다. 사내유보금 없이 대규모 투자를 하게 위해서는 외부의 자금을 조달해야만 한다.

배당을 높여 내수를 진작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이것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오히려 배당의 상당부분이 대주주와 외국인 투자자, 기관투자자에게 지급되어 내수로 연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배당락에 의한 주가하락으로 가계의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배당소득과세로 오히려 내수진작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사내유보금의 사용내역을 정부가 강제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도 제기된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배당으로 실현되지 않은 주주의 몫이고 주주의 재산이다.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도 당연히 소유자인 주주의 권리이다. 이 주주의 몫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사적 소유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며 자본주의 및 주식회사 제도의 취지에 위배되는 것이다.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 사내유보금이란 기업 활동의 결과 발생한 당기이익금 중에서 세금, 배당금, 임원 상여금 등으로 사외(社外)로 유출된 금액을 제외하고 회사에 축적된 나머지 금액을 말한다. 사내유보금이란 회계상의 개념일 뿐이다./사진=미디어펜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 <권박사의 기업 바로 알기> 코너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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