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 경제의 흥망성쇠에 관한 주제는 경제학의 영원한 숙제이다. 어떤 나라는 성장을 하는 반면, 또 어떤 나라는 성장 정체나 저하를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갈레스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진 두 도시의 사례는 흥미로운 점을 보여준다. 미국 애리조나 주 노갈레스의 연평균 가계수입은 3만 달러 가량이 되는 반면, 멕시코 소노라 주의 노갈레스 주민의 연평균 수입은 미국 애리조나 주민의 1/3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듯 다른 두 도시, 노갈레스
애리조나 주의 노갈레스와 소노라 주의 노갈레스는 찰스 디킨즈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에 나오는 런던과 파리처럼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 두 도시의 주민들은 조상도 같고 즐겨먹는 음식과 즐겨듣는 음악마저 다르지 않다. 이렇게 유사한 문화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름의 두 도시 노갈레스가 현격한 소득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도시의 소득이 현격하게 차이 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그 나라를 구성하는 사회적 제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애리조나 주 노갈레스는 미국 땅으로 미국의 경제 제도를 누리며 살지만, 소노라 주 노갈레스 주민들은 멕시코의 제도 하에서 살기 때문이다. 제도가 다르다 보니 두 노갈레스 주민 뿐만 아니라 두 곳에 투자하려는 사업가나 기업마저 전혀 다른 인센티브를 느끼는 것이다.
이 같은 차이를 관찰한 사람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해리슨과 헌팅턴은 1960년대 비슷한 소득수준을 갖고 있었던 가나와 한국을 비교했다. 가나는 제7대 UN사무총장 코피아난을 배출한 나라이고 한국은 제8대 UN 사무총장 반기문을 배출한 국가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두 나라는 공교롭게도 군사정부가 통치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의 궤적은 무척이나 달랐다.
가나의 느크루마 정부는 사회주의 실험을 하고 해외원조를 생산적인 용도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한국 정부는 건국 초기부터 그 이후 군사정부 하에서도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했고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하여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경제부국을 일궈냈다.
해리슨과 헌팅턴은 지적한다.“1990년대 초 나는 가나와 한국의 1960년대 초반 경제자료들을 검토하게 되었는데, 19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상황이 아주 비슷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산업강국으로 발전했다. 반면 가나의 1인당 GNP는 한국의 15분의 1수준이다.” 1950-60년대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가나와 매우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그 이후의 모습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두 나라 간의 이 같은 소득 수준 차이를 가져온 원인도 역시 제도였다.
두 도시 노갈레스와 유사한 사례로는 바로 남한과 북한을 예로 들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은 해방 당시 단일민족이고 경제적으로 비슷한 상태였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북한이 더 산업화되어 있었던 상태였다. 그러나 분단 이후에 자본주의 제도를 선택한 남한은 빠르게 성장한 반면에 북한은 여전히 낮은 소득수준에 머물고 있다. 최근 북한은 1인당 소득이 저하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1950-2008년 기간 중 남한, 북한, 가나의 1인당 GDP 변화추이>
경제를 장기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은 성장 친화적인 제도, 또한 그 제도를 끊임없이 개선해나가는 변화를 수반해야
같은 이름을 가졌으나 다른 운명을 맞게 된 두 도시 노갈레스 이야기는 흥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우선 국가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지리적·역사적·인종적 조건이 아니라 바로 제도이다. 또한 제도변화는 성과 차이의 또 다른 주된 요인이다. 노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계적 조정을 통해 발생하는 점진적인 제도변화’가 바로 사회와 경제를 발전시키는 지배적인 요인이다. 제도와 선택된 제도의 변화가 국가 간 경제적 성과를 차이나게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성장이냐 정체냐 침체냐 하는 세 갈림길에 놓여 있다. 현재 우리나라 1인당 소득은 2만 달러 수준에서 6년 동안 정체하고 있으며, OECD가 발표한 우리나라 경제의 장기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우리 경제는 미국·일본·EU국가에 비해 잠재성장률 하락속도가 가장 높고, 2038년도에 가면 성장률은 0.8%에 머무른다는 전망이다. 지금도 투자증가율이 떨어지고 인력공급의 원천이 되는 인구증가율도 지체되면서 우리 경제성장률은 매 10년마다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하고 있으며, 이달 말에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액션플랜을 내놓을 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474비전(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을 구체화하려는 것이다. 개혁성공의 요체는 성장친화적으로 제도개혁을 이뤄낼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경제를 활성화하는 일은 제도의 변화·개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라의 경제를 성장시키기를 원한다면 성장을 가져 올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국가가 지속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 줄 경제제도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산권 보호, 계약이행, 법치주의, 신규 사업의 용이성, 경쟁적 시장, 자유로운 직업선택 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변경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열심히 일해 번 소득을 착취당하거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면 경제발전을 위한 투자나 혁신의 인센티브는 발생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고, 투자하고, 혁신할 인센티브가 작동하지 않는 경제는 발전할 수 없다.
최근 경제민주화라는 이름하에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많은 경제관련 제도 변경은 성장친화적인 제도변경과 거리가 먼 것들이 많았다. 흥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 아니면 성장정체 또는 침체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 그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도 개혁이 성장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구성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어 주고 또 기업들이 투자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혁신하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생산성이 낮은 두 부문, 서비스업과 중소기업 부문의 성장과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제도개선 대책이 필요하다. 보호만으로 성장하고 경쟁력 향상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경제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느냐의 판가름은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된 개혁적인 제도를 입법화해 내고 이것을 제대로 집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하는 데는 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경제제도를 갖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와 정치제도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정치제도와 경제제도의 상호작용이 한 나라를 흥하게 하는지 망하게 하는지, 가난하게 할 것인지 부유하게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같은 이름의 두 도시 노갈레스의 사례는 경기규칙인 제도와 제도의 변화가 한 나라의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잘 말해 준다. 우리 경제가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번영을 할 수 있느냐는 정부와 국회가 성장친화적인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잘 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 국회가 경제적 번영을 고민하고 입법화하는 제도 개선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 글은 한국경제연구원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