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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 |
진숙 전 장관을 떠올리면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어쩌다가 분위기에 안 어울리는 웃음 버릇을 가지게 되었는지... 결국 그 웃음이 해임에 한 몫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를 해임에 이르게 한 더욱 결정적인 원인은 아마도 송유관 관리자인 GS칼텍스를 피해자라고 말한 사실일 것입니다.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이고 2차 피해자는 어민입니다’ 윤진숙 당시 장관이 국회의 당정협의에서 했던 말이죠. 당장,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진 건 물론이고 네티즌들로부터도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해임되었죠.
그는 다수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대다수의 국민이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GS칼텍스도 가해자이니 신속하게 보상하라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윤 전 장관은 눈치 없이 GS칼텍스도 피해자라고 말했다가 혼이 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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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여수앞바다의 기름유출 사고로 피해가-가해자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윤진숙 전 해수부장관은 GS칼텍스정유가 1차 피해자라고 발언했다가 경질됐다. GS칼텍스정유는 사실 1차 피해자가 맞다. 유조선이 송유관에 부딪쳐 사고가 기름이 유출됐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 여전히 반대기업정서가 만연돼 있다. 비합리적인 정사를 극복하는 게 과제다. 기름유출과 관련해 관계자들이 피해보상문제등을 협의하고 있다. |
그런데 GS칼텍스는 정말 가해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사고의 책임은 배를 잘못 끌어서 송유관과 충돌하게 만든 도선사에게 있습니다. 물론 그 도선사도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지만, 과실이 있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GS칼텍스의 입장에서는 돌진해 오는 배를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송유관을 뜯어서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변 어민들과 마찬가지로 GS칼텍스도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굳이 GS칼텍스 측의 책임을 따진다면 왜 과속하는 배가 와서 충돌하더라도 파손되지 않을 정도로 송유관을 튼튼히 만들지 않았는가를 따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용도 생각해야지요. 그러자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고, 그것은 결국 기름 값으로 소비자가 부담하게 되겠지요. 그러니까 GS칼텍스에게 충돌에 대비하는 의무를 주는 것보다 도선사에게 조심해서 배를 끌 책임을 주는 것이 더 정의롭습니다. 실제로도 재판을 하면 GS 칼텍스는 피해자로 인정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GS칼텍스도 피해자라는 말을 하면 안되죠. 조금이라도 대기업을 두둔하면 큰 일이 납니다. 윤진숙 장관은 그런 정치적 센스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만약 그 송유관의 소유자가 중소기업이었다면 어땠을까요? 한국 사회의 반응은 아마도 상당히 달랐을 겁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을 안타까워했겠죠. GS칼텍스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피해를 당하고도 마치 가해자인 것처럼 비난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은 동네북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대기업은 법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죠. 유전무죄가 아니라 유전유죄, 즉 돈 있는 자에게 죄를 내리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잘못은 도선사에게 있는데, 죄는 마치 GS칼텍스에게 있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회사가 사고 수습을 위해 지역발전기금 같은 것을 출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반면 우리는 사고의 주역인 그 도선사가 누구인지 관심조차도 두지 않습니다. 도선사는 닦달해봤자 받아낼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일까요?
얼마 전에 터졌던 개인정보 유출 사건도 그렇습니다. 정보를 도둑질한 자는 놔두고 카드사들에게만 책임 추궁을 하고 있습니다. 텔레마케팅까지 금지시켜 버렸다가 그 때문에 서민인 텔레마케터들의 할 일이 없어짐이 알려지자, 급기야는 해고금지를 지시하기에 이릅니다. 뭐든지 대기업이 다 책임지라는 것이죠.
무전유죄(無錢有罪)는 분명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유전유죄(有錢有罪) 역시 문제입니다.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법을 적용할 때 사람이 누구인지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행위만을 가지고 판단하라는 거죠. 구체적 사람을 보면 감정이 생겨나고 그러다 보면 판단이 흐려지게 되죠. 부자이든 서민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 사람, 그 사람이 한 행동만을 가지고 법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그나마 법원은 그 원칙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요즈음은 법원 조차도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기고 있지만...). 하지만 정치인과 대중은 전혀 그렇지 않군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표류해가고 있습니다. 자초지종이 어찌 되었건 가진 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더 멀리 가기 전에 우리가 이성을 찾아야 합니다. 감정보다는 법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