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필체의 자전적 이야기…제15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
   
▲ 이원우 기자
[미디어펜=이원우 기자]마타요시 나오키(又吉直樹)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2010년 '킹 오브 콩트'라는 프로그램이 계기였다. 

TBS 방송국과 일본 최대의 개그 기획사 요시모토흥업이 매년 주관하는 이 특집방송은 현역 개그맨들이 제한시간 4분 내에 두 편의 콩트를 생방송으로 펼쳐 그 자리에서 평가를 받고, 합산점수가 높은 팀이 우승하는 경쟁 프로그램이다. 심사는 누구보다 개그에 높은 기준을 갖고 있는 동료 개그맨들이 한다.

한국에는 개그맨들이 팀을 이뤄 활동하는 경우가 '옹달샘' 정도밖에 없지만 일본에선 그 방식이 보편적이다. 마타요시 나오키(又吉直樹)는 동료 아야베 유지(綾部祐二)와 함께 피스(ピース)라는 팀으로 '킹 오브 콩트'에 출전했다. 

이들은 2010년 당시에도 이미 인기 콤비였다. 다만 그 이유는 주로 수려한 외모의 아야베가 날리는 깔끔한 독설(전문용어로 '츳코미') 덕택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아야베는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고, 미남 개그맨 랭킹 순위를 조사하면 항상 상위권에 든다.

결과부터 말하면 2010년 '킹 오브 콩트'에서 피스는 2위를 했다. 하지만 합산 점수가 그랬을 뿐 피스가 보여준 두 번째 콩트는 1000점 만점에 무려 942점을 받으며 그날 최고 기록을 세웠다. '작품' 단위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팀은 피스였다는 얘기다. 

좀 쑥스러운 얘기지만 이들의 두 번째 콩트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봤고, 그러다 보니 나중엔 눈물이 핑 도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폭력과 선정성이 난무하는 일본 개그계에서 이렇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콩트가 가능하다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 '불꽃' 표지


묘한 그 깊이와 울림이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싶었는데, 어떻게 보면 너무 교과서적이게도 마타요시 나오키가 '책 중독자'라는 모양이었다. 학창시절엔 축구를 잘 해서 오사카 대표로까지 활동했던 그가 '할 일이 없어' 읽기 시작한 책이 물경 1000권에 가깝다는 얘기를 듣고 '과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기어이 첫 장편소설 '불꽃[火花]'을 펴내 작년에는 제153회 아쿠타가와상을 거머쥐는 대파란을 일으켰다. 

드라마틱한 사건에는 음모론이 필연처럼 따라붙는다. 마타요시의 수상에 대해서도 흠집을 내려는 듯한 삐딱한 시선이 있다. 요컨대 문학이 점점 설 곳을 잃고 있으니 인기 개그맨의 힘을 빌려 아쿠타가와상이 불황을 타개하려 했다는 분석이었다. 실제로 '마타요시 효과'로 일본에서 '불꽃'은 250만 부 넘게 팔려나갔다. 수상작들이 다소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 아쿠타가와 역대 최고 판매량이다.

드디어 한국에도 번역본이 들어와 책을 읽어본 결과, 또 한 번 허를 찔린 느낌이 들었다. 마타요시 나오키는 자신의 첫 장편소설에서도 예의 '따뜻함'을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 잘 쓰는 일본 개그맨들의 책은 이미 한국에도 여러 권 들어와 있다. 비트 다케시의 책들은 '독설'의 정수를 보여줬고, 게키단 히토리의 소설 '소리 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는 치밀한 재기발랄함을 마음껏 과시했다. 그 다음을 잇는 마타요시 나오키는 꼭 자신의 콩트 같은 따뜻한 소설 한 편을 완성해 소박한 불꽃놀이처럼 툭 하고 던져놓았다. 세상엔 이런 인생도 있다는 듯이.

일본 개그 특유의 '강력한' 뭔가를 예상했던 사람이라면 밋밋하다는 평가를 내놓을 수도 있겠다. 소설 '불꽃'은 마타요시를 닮은 주인공 '도쿠나가'와 그의 젊은 멘토 '가미야'의 관계를 그저 산책하듯 따라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도쿠나가가 펼치는 '본심과 반대로 말하기 개그'에는 '킹 오브 콩트'에서 피스가 보여준 것과 같은 뭉클함이 있었다. '불꽃'은 미국 최대의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는데, 이 장면을 어떻게 구현했을지 정말 기대가 된다.

피스의 멋진 점은 멤버 중 한 명이 '작가 선생님'이 되신 이후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개그를 펼친다는 점이다. 얼마 전엔 최고 인기 아이돌 아라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시 한 번 온갖 바보취급을 받으며 웃음을 선사했다. 지금까지 늘 마타요시를 구박해왔던 아야베가 한순간에 을(乙)이 되어 '선생님'께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는 건 또 다른 재미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이라는 거대 사건도 이들에게는 그저 '개그 소재'의 하나일 뿐인 것이다. 그렇게 오로지 웃음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꽃같은 삶의 이야기가 일본과 한국을 거쳐 세계로 터져 나가고 있다. 나 자신의 도화선(導火線)은 어디에 있는지를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느긋한 박력이 존재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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