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여부를 가를 채권단의 결의를 하루 앞둔 29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간의 합병론이 재부상하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해운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합병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한편, 금융권 일각에서는 기업 정상화를 전제로 하지 않은 합병론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이날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열린 '해상수송시장의 건전한 발전방안' 정책세미나에서 "한진해운을 일개 개인회사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유동성을 공급해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대상선과의 합병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것만이 해운산업이 생존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파산 절차를 밟으면 국가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10조원이 넘을 것이란 해운업계 분석까지 알려지면서 양대 컨테이너선사의 합병론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영향을 받은 듯 29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진해운은 전 거래일보다 1.24% 오른 1635원에 거래를 마쳤다.
채권단이 한진해운 지원을 중단하고,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양사의 합병 가능성이 전면적으로 무산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 관리 하에 회생절차를 지속하면서 자산매각, 채무 재조정 등의 작업을 거친 뒤 새로운 인수자를 모색하는 일은 법정관리에서 통상 이뤄지는 일이다.
그러나 법정관리 이후 한진해운의 합병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논의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운 전문가들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기업의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낮을 것으로 판단돼 청산 절차 개시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장 해외 채권자들의 선박압류와 화물 운송계약 해지, 용선 선박 회수, 해운동맹체 퇴출 등의 조치가 예상돼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현대상선도 이제 겨우 숨을 돌렸을 뿐이지 정상화까지의 길이 아직 먼 상황"이라며 "정상화 이후라면 몰라도 청산이 거론되는 회사와 합병을 거론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해운업계 역시 구체적인 밑그림을 갖고 합병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앞서 임종룡 금융위원장 역시 한진해운, 현대상선이 정상화를 마무리 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병이 유리한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법정관리 하에 한진해운이 우량자산을 매각하면서 현대상선이 자산 인수에 참여하는 방안은 가능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항로운항권이나 항만 터미널 지분 등을 외국 선사에 넘기지 않고 현대상선 측이 매입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희망 섞인 기대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매각할 만한 우량자산이 이미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가치 있는 항로 운항권이나 터미널은 한진해운 측이 이미 계열사 등에 매각해 넘기거나 유동화한 상태"라며 "지금 한진해운의 매각가능 자산 중 우량자산이라고 부를 만한 자산은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한진해운은 ㈜한진에 아시아 역내 주요 운항노선 영업권을 600여억원에 양도하는 등 강도 높은 자산 매각 작업을 벌여왔다.
한편 채권단은 한진해운의 선박금융 및 용선료 협상 마무리 소식 전파와 관련해 유동성 부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아니라며 의사결정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의미를 일축했다.
전날 한진그룹은 해외 금융사들이 선박금융 상환유예에 동의하고 용선료 조정에도 진전을 이뤄 총 1조2700억원의 유동성 조달 효과를 보게 됐다고 전한 바 있다.
앞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한진그룹이 제시한 부족 자금 조달방안을 토대로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절차(자율협약)를 지속할지를 결정하는 안건을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 제시한 뒤 30일까지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30일 의견이 취합되면 채권단의 자율협약 지속 여부가 결정된다. 공식 의결절차를 앞둔 채권단이 확정적인 언급을 아끼고 있지만,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결정할 것이란 분위기가 우세한 상황이다.
[미디어펜=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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