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ENS 직원이 연루된 3,000억원대 대출사기 과정에서 피해자인 은행은 KT ENS의 기업 공시를 확인하지 않았으며 KT ENS도 직원이 사기에 이용한 인감이 진짜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써 이번 사건은 KT ENS와 은행 모두 허술한 관리로 피해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면치 어렵게 됐다.

그러나 양측은 모두 현재 '네탓 공방'을 하고 있어 사건은 결국 법정에서 가려질 확률이 높아졌다.

◇'공시만 살펴봤어도'...은행들, 허술한 관리로 대출사기 자초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KT ENS는 지난해 11월 14일 분기보고서를 공시하면서 9월말까지의 매입채무 및 기타채무가 702억5,32만원이라고 밝혔다.

KT ENS의 매입채무는 납품한 협력업체의 매출채권으로 협력업체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담보로 활용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공시를 살펴보면 KT ENS의 휴대폰 판매 관련 매출은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400억원 지난해에는 전무했다. 공시만 살펴봐도 대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농협·국민은행은 위조된 매출채권을 근거로 KT ENS가 공시한 채무의 6배가 넘는 4,400억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이 3,4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농협과 국민은행이 각각 500억원씩을 대출해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KT ENS 직원 김모씨와 공모한 N사가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무려 3,300억원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N사는 매출액이 채 100억원도 되지 않는 작은 회사로 공시 의무조차 없다.

N사가 은행 3곳으로부터 무려 3,300억원을 빌릴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개의 SPC를 활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N사는 몇몇 업체와 함께 여러개의 SPC(특수목적법인)를 설립, 동일차주 여신 한도를 피해갔다. 또 대출 만기가 되면 다른 SPC를 통해 대출을 받아 돌려막기를 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N사가 만든 SPC는 9개인 것으로 드러났지만 수사 상황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에 대한 맹신으로 은행 내부의 사전 심사와 사후 모니터링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며 "공시만 살펴봐도 대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진짜 인감 사용'...KT ENS 관리 허점 드러나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사기 대출에 사용된 인감은 등기소에서 발급된 진짜인 것으로 확인돼 KT ENS의 부실 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KT ENS 직원 김씨는 직접 법인 도장을 관리하는 위치가 아니었음에도 관리자 몰래 인감을 가지고 나와 도장을 찍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업체에서 인감증명을 떼 오면 고유번호가 있고 직인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며 "우리는 고유번호 등을 대출이 이뤄질 때마다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업무를 정확하게 했다"며 "법인 인감은 그 회사의 지문같은 것인데 한 사람이 그렇게 인감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인감 사용은 철처히 기록하는게 일반적인데 KT ENS가 이를 허술하게 관리한 것"이라며 "인감증명서를 일개 직원이 함부로 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도 문제"라고 말했다.

◇은행-KT ENS 서로 책임 미뤄...법정 공방 불가피

하지만 인감이 진짜라고 해도 매출채권 자체가 가짜이기 때문에 KT ENS가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크지는 않을 전망이다. KT ENS도 "인감을 찍은 매출채권 자체가 없다"며 선긋기에 나서고 있다.

KT ENS는 "대출약정, 지급보증을 한 사실, 본건 대출 관련 사용인감을 승인한 사실 등이 없다"며 "특히 이번 금융대출사기 과정에서 이용된 종이 세금계산서는 2011년 이후 법인간 거래에서 전혀 사용한 사실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KT ENS는 또 "금융대출 사기 사건과 관련해 KT ENS의 계좌가 사용된 일이 없다"면서 "경찰은 물론 금융감독원 등 관련 수사기관과의 적극적인 협력과 정보공유를 통해 진상이 명백히 밝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한 경찰과 금감원은 은행 직원의 공모여부와 여신 심사의 적정성 등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한편, 은행들은 KT ENS가 지급을 거부할 경우 법적 소송에 나설 태세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아직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 않지만 KT ENS 등과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KT ENS가 지급을 거부할 경우 소송으로 이어져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뱅가즈법률사무소 박혁묵 변호사는 "사기에 사용된 KT ENS의 인감이 진짜라면 책임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소송이 벌어진다면 인감을 잘못 관리한 것과 관련해 일부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인 은행들 역시 여신 심사를 잘못한 책임이 있다"며 "KT ENS의 인감관리 소홀과 은행의 여신 심사 부실 정도에 따라 책임의 비율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펜=장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