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국무회의선 누리과정 예산 편성주체 놓고 공방
정진엽 "현금지원, 도덕적 해이 우려" 이기권 "유스개런티와 달라"
'사업 강행' 서울시, 중순쯤 수당지급…복지부 직권취소 명령예정
[미디어펜=한기호 기자]박원순 서울시장이 2일 중앙정부와의 지속된 갈등에도 불구하고 시에서 강행 중인 청년활동지원사업(이하 청년수당)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국무위원들과 설전을 벌였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러나 "청년수당 집행을 강행하면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박 시장은 이날 오전 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참석해 청년수당을 놓고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약 10분간 설전을 벌였다.

서울시장은 국무위원이 아니지만 관례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게 돼 있다. 박 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것은 6개월 만이다.

그는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편성하라는 일부 교육감의 입장을 대변, 박 대통령으로부터 '지난해 시도교육청이 예산을 편성하는 게 맞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 번복하느냐'는 지적을 받는 등 이견을 빚은 후로 발길을 끊은 바 있다.

박 시장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들의 사회진출에 어려움이 큰 상황"이라며 "20대 청년 144만명 중 장기 미취업, 불안정 고용 등 '사회 밖' 청년이 50만명에 이르는 상황"이라며 "청년수당을 통해 위기의 청년들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고 사회진입을 촉진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청년수당이 헌법상 보장된 지방자치단체 사무라면서 "지자체의 복리에 관한 사무는 자치권으로 보장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 3월7일 시에서 사회보장기본법에 근거해 복지부에 협의를 요청했던 것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박 시장은 또 "청년수당은 기존의 중앙정부 정책에서 포괄하지 못했던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고자 노력한 시범 사업"이라면서 "수십 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던 정형화된 프로그램 속에 청년들을 가두어선 청년의 실질적인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정부가 시행 중인 청년정책을 겨냥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취업 연계 기능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답했고, 박 시장은 "청년들이 하고싶은 일을 하도록 하겠다는 게 서울시 정책"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청년수당에 적극 반대했다.

정 장관은 "직접적인 현금 지원이 구직 활동이 아닌 개인적 활동에 사용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우려했으며, 이 장관도 "청년활동지원사업이 '유스개런티'(EU 청년보장제)를 참고했다고 하는데, 유스개런티는 그런 내용의 사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유스 개런티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12년 12월22일 내놓은 종합 계획으로, 25세 이하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실직할 경우 4개월 이내에 교육·노동·직업훈련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받도록 한 제도다. 이는 청년수당이 갖는 '현금지원'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박 시장은 "두 분 장관의 말씀이 참으로 실망스럽다"며 "서울시의 청년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교육훈련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고용부 장관 말씀대로 안정된 일자리를 보증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그래서 사다리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청년들과 2년간 토론하며 함께 만든 정책이고 시범사업"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정책을 지켜보고 좋으면 채택하면 된다"면서 "복지부와 협의를 해 실무적으로 합의했던 것 아니냐. 지금 정부가 못하게 하면 결국 사법부로 간다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청년수당은 서울에 1년 이상 거주(주민등록 기준)한 만 19∼29세로 주당 근무시간 30시간 미만인 청년 3000명을 선정해 최장 6개월간 월 50만원 총 300만원의 활동비를 현금으로 주는 제도다. 

90억원의 전체 예산이 소요되며, 시에서 선정한 위탁업체에서 10억원의 위탁사업비를 받아 사업을 맡는다. 위탁업체는 박 시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사가 설립을 주도, 대표를 역임하고 올해 3월까지 이사를 맡아 새누리당 측에서 '박 시장 측근파'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지난 6월 복지부의 '부(不)동의' 최종결정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4일 대상자 모집을 시작했으며 이달 중순부터 청년수당을 지급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중앙정부 복지사업과의 중복 등을 이유로 불법으로 간주하고 직권취소를 명령할 예정이다.

시는 또 청년수당 대상자를 이번 주 중 발표할 예정이나, 복지부는 발표 후 즉각 시정명령을 내릴 것으로 보여 양측 간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하는 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 시장은 "중앙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청년을 보고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거듭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타협 불가' 입장으로 응수했다. 

국무회의가 끝난 뒤 보건복지부는 '청년수당에 대한 정부 입장'을 내 "청년들에 대한 현금 지원은 실업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도 아니고 도덕적 해이 같은 부작용만 일으킬 것"이라며 "내용이나 절차에서 문제가 큰 만큼 서울시는 청년수당 사업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또한 "서울시가 청년수당 집행을 강행한다면 법령상 절차대로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며 "지자체의 선심성 사업의 확산, 법령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향후에도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