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숲 속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오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집에서도 항상 혼자다.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도,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피한 채 혼자만의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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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스트 데이즈' 스틸컷 |
영화 '라스트 데이즈(Last Days)'는 1994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설적인 뮤지션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앞둔 며칠 간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는 화려한 록스타의 이면에 존재하는 외로움·우울함·상실감에 깊은 시선을 던진다.
'라스트 데이즈'는 커트 코베인을 모델로 했지만 인물이나 내용은 모두 감독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것. 커트 코베인의 노래도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대신 그를 기리며 만들어진 노래들이 영화를 채운다.
더러운 파자마와 헝클어진 머리, 어디인지도 모르는 숲 속을 걷고 있는 블레이크(마이클 피트)는 전설의 록스타도, 부와 명예를 가진 거물 뮤지션도 아닌, 그저 초라한 한 명의 남자일 뿐이다.
항상 마약에 취해 있는 블레이크는 시리얼로 허기를 채우고 여자 옷을 입고 혼자서 총싸움 놀이를 한다. 그리고 혼자 작업실에 들어가 기타를 치며 구슬프게 노래를 읊조린다.
'라스트 데이즈'는 기존 상업영화와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구체적인 인물묘사나 대사를 통한 극을 전개하는 방식에서 탈피, 배우의 표정과 분위기, 행동, 음악 등을 통해 캐릭터를 구현하고 있다.
오롯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블레이크의 모습은 분위기를 통해 전달될 뿐이다.
브레이크가 자살하려는 이유를 말해주는 대사 한마디 없고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이 누구인지조차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큰 그림이 짜맞춰 지듯이 관객은 죽음을 선택한 커트 코베인의 내면과 만날 수 있다.
'라스트 데이즈'에서 블레이크를 연기한 마이클 피트는 겉모습에서부터 우울한 분위기까지 커트 코베인을 빼닮았다.
깡마른 몸과 웅얼거리는 말투, 구부정한 어깨로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 블레이크를 연기한 마이클 피트에게서 전작 '헤드윅'이나 '몽상가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