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수석 거취 관련 "'우'자도 나온 적 없다"…선조사 후조치 견지
[미디어펜=한기호 기자]새누리당이 22일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처리가 사실상 무산되자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민생 프레임'을 앞세워 야권에 역공을 가하는 모양새다.

지난 4월부터 추경 편성을 거론해온 국민의당을 비롯한 야권이 누리과정 예산 국고편성,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한 연장 요구에 이어 '서별관 청문회' 증인채택 등 정치적 문제를 놓고 갈등한 끝에 여야 3당 원내대표간 추경처리 합의마저 뒤엎자 '민생 외면 야당' 여론전에 나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검찰 수사 의뢰로 입지가 더욱 불안해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거취에 대해선 '침묵 전략'으로 일관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이른 시각인 오전 7시30분 국회 당대표실에서 '도시락 조찬'을 겸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정현 대표의 "오로지 국민을 위해 일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수없이 많은 회의를 해야 할 것"이라는 짧은 언급 후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했다.

지도부는 약 3시간 가까이 지방재정 확충·개성공단 입주기업 지원·사이버테러방지·전기요금 부과체계·중국어선 불법어로·총선공약인 '마더센터'·김해신공항 추진 현황·심평원의 병원 조사방법 개선 등 41개 민생 현안을 놓고 논의했다.

또 지금까지와 달리 총리공관에서 열리던 고위당정청회의를 여의도 당사에서 이달 25일 개최하기로 의결하기도 했다.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운데)와 정진석 원내대표(왼쪽)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정부가 국회로 제출한 추경예산안의 22일 처리가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아침 7시30분 조찬회의를 여는 등 '민생 강행군' 행보를 보이는 한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에 관해선 일제이 '침묵 전략'으로 일관했다./사진=미디어펜


이들은 당일 처리가 어려워진 추경안 처리에 대해선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는 한편 우병우 수석의 거취에 대해선 일제히 함구했다.

회의 직후 정진석 원내대표는 '원내대표들이 만나 최종 합의할 것이냐'는 질문에 "원내수석부대표들끼리 어제도, 오늘도 만나시고 할 것 같은데 기다려보겠다"면서 몸소 협상에 나서기에 이르다는 '여유'를 보였다. 우 수석에 관한 물음엔 손사래를 치며 "우씨 성을 가진 사람 얘기는 오늘 아무도 안했다. 민생 정책만 갖고 밀도있는 토론을 했다"고 받아넘겼다.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추경안 재편성이라는 '플랜B'는 없다며 "지금까지 정부가 편성해온 예산에 대해 추경이든 본예산이든 시차는 있어도 통과를 안 시킨 예는 없다"고 버티기 전략을 시사했다. 우 수석에 관해선 정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오늘 논의 안됐다. '우' 자도 나온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최고위에 이어 국회 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당 지도부 및 추경 관련 상임위 간사 등은 '국회의장 주선 3당 원내대표 합의 무산'을 규탄하며 "책임의식을 갖고 국민 앞에 시급한 민생부터 처리해달라"고 야권에 민생 공세를 가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본회의 무산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선 추경 후 청문회' 합의를 파기한 야당에 있다"고 야권의 민생외면을 지적했고, 김 정책위의장도 "자꾸 정치쟁점화해서 청문회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은 추경을 쳐다보고 계시는 국민들 입장하고 좀 다르지 않느냐"고 비판에 가세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정무위 청문회 증인채택 문제 연계로 추경 심사가 파행된 예산결산특위 주광덕 간사는 "이번 주 목요일(25일) 정도가 지나면 국민들의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야권을 압박하기도 했다.

정무적 현안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은 가운데 새누리당 의원들은 공개·비공개 순서의 많은 시간을 활용해 9월28일부터 시행될 '김영란법'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1일 전당대회 출마를 위해 원내부대표직을 사임한 최연혜 최고위원의 후임으로 전희경 의원을 원내부대표로 임명, 추인하는 평상시와 같은 원내 인선절차가 진행되기도 했다.

   
▲ 새누리당은 22일 오전 국회 본청 예결위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갖고 이른바 '서별관 청문회' 증인채택 등 정치 쟁점을 연계해 추경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는 야권을 비판, 조속한 추경 심사 재개를 촉구했다. 9월28일 시행을 앞둔 김영란법에 관한 규정도 숙지하는 시간을 가졌다./사진=미디어펜


의총을 마친 뒤에도 '침묵 전략'은 이어졌다. 이 대표는 우 수석 거취와 관련 "지난 번에 얘기했다"는 대답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는 지난 19일 "(검찰 수사로) 철저하고 신속하게 진상 규명이 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야권의 우 수석 선(先)사퇴 요구를 일축한 바 있다.

기자들과 만난 이장우 최고위원은 의총 전 최고위 회의 도중 우 수석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음을 시사했고, 지도부 유일 비박계 인사로 분류되는 강석호 최고위원 역시 "41개 (민생정책) 항목 외에 별 얘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강 최고위원은 우 수석 대상 검찰 조사가 미흡할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해 "그건 다 신문에 나온 것 아니냐"고 여론과 언론의 시각일 뿐이라는 뉘앙스로 말했으며,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있는대로 처리하면 된다"고 '선 수사 후 조치' 입장을 견지했다.

대야(對野) 협상 실무자인 김도읍 원내수석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야권과 기재위·정무위 중복 청문회 대신 연석 청문회를 여는 방향으로 검토 중임을 시사, "(이견차를) 좁히려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오늘 중) 결론을 내고싶다"고 장담하지 못하면서도 조급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원내지도부인 정 원내대표와 김 정책위의장은 점심시간 직후인 오후 1시30분쯤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희경의원실 주최로 열린 8·15 건국절 관련 토론회에 잇따라 참석해 경청하는 등 여타 현안 챙기기에 나서는 행보를 보였다.

이는 추경 처리 여부는 전적으로 야권의 결단에 달렸다는 무언의 메시지로 평가된다. 이런 가운데 야당은 여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날도 우 수석을 향한 사퇴 공세와 '당청 때리기'에 집중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정수석 한 명 때문에 이 나라가 이렇게 흔들려야 하나. 많은 국민이 박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식물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자초했다"며 "우 수석은 민정수석 완장을 떼고, 검찰은 검찰에 깔려 있는 '우병우 사단'에 수사를 맡기지 말고 별도 수사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결국 이날 늦은 오후에 이르기까지 여야는 추경 관련 협상에서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더민주는 기동민 원내대변인이 오후 현안 브리핑 직후 "상대방(새누리당)은 무조건적인 항복만 요구한다"며 "다소의 비판 비난이 있을지라도 원칙적이고 선명한 대응을 이 시점부터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향후 '강대 강' 대치를 시사했다.

새누리당은 김명연 원내수석대변인 서면 브리핑에서 3당 원내대표 합의를 거론, "국회에서의 합의는 무엇보다 신뢰를 담보로 한 것"이라고 지적한 뒤 "협치를 통해 국민을 먼저 돌보라는 20대 총선의 민의를 거대야당은 더 이상 왜곡하지 않길 바란다"면서 야권의 추경 심사 재개 협조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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