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한진해운이 제출한 추가 자구안에서 진전된 유동성 확보 방안을 제시하지 못함에 따라, 사실상 채권단이 지원을 중단하고 법정관리를 준비하는 길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과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우리은행 등 채권단은 26일 오후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실무 책임자 회의를 열어 전날 한진해운에서 보내온 자구안 내용과 이를 반영한 실사 결과를 공유하고 앞으로 계획을 논의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에서 제출한 자구안이 큰 진전이 없어, 채권단도 "추가 지원은 없다"는 원칙에서 물러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진해운이 전날 제출한 자구안에는 기존에 주장하던 4000억원보다 1000억원 가량 증액한 5000억원 수준의 유동성 확보 계획이 담겼다.
대한항공이 12월 2000억원, 내년 7월 2000억원 등 총 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고, 이후 추가 부족자금이 발생하면 1000억원을 계열사 지원이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출연 등으로 추가 지원한다는 내용이 자구안의 골자다.
채권단은 실사 결과를 토대로 한진해운에 일반적인 수준에서 내년까지 1조원, 상황이 악화되면 1조3000억원의 부족자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운임이 더 악화하는 최악의 상황에는 1조7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봤다.
덜 나쁜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부족자금 가운데 한진에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4000억원이고, 나머지 6000억원은 채권단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원을 한 뒤에도 부족자금이 발생한다면 조양호 회장의 사재출연을 포함한 방법으로 추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산업은행 구조조정부문 정용석 부행장은 이에 대해 "사실상 자구안 가운데 1000억원은 예비적 성격이고, 실효성 있는 지원은 4000억원뿐이라고 봐야 한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사실상 한진해운이 부족한 유동성의 절반도 충당하지 못하는 수준의 자구안을 내놓음에 따라, 결국 법정관리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진행된 채권단 실무자 회의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주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한 채권금융기관의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올해 2천억원 지원조차도 연말에나 이뤄진다고 하는데, 이는 그래도 어느 정도 진전이 있을 것이라 봤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라며 "당황스럽고 실망스럽다는 반응에 회의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은 실무자회의를 마친 뒤 '자율협약을 연장해 신규자금을 투입하며 정상화 작업을 계속하겠느냐'고 묻는 안건을 채권단에 올렸다.
각 기관들이 내부 논의를 거쳐 30일까지 찬반 의견을 제출하면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 안건에 대해 채권단의 지분율을 기준으로 75% 이상이 동의하지 않으면 안건은 부결되고,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된다.
협약채권 가운데 산은의 의결권은 60%로, 사실상 산은이 동의하지 않으면 지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산업은행은 다른 채권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다음 주 내부 논의 절차를 거쳐 30일까지 찬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동걸 회장이 줄곧 "추가 지원은 없다"는 원칙을 천명해 온 산업은행부터 부정적 기류가 짙은 상황이라 안건 통과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산업은행이 국적 1위 선사의 법정관리행이라는 부담과 '정무적 압박'에 찬성 의사를 밝히더라도, 다른 채권금융기관들이 함께 부담을 떠안는 데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또 사실상 채권단 전체가 동의하지 않는 한 지원이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정용석 부행장은 "만약 75%가 찬성하더라도 반대한 25%가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게 되면 나머지 채권단은 그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면서 "그것을 떠안고 경영 정상화를 계속할 것인지도 다른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채권단이 논의해 봐야겠으나, 지금 상태로는 법정관리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며 "유동성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한 회사를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맞을지, 완전히 구조 개혁을 하는 것이 맞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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